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사람이 무엇이 관대

 

 

 

[시편 8]

 

 

2005년 11월 15일 주일, 두 분이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두 분 다 여기 미국 나이로 79세셨습니다. 한 분은 친구의 아버님이셨고 또 다른 한 분은 제 아버님의 선배 목사님이셨습니다. 한분의 불교 예식으로 입관식 후 화장을 하였고 또 다른 한분은 기독교 예식으로 장례식 후 묘지에 묻히셨습니다. 저는 두 분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사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은 '풀과 같다'(사40:6)고 말하였고 바울은 '질그릇'(고후4:7), 그리고 야고보는 사람은 '안개'(약4:14)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풀과 같은 인생,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인생,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 영원한 관점에서 볼 때에 인생이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듯이 길고 멋진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사람은 별 볼이 없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많고 많은 사람들 중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사 선택함을 받아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인 다윗은 오늘 성경 시편 8편 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그래서 저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란 주제로 한 4가지 은혜의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이 무엇이 관대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시나이까?'입니다.

 

성경 시편 8편 2절을 보십시오: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 이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어린아이"는 "겨우 말하기 시작한 어린아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리고 "젖먹이"란 유대교 풍속을 보면 히브리 여인은 아기들을 몇 년간 젓을 먹이는 풍속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나는 아기를 생각게 만듭니다. 결국,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신"다는 말씀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그대로 받아 신뢰하기를, 편견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하여 하나님을 알게 됨을 말"합니다 (박윤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또한 젖먹이처럼 겸손히 신령한 젓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에 우리에게 계시(revelation)하시사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까? 사람이 무엇이 관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히 어린아이처럼 또한 젖먹이 아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때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하십니다(2절).

 

사람인 저 제임스가 무엇이 관대 하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1-15절 소명의 말씀과 마태복음 16장 18절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오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계시하였는지... 또한 그 약속의 말씀들로 하여금 연약하여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실 때 주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들의 능력을 나타내시사 제 영혼을 일으켜 주시고 부흥케 하셨는지 그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둘째 질문은, '사람이 무엇이 관대 사랑하시며 돌아보시나이까?'입니다.

 

성경 시편 8편 4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이 말씀을 보면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생각하시며"란 단어는 원어 히브리어 의미로 "기억함"인데 그 의미는 사랑함을 말합니다. 또한 4절에 "인자가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권고"란 단어는 "감시 혹은 돌아봄"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시편 기자 다윗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보면서(3절) 사람이 무엇이 관대 사랑하시며 돌아보시는지 그 은혜에 놀라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들을 보면서 하늘과 달과 별들과 비교할 때 참으로 지극히 작고 풀과 같고 안개와 같은 질그릇 인생들이 과연 하나님의 사랑과 돌아보심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생각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물 중에 우리 사람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아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까?

 

사람인 저 제임스가 무엇이 관대 많고 많은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물들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돌아보심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 그 하나님의 은혜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셋째 질문은, '사람이 무엇이 관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까?'입니다.

 

성경 시편 8편 5절을 보십시오: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이 말씀에는 이중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인류를 대표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하사 천사보다 낮아지셨다가 부활, 승천하시어 높아지실 사실을 예언함(히12:6-9)과 그리고 (2)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을 가리킬 때에는, 그들이 완전히 구속 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것을 의미"합니다(박윤선). 메시아에 적용되는 예언적 의미는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높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미는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완전히 구속받아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실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이러한 놀라운 영광스러운 존귀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사람인 저 제임스가 무엇이 관대 이러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움 받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지막 넷째 질문은,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들을 다스리게 하시나이까?'입니다.

 

성경 시편 8편 6절을 보십시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인간은 범죄 전에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하나님께 축복으로 받아 누렸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그 권한을 잃어버려 진정한 의미에서 만물을 이상적으로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받아 그 구원이 완성되는 날에는 만물 통치 자리에 이를 것입니다(박윤선). 사람이 무엇이 관대 만물 통치 자리에 이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송가 410장 1절이 생각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참으로 아무 쓸데없는 자를 구속하신 하나님,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돌아보심의 축복을 누리며 주님 재림하시는 날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시고 만물통치 자리에 이르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과연 풀과 같고 질그릇과 같으면 안개와 같은 존재인 사람이 무엇이 관대 이러한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지 "난 알 수 없도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인 제임스가 무엇이 관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시는지 알 수가 없는 가운데서,

 

 

 

제임스 목사 나눔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더욱더 수고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