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편: 포위된 하나님의 백성
[시편 14편]
2005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 수요일인 12월28일 시편 14편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2005년 한해 "주 말씀 향하여 달려가리라"는 주제를 걸고 여러 달 동안 시편 119편 말씀을 묵상한 후 시편 1편부터 이렇게 시편 14편까지 매주 수요일 묵상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마지막 수요일 시편 14편 말씀을 묵상하면서 감사하였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시편 말씀을 묵상케 하신 주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물론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후회할 수 있는 것도 수 없이 많겠지만 후회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리고 후회할 것들이 있을지라도 저는 관점(perspective)을 좀 달리하여 믿음으로 감사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평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2005년 한해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관점만 믿음으로 좀 달리하면 됩니다. 예를 들자면, 출애굽기 14장3절을 보면 출애굽 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그들은 광야에서 "갇힌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애굽 왕 바로였고 바로 왕은 그 생각으로 자신의 군대를 끌고 와서 바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 추격하여 거의 다 좇아 왔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도 불신자인 바로 왕과 동일했습니다. 그들은 갇힌바 되었다는 생각에 그들이 있는 광야를 가리켜 "매장지"라고 말했습니다(11절). 그러나 모세의 관점을 달랐습니다. 그는 결코 그곳을 매장지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곳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구원의 장소로 보았습니다. 모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3-14절). 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하고의 관점이 다릅니까? 이렇게 믿음으로 보는 관점과 불신앙으로 보는 관점을 너무나 다릅니다.
오늘 성경 시편 14편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도 갇힌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로"(7절)가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 포로가 되었는가 하면 다윗은 "어리석은 자"(the fool)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1절). 여기서 "어리석은 자"란 히브리어는 "나발"입니다. 다윗 이야기에 나오는 아비가일(나중엔 다윗의 아내가 됨)의 남편 이름이 "나발"이였습니다. 어떻게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가 있는 이름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본문 14편에서 다윗은 이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로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다윗은 14편을 노래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에서 지금 이 세상에는 어리석은 자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 또한 다윗처럼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위당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실제적인 무신론자"입니다(박윤선). 이론적인 무신론자가 아닌 실제적인 무신론자는 말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는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딛1:16). 그렇다면 다윗을 포위했던 어리석은 자들을 어떠한 자들인지 오늘 본문에서 한 다섯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선을 행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14편 1절과 3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기자 다윗은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은 선하시다'(God is so Good)라고 찬양할지는 모르겠지만 삶 속에서는 선을 행치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을지라도(34:8), 이미 모든 선한 일을 버린 자들이기에 악행 하는 자입니다. 이들의 악행은 "부패"와 "가증한 소행"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4:1). 여기서 부패란 '도덕적 부패', 즉 "자력으로 회복할 수 없는 정도의 극악한 죄성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들은 "더러운 자"(3절)들입니다.
둘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지도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14편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하신 즉." 말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은 하나님을 알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굽어서 살피심'에도 불구하구 어리석은 자중에 하나님을 알려고 찾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셋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다 치우친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14편 3절을 보십시오: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길에서 탈선된 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하나님을 찾을 마음조차도 없고, 하나님만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것도 겸하며, 하나님 보다 먼저 세상 것을 찾으며, 하나님을 찾느라고 하나 열심 없이 찾으며, 계속하여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찾지 않고(이단) 그리고 적시 적으로 찾습니다(회개해야 할 때에 회개하지 않는 것)(박윤선).
넷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14편 4절을 보십시오: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를 기탄없이 하면서, 그것을 예사로 알기에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합니다(4절).
마지막 다섯째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시편 14편 4절을 다시 보십시오: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 도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죄를 범했어도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위된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의 비참한 상태에 놓여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고 오늘 성경 시편 14편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3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성경 시편 14편 5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어리석은 자들의 박해가운데 포위된 다윗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께 함께 계시지 않는 듯해 보이지만 임마누엘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느낌이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듯 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때에도 우리와 함께 계속 계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사실을 깨닫고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시편 14편 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영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워하여 그들의 경영을 부끄럽게, 실패케 하려고 하고 또한 실지 실패케 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피난처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살기 위하여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 즉 "가난한 자"들(6절)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어 주시고 계십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구원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시편 14편 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로가 된 하나님의 백성들,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할 때 악인들을 파멸시키는 일들이 있습니다(박윤선). 하나님의 구원은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시는 것입니다(7절).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즐거워하며 기뻐할 것입니다(7절). 우리의 슬픔은 잠깐이요 기쁨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지금 약속의 땅인 천국을 향하여 이 광야와 같은 세상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모세가 되시는 예수님의 바라보면서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 갇힌바 될 수도 있습니다. 동서남북을 다 보아도 해결책을 안보이고 꼭 갇혀있다는 위기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불신자 바로 왕을 닮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땅을 보면서 낙심과 불만 속에서 그 위기 상황을 매장지로 생각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해서 아니 될 것입니다. 오히려 모세처럼 하늘을 우러러 주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 위된 상태, 갇힌 상태를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그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어리석은 자들에게 포위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어리석은 자가 아닌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힘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