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의인을 세우소서!

 

 

 

[시편 7]

 

 

      이번 주 제 자동차가 문제가 있어서 교회 차를 몰고 햄버거를 사 먹으로 햄버거 집에 갔다 가 저희 교회 교인을 만났습니다.  만나자 마자 그 교인은 저에게 ‘여기에서 조금 전에 싸움 난 것 보았냐?’고 묻더군요.  알고 보았더니 그 교인과 다른 사람과 말다툼 속에서 아마 그 교인인 상대방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었나 봅니다.  그랬으니 그 상대방 사람이 얼마나 화가 많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그 상대방 사람이 자기 친구를 데리고 와서 다시금 우리 교인과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상대방 사람에게 ‘미안합니다’(I am sorry)라고 사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상대방 한 사람이 제가 타고 있던 교회차를 보더니 교회 이름을 보고 말하면서 ‘어떻게 교회 나아가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는 식으로 저희 교회 교인에게 말하더군요. 저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의 말다툼과 상대방 얼굴에 침 뱉는 덕스럽지 못한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졌고 또한 우리 교회 이름에도 먹칠을 한 것입니다.  저는 담임 목사로서 책임을 느꼈습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목회를 감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성경 시편 7편 말씀을 묵상하다가 9절 말씀의 “의인을 세우소서”라는 시편 기자의 기도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의인을 세우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이번 말씀 집회 때 강사 목사님께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전 롯을 구하고자 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의인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그리고 10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으시겠냐고 겸손히 여쭤본 성경 말씀을 말씀하셨는데 우리 교회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영혼, 영혼을 의인으로 세우는 일에 전심전력 해야겠다는 도전을 받았습니다.  물론 숫자의 욕심도 생길 수 있겠지만 저는 주님이 믿는 자를 더하실 줄 믿고 우선은 한 영혼, 영혼을 말씀으로 먹이면서 의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치며 권면하며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강사 목사님과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강사 목사님께서 “값싼 은혜”(cheap grace)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너무나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또한 주님으로 영접하여 의롭다 함을 얻었지만 의로운 삶을 살아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동전의 앞면이라 말한다면 동전의 뒷면은 의로운 삶을 살아드리는 것인데 우리는 이 책임을 감당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진정 값싼 은혜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 목사님들도 이러한 “값싼 은혜”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에 간격이 멀어지면서 강단에서의 말씀 선포와 삶 가운데서 그 선포한 말씀 순종이 결핍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하는 삯군과 같은 목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 기독교로 전락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의인을 세우소서!”라고 합심하여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인을 어떻게 세우실까요? 저는 오늘 성경 시편 7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의인을 어떻게 세우시는지 배움으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상황을 통하여(through unrighteous situation) 의인을 세우십니다다시 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상황(unjust situation)을 통해서도 의인을 세우십니다.

시편 기자 다윗이 당면한 상황은 참으로 억울한 상황 이였습니다.  그가 잘못한 죄(?) 가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긴 것 밖에 없는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시기하여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러한 억울한 상황에서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는 다윗의 이러한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의 결백성 혹은 순결성(purity)을 입증하고 계셨습니다. 성경 시편 7편 3-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것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 무고히 빼앗았거든 원수로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고 내 영광을 진토에 떨어뜨리게 하소서.” 다윗은 ‘만일 내가 죄악이 있거나 친구나 대적에게까지도 죄악을 범했다면 죽어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윗의 “의”(righteousness)와 “성실함”(integrity)은 빛나고 있었습니다(8절).

 

이 불의한 세상에 살면서 우리 의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억울한 일들을 많이 맞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기도 당할 수 있고 누명을 쓸 수도 있고 괴로운 일들을 많이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다윗처럼 그러한 불의한 상황 또는 억울한 상황을 통하여 “나의 의”와 ‘나의 정직함’(8절)을 들어내는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우리의 결백성 또는 순결성을 들어내야 합니다. 억울한 상황을 원망하며 불평하기보다 의와 정직함을 들어내는 기회를 삼을 줄 아는 자는 진정한 의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through prayer) 의인을 세우십니다.  

 

다윗은 억울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는가 하면 바로 ‘정직한’(upright) 기도였습니다.  불의한(unrighteous)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려졌던 정직한(upright) 기도…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은 의인을 세우심에 있어서 불의한 상황에서 의인으로 하여금 정직한 기도를 드리게 만드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상황을 통하여서도 정직한 기도 자를 세우십니다. 의로운 다윗의 정직한 기도 내용을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1)  신뢰심입니다.

 

다윗은 환난 때에 억울한 상황에서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능과 의지에 자기를 맡기고 기도하였습니다(박윤선; 1절 – “주께 피하오니”).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줄 알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박윤선).  억울한 상황에서 오히려 다윗은 주님만 바라보며 또한 주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방배로 삼았습니다[(10절)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2)  순결한 생활입니다.

 

성경 시편 7편 3-5절을 보면 다윗은 굴에서 자기 원수인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고 구원해 준일 같은 것(삼상24:1-15)을 염두해 두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무죄하였음을 밝히면서 기도하였던 다윗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순결한 생활을 이유로 또는 근거로 하나님께 기도해야함을 배웁니다.  왜 우리는 순결한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시7:9).

 

(3)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성경 시편 7편 6-16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특히 6, 8, 11절).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소망의 기도”입니다(박윤선).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11절)께 자신의 억울한 상황에서 건져 주심을 간구하였던 다윗처럼 우리 또한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상황 혹은 억울한 상황을 통하여 의로운 자들로 하여금 정직한 기도를 드리게 만드십니다.  의로운 삶을 살아드리지 못하는 자들은 불의한 상황이나 억울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정직한 기도를 드리기보다 오히려 정직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앞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정직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과 우리가 직면한 상황에서 들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한 상황에서 더욱더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하여(through judgment) 의인을 세우십니다.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11절) 회개하지 않고(12절) 죄악이 관영한 죄인을 갑자기 멸망시키시므로[“화전”(13절): 벼락 치는 것을 의미함(박윤선)] 말미암아 악인 멸망, 의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 이유는 악인이 잔해 중 잉태하여(남을 헤아려는 비밀공작) 죄악을 해산하기 때문입니다(14절).  자꾸만 죄악을 해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공의로우심을 들어내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심판을 통하여 죄악인 관영한 죄인을 벼락 치듯이 심판하시므로 말미암아 의인을 세우십니다.  그의 판단은 의인의 “의와 그에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판단하시므로”(8절)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멸망시키십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불의를 심판하시므로 그의 의를 들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억울하고 불의한 상황에 놓여있는 그의 의로운 백성들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불의한 사람들과 악인들을 심판하시므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악인을 심판하심을 통한 우리의 구원을 기대해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와 성실함을 들어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로서 의로운 삶을 정직하게 또한 신실하게 살아드리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의롭지 못한 생각과 입술의 죄로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