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주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

 

 

 

[시편 16]

 

 

신앙생활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월이 지나가면 갈수록 신앙생활이란 시편 73편 25절과 28절 상반절 말씀을 고백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생활은 참 복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에게 로서 부터 모든 복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죄 없이 해 주시는 복, 유쾌하게 해주시는 복 그리고 만유의 회복도 예수님에게로 부터 흘러나오는 축복입니다(행3:17-26).  이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 그의 축복을 셀 수 있는 지혜 가운데서 그 복을 누리는 신앙인의 마음과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은 오늘 본문 시편 16편 2절 말씀입니다: “…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 다윗이 누렸던 복은 무었이었는지 한 5 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복은, 주님의 보호하심입니다.

 

성경 시편 16편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보호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위험한 일을 당하여 주님께 피하였습니다.  그 위험한 일이란 한두 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첫째로 죽음의 위험(10절)이요 둘째로는 혼합주의 신앙의 위험(4절)이였습니다(박윤선).  하나는 자기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었고 또 다른 위험은 자기의 신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처럼 우리 또한 이러한 두 종류의 위험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육신적 위험과 영적 위험.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위험 속에서 오히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주님께 가까이 함이 복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73:28).  오늘 본문 시편 16편 1절에서 다윗이 주님께 ‘피하였 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안심한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박윤선).  그는 영육간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았습니다.

 

       둘째 복은, 주님의 산업 지키심입니다.

 

성경 시편 16편 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산업(기업)이 되실 뿐만 아니라 그 산업을 지켜주시기까지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신자가 비록 그 기업을 소유했을지라도 그 기업을 지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기업을 지켜 주시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박윤선). 하나님은 실로 아름다운 기업을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있었습니다(6절).  그 말씀은 땅을 기업으로 받을 때에 측량함을 말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산업을 주심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 산업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재어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는 하나님, 그 주신 산업을 또한 지켜주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복된 삶을 살게 하시고 계십니다.

 

셋째 복은, 주님의 훈계하심입니다.

 

성경 시편 16편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  참으로 복된 심령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므로 그 계시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그 예로 사도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란 고백하였는데 그 고백은 하나님께서 베드로로 하여금 “알게 한”(reveal) 것이었습니다(마16:16-17). 그래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오늘 본문 시편 16편에서 다윗은 주님의 계시 따라 인도함을 받고 아름다운 기업을 받으므로 주님을 송축하였습니다(7절).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 한다”(7절).  그는 고요한 밤중에 주님의 교훈을 받고 좋아하였던 것입니다(박윤선).  밤에 마음에 쓰인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을 받는 심령은 참으로 복된 심령입니다. 

 

넷째 복은, 주님이 내 우편에 계심입니다.

 

성경 시편 16편 8절 중반절을 보십시오: “…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  주님께서 다윗의 우편에 계신다 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는데 있어서 가장 힘 있게 하심을 말합니다(박윤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주님께 피하여 보호를 받았던 다윗은 하나님의 힘주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참으로 힘없고 낙심하여 지쳐 쓰려졌을 때에도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가 연약할 때 가장 힘 있게 하시는 주님, 그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자의 마음과 입술에서는 이런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8:1).

 

다섯째 복은, 주님께서 생명의 길을 보이심입니다.

 

성경 시편 16편 1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 이것은, 다윗이 영원한 내세에 들어갈 축복을 바라보고 하는 말입니다(박윤선).  오늘 본문 10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말씀으로 사도행전2장27-28절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즉, 다윗은 메시야의 부활을 믿음으로 자기의 부활을 믿고 소망했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의 길을 자기에게 보여주신 주님, 다윗에게는 “나의 복”이시요 우리에게도 ‘주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시16:2).

 

그러면 이렇게 나의 복이 되시는 주님에게 이러한 복들을 받는 자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나의 복이 되신 주님을 모시는 삶을 한 4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성도는 즐거워합니다.

 

성경 시편 16편 3절을 보십시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어떻게 성도가 다른 성도를 즐거워합니까?  그 이유는 저희의 “존귀”에게 끌리는 까닭입니다(박윤선). 여기서 “존귀”란 영광 혹은 장엄을 의미합니다.  내세에 이르러 하나님의 자녀 격으로서 받을 기업의 영광을 가리켜 말합니다(박윤선).  그 영광의 광채는,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히 사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그러한 성도를 볼 때에, “아!  하나님의 아들이로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받을 자로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흠모하게 됩니다(박윤선).  그러므로 성도는 즐거워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상에 대한 증오심이 있습니다.

 

성경 시편 16편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  다윗은 우상에게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않으며 입술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않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과 아무 연락도 안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진정한 복이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가 어떻게 거짓 복을 떠드는 우상을 겸하여 섬기며 이중적인 삶을 살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복이 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자는 우상에 대한 증오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대적하는 자를 미워해야 합니다.

 

셋째로, 주님을 항상 모십니다.

 

성경 시편 16편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힘써 기도하며 회개하며 순종하는 자가 가질 수 있는 은혜입니다 (박윤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요동치 말아야 합니다(8절).  주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요 그 복되신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복된 심령은 주님을 항상 모시고 살아갑니다. 

 

넷째로, 기쁘고 즐거워합니다.

 

성경 시편 16편 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  다윗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므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도 기쁘고 영혼도 기쁘고 육체도 안전하다고 고백합니다.  특히 11절을 보면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천국에서 충만한 기쁨과 영원한 즐거움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경험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주셨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된 자의 삶입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고백을 마음 깊은 속에서 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았습니다(2절).  특히 오늘 본문 중심으로 나의 복이 되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다섯 가지 복들을 생각해 보면서 제 삶 속에서 이 다섯 가지 복을 받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수요일 새벽기도회 나오다가 차바퀴가 바람이 다 나가서 바퀴가 다 찢어져서 차바퀴를 바꾸면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피부로 느꼈기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주에도 그 같은 바퀴가 너무나 오래되어서 부분적으로 바퀴 껍데기가 버껴진데도 있었는데 친구가 발견해 주어서 감사하였었는데 새로 갈아 낀 새 바퀴가 또 이렇게 바람이 나아가서 고속도로에서 위험할 뻔했는데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셔서 큰 사고가 나지 않은 것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나를 보호해 주시는 주님, 그는 나의 복이 되십니다.  주님 밖에는 다른 복을 추구하고 싶지 않습니다.  최고의 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그리할 때 다른 복들은 부차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는 고백을 진심으로 하고 싶습니다.

 

 

 

 

복중의 복이 되시는 주님, 그 주님 밖에는 나의 복이 없음을 고백하고 싶은 마음으로,

 

 

 

복 받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복된 말씀 속에서 힘을 얻는 가운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