17: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편 17]

 

 

“사실 마음의 기도란 일상의 많은 파도 밑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시냇물 같은 것이다.  세상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안에 살아가며, 고독의 한 복판에서 우리 하나님께 발돋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기서 열린다.” (헨리 나우웬, “기도의 삶”)

  

       “일상의 많은 파도”… 우리는 매일 매일 삶 속에서 다양한 파도를 많이 접합니다.  파도의 종류도 다양하고 또한 각각 파도의 크기도 다양합니다.  그러한 파도 가운데서 우리는 파도타기 기술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 파도타기 기술의 첫 번째 요소가 바로 “마음의 기도”라 생각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그 마음의 기도를 “일상의 많은 파도 밑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시냇물 같은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파도 밑에서의 끊임없는 속삭임, 마치 파도 밑 깊은 곳에 흐르는 잔잔한 물결 같습니다.  그러한 잔잔함은 “고독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발돋움을 한 심령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고독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영적 벌거벗음으로 하나님께 그 모습 그 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쏟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한나처럼 마음의 괴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통곡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삼상1:10).  그러한 가운데 놀라운 사실은 고독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갈망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갈망보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기 원하시는 갈망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 시편 17편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는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는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는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였습니다(1절).  다시 말하면, 다윗은 하나님께 정직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이렇게 정직함 속에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을까요? 한 3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첫째로, “나의 판단”(my judgment)입니다.

 

성경 시편 17편 2절을 보십시오: “나의 판단을 주 앞에서 내시며 주의 눈은 공평함을 살피소서.” 이 다윗의 판단은 주님의 임재로부터 나오는 판단입니다.  다윗은 극히 교만하며(10절), 간교한 흉계를 품고 사자와 같이 세력이 강하며 야수적인 잔인성을 지닌 “극한 원수”(my deadly enemies)에게 포위당한 상태(9, 11절) 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바른 판단을 가지고 하나님께 정직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바른 판단은 극한 원수들의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 오직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7절). 다윗의 판단은 불공평한 상황에서 공평하신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2절).  다윗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자기와 그의 극한 원수들 사이에서 공평한 판단을 내리실 줄 믿고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판단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6절). 더 나아가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8절).   이러한 판단 가운데서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둘째로, ‘나의 결심’(my determination)입니다.

 

성경 시편 17편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나를 권고하시며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으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치 아니하리이다.”  이 말씀의 히브리어 원어 번역은 “내 마음에 악이 생각날지라도 누르고 내 입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나이다”입니다(박윤선).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입으로 버죄치 않으려는 특별한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결심대로 살아드리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을 에워싼 압제자들이나 극한 원수들은 “그 입으로 교만히 말하”(10절)였지만 다윗은 자기의 입술로 죄를 범치 않고자 결심하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다윗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주님께서 그에게서 “흠을 찾지 못하셨”을 정도였습니다(3절).  주로 생각의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면 입으로 죄를 범할 가능성이 많은데 다윗은 입술로도 범죄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흠을 찾지 못할 정도의 정직한 마음과 입술로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과연 이러한 결심이 다윗과 같이 극한 상황에서도 견고히 설 수가 있었는지 우리는 이것이 참으로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주위에는 그의 극한 원수들이 교만히 말을 하고 있는데 다윗은 그들의 교만한 말을 들으면서도 입술로 죄를 범치 않기로 결심하고 또한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충분히 그는 생각으로 죄를 범할 수 있었을 텐데 어떻게 그는 생각 싸움에서도 악한 생각을 물리치고 입술로 범죄 치 않았을까요?  그는 악한 생각을 억누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은 말씀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열매 중 하나가 절제임을 생각할 때에(갈5:23)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윗의 생각을 절제케 하시사 악한 생각을 선한 생각으로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롬12:21). 

 

       셋째로, “나의 걸음”(my steps)입니다.

 

성경 시편 17편 5절을 보십시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  사람이 고난과 역경, 위기를 맞이하면 걸음이 삐뚤어질 위험이 많습니다. 결국 자기의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엄밀히 따라야 합니다(박윤선).  다윗은 위기와 역경 가운데서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는 “주의 입술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지 아니하였”습니다(4절). 그는 스스로 삼가서 죄악의 길을 걷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의 길을 걸었습니다.  다윗은 말씀에 입각한 의롭고 정직한 길을 걸었습니다. 

 

       다윗의 정직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나의 구원’(my salvation)입니다.

 

성경 시편 17편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우리가 무릎을 꿇고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릴 때에 하나님께서 일어나 우리의 극한 원수를 대항하셔서 넘어뜨리십니다. 아무리 악인과 압제자들이 우리를 에워싼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십니다(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십니다(8절).

 

        둘째로, ‘나의 소망’(my hope)입니다.

 

성경 시편 17편 15절을 보십시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우리 신자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박윤선).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은 내세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때든지 혹은 주님의 재림 때 우리는 주님의 의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가 주님의 형상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나의 판단”, ‘나의 결심’, 그리고 ‘나의 걸음’으로 말미암은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기도 응답으로 ‘나의 구원’과 ‘나의 소망’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축복을 누린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며 또한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상의 많은 파도가 우리 삶 속에 몰아쳐 올지라도 마음의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올리므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소망 가운데 벅차오르는 감격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기도하므로 기도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께 정직한 기도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소망의 축복을 더욱더 누리길 기원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