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시편 55편 말씀]
세상은 우리 마음에 무거운 짐을 점진적으로 지게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근심, 걱정, 슬픔, 고통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무거운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왠지 우리는 내려놓는 것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 대답을 이용규 목사님의 “내려놓음”이란 책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사탄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가지라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유혹한다.” 저는 이 말에 동의를 합니다. 사탄의 역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꼭 붙들고 있으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하는 것 중에는 ‘과거의 짐 보따리’도 있고 또한 마음에 무거운 짐이 되는 상처와 아픔, 괴로움과 근심, 걱정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베드로전서 5장7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권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시편 139편 17-18절 말씀에 의하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를 향한 그의 보배로운 생각의 수가 모래보다 많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여 권고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염려를 다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기 때문입니다(마6:34).
오늘 본문 시편 55편 22절 말씀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는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다윗의 짐은 무엇이었습니까?
2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 다윗의 짐은 “근심”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여기서 “근심”이란 히브리 단어는 “수풀”의 의미하기도 합니다(박윤선). 박윤선 박사님은 근심이 “수풀이나 가시덤불처럼 복잡하고 착란한 심사 때문에 생기는 고로, 이 글자가 사용된 듯하다 라고 말했습니다(박윤선). 다윗이 근심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다윗은 원수들의 압제와 핍박으로 인하여 마음에 근심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든지 근심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근심이 지속되는 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고 즐거움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근심은 건강에 지장을 주어 생명을 단축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행복의 척도는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심을 이기는 힘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근심 없이 사는 가난한 삶이 근심에 파묻혀 사는 부자의 삶보다는 가치 있는 것입니다. 우화로 널리 알려진 이솝도 "안심하면서 먹는 빵 한 조각이 근심하면서 먹는 잔치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인터넷).
- 다윗의 짐은 ‘심한 마음고생’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4절을 보십시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다윗은 원수들의 압제와 핍박으로 인하여 마음이 심이 아팠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험까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5절에서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함이 나를 덮었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자기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멀리 광야로 날아가서 편히 쉬길 원했습니다(6절). 한 마디로, 다윗은 짐이 너무 무거워 현재 상황을 피신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고 또한 죄악과 잔해함, 악독과 압박, 궤사를 보므로 말미암아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10-11절). 이 외에도 다윗의 마음이 심히 아팠던 이유는 친구의 배신 때문 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12-13절을 보십시오: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다윗의 마음의 깊은 상처는 함께 하나님의 안에서 다니면서 재미롭게 의논하며 교제하였던(14절)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친한 친구는 자기와 화목한 자인 다윗을 치고 그와 맺은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20절). 그 친한 친구의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였습니다(21절).
둘째로, 어떻게 우리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릴 수 있는가?
다윗은 그의 짐을 기도로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 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 다윗은 자기의 무거운 짐들을 기도로 하나님께 다 맡겨 버렸습니다. 그는 주님께 자기의 근심이나 자기가 처한 악하고 죄악 된 상황으로 인하여 심히 아파하였던 마음을 기도로 다 맡겨 버렸습니다. 특히 그는 친한 친구의 배신으로 인한 아픈 마음을 다 주님께 기도로 맡겨 버렸습니다. 왜 다윗은 주님께 자기의 무거운 짐을 기도로 다 맡겨 버렸습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를 구원해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16-17절을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다윗은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근심과 심한 고생, 아픔을 다 주님께 간구로 쏟아내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오직 주님만이 자기의 구원자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기도합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자신의 무거운 짐, 근심과 심한 마음의 고생을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다 하나님께 기도로 맡겼습니다(23절 하반절).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기도로 다 하나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1절)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후렴)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새 찬송가 365장,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마지막 셋째로, 우리 짐을 하나님께 맡겨 버릴 때에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짐을 다 맡겨 버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2 가지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2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 시편 기자 다윗은 시편 54편 4절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돕는 자시라 주께서 내 생명을 붙드는 자와 함께 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두 말씀을 보면 다윗은 현재의 위협과 위기 상황에서 과거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환난에서 건지신 경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였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과거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버리면 자기를 붙들어 주실 줄 확신하였습니다(55:22).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시편 55편 18절을 보십시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렸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버리십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 55편 2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짐을 하나님께 기도로 맡겨 버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사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또한 우리의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며 자기의 악한 길을 돌이키지 아니하는 악인은 하나님께서 보응하시사(19절)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십니다(23절).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요동치 아니합니다. 시편 21편 7절을 보십시오: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 이다.”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 가운데 하나가 바로 363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이 찬송가는 엘리사 호프먼 목사가 작사했습니다. 어느 날 아주 큰 시련을 당한 성도가 호프먼 목사를 찾아와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근심에 싸인 저는 무엇을 해야죠?”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호프먼 목사는 한참 동안 그 성도의 하소연을 다 들어준 다음 간절한 마음으로 위로의 주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그 성도는 밝은 얼굴을 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래요. 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맡겨야 하겠어요.” 성도가 나간 후 갑자기 영감이 떠오른 호프먼 목사는 펜을 들어 찬송시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짐을 나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 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이렇게 해서 363장이 탄생한 것입니다(인터넷).
저는 이 찬송가를 언젠가 제 아버님이 선교지에서 힘차게 부르시는 찬양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 아버님은 그 선교지에서 어려움이 닥친 날 새벽 기도회 때 이 찬양을 힘차게 부르셨습니다. 그 날 하나님은 아버님에게 피할 길을 주셨고 저 또한 무사히 한국으로 나아와 나중에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다 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근심과 걱정, 심한 마음고생으로 허덕일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에게 기도로 모든 짐을 다 맡겨 버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시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며 또한 우리를 요동치 않도록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맡겨 버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