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생들아

 

 

 

[시편 4]

 

 

세상 여기저기에서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뉴스를 거의 매일 접할 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 사랑하는 분들이 질병과 노환으로 죽어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찬송가 474장 3절 가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죄악 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  저는 여기저기에서 죽은 사람들의 뉴스를 접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김우진씨의 “사의 찬미”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몇 마디를 여기에 옮긴다면 이렇습니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참으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젊은 나이게 자문을 해 볼 때 헛되고 헛된 세상에서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그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오늘 성경 시편 4편 말씀 중심으로 “인생들아!”(2절)란 제목아래 한 세 가지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인생들이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이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영광”이란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주신 왕적 영광으로서 그의 대적들이 그것을 욕되게 하는 대적 행위를 회개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말씀이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저는 교회에 기름부음 받은 자인 주님의 종을 대적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세상에서 욕되게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지 우리는 자아 반성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어느 때까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할 것이지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영광을 이 어두운 세상에 들어내면 살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2) 우리는 허사를 사랑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4편 2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이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 허사를 좋아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허사”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 다윗을 대적하는 허사를 사랑(“좋아하고”)한 죄를 회개할 것을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혜자는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전1:2).  우리는 이 헛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허사”(worthless), 곧 무가치한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즉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로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할 삶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순간적인 가치이던 아니면 전혀 가치도 없는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타협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허사를 사랑하는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시4:2).

 

(3) 우리는 궤휼을 구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2절 말씀을 또 다시 보십시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이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는 다윗은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 궤휼을 구하겠는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궤휼”이란 ‘속임수’(deception)를 말합니다.  이미 다윗의 많은 대적들은 다윗의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라고 거짓말로 대적하였습니다(3:2).  그런데 오늘 본문 시편 4편에 와서도 다윗의 대적들은 계속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속임수를 써서라도 다윗을 계속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라는 속임수는 결국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자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속임수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이러한 속임수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아버지인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탄의 속임수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22절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비춰보십시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말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우리는 너무나 수없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이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인생들이 깨달아야 할 것 한 2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이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다윗과 및 기타 성도들을 택하여 세우셨으니 만큼,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무도 끊지 못한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이 얼마나 큰 위로의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입니까?  이러한 사실은 저로 하여금 성경 로마서 8장 35-39절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오늘 본문 시편 4편 3절에서 “경건한 자”란 “총애를 받는 자”, 즉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는 자를 가리킵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변함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대적의 허사와 궤휼로도 결코 이 사실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2)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3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이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었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이유는 다윗이나 우리가 경건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의의 하나님”(1절)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결코 우리의 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의 의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인생들이 행해야 할 것 한 3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떨며 죄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4절 상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여기서 “떨며”란 말씀은 70인 역에서 “분 내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박윤선).  즉, 분 내어 죄를 범치 말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지은 것을 분히 여겨서 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뜻입니다(박윤선).

 

우리는 분 내어 죄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는 죄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허사를 사랑하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궤휼을 구하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러한 범죄를 과거에 범한 것을 분 내어 우리는 더 이상 범죄 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심중에 말하고 잠잠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4절 하반절 말씀을 보십시오: “…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지어다.” 보통 자리에 눕는 시간을 밤이라고 말한다면 시편 기자는 지금 밤중에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행하지 말고 밤중에 고요히 자아 반성하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잠잠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심중에 말씀하시도록 훈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심중에 세상의 음성과 사탄의 음성이 너무나 잘 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심중에 말하는 훈련을 끊임없이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하나님께 범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중에 말씀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도록 허락하는 묵상의 훈련을 함으로서 죄와의 싸움에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이 묵상 훈련에 우리가 빼놓지 말아야 할 훈련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머물러 있는 훈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심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도록 잠잠해야 합니다.  이러한 잠잠함이 우리의 힘이 됩니다(사30:15).

 

(3)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성경 시편 4편 5절 말씀을 보십시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의의 제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입니다(51:16, 17).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회개하되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회개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한 죄들을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회개하는 자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생들이 마땅히 회개할 것과 깨달아야 할 것과 또한 행해야 할 것을 행한다면 그 결과들은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시편 4편 말씀은 한 4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1절).
  2.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주실 것입니다(6절).
  3.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을 두실 것입니다(7절).
  4.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것이기에 우리는 평안함 속에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8절).

 

이러한 축복은 인생들이 회개할 것들과 깨달아야 할 것들 또한 행해야 할 것들을 알고 행하는 자들에게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임스 목사 나눔

(회개의 눈물을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