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하시니라 …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사사기 1장 1-2절; 20장 18절).
제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의 이름은 “승리장로교회”(Victory Presbyterian Church)입니다. 주님께서 저희 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제 아버님을 도구로 사용하시사 1980년 7월 첫째 주일에 승리장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개척 예배를 드렸습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는 왜 아버님께서 교회를 개척하셔서 많고 많은 교회 이름 중에 왜 교회의 이름을 “승리장로교회”라고 지셨을까 의문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버님께서는 승리장로교회를 목회하시면서 여러 번 ‘나 자신과 세상과 죄악과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우리 성도들에게 권면하셨습니다. 저는 그 의미를 모르고 있다가 사춘기 때 방황을 하면서 제 자신의 죄악 된 본능대로 세상 것들을 즐기면서 하나님께 죄악을 범하면서 사탄에게 패배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수 없이 보아오면서 제 자신으로 인해 수 없는 낙망과 심지어 절망 속에서 허덕이면서 그 의미의 중요성과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교회 대학부 수련회를 참석하여 변화 받고 아버님처럼 목사가 되겠다고 헌신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가서 어느 한 교수님을 통해 “교회론” 강의를 들으면서 교회란 ‘전투적인 교회요 또한 승리를 거둔 교회’(Militant church vs. Triumphant Church)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즉,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와 승리를 거둔 교회의 긴장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가르침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제가 12살 때부터 아버님이 개척하신 승리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의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제 자신과 세상과 죄악과 사탄과 싸워 승리하지 못하며 늘 패배의식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교회 개척 약 24년 후에 아버님은 은퇴하시면서 직접 선교를 시작하셨고 제가 후임으로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승리장로교회를 목회하면서 교회의 여러 어르신들의 장례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 분들이 양로원, 양로병원에 계셨을 때 뿐만 아니라 중환자실에 계셨을 때 및 심지어 호스피스에 계셨을 때에 방문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든 마음은 “나 자신과 세상과 죄악과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죽음”과도 싸워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때부터 저희 교회 식구들에게 “나 자신과 세상과 죄악과 사탄과 죽음과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돼야 함을 기도하며 권면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담임 목사인 저부터 이 영적 싸움을 계속해야 하며 우리 개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인 교회적으로도 이 영적 싸움을 끝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영적 전쟁 중에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제 자신과, 죄악과, 세상과 사단과 죽음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제 머리로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는 듯한데 제 마음으로는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애통하고 회개할 마음이 없습니다. 저는 회개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참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성경 역대하 20장 15절 하반절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저는 이 말씀을 접하면서 적어도 제 머리로는 제가 제 자신과 이 세상과 죄악과 사탄과 죽음과 싸우는 영적 전쟁에 제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제 마음으로는 이 역대하 20장 15절 하반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계속해서 제 스스로의 힘으로 제 자신의 영적 전쟁에 임했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영적 전쟁에 패하고 또 패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패배의식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으로 인해 낙심하고 낙망을 수 없이 되풀이 하면서 자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허덕이곤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50여년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한 와중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계속해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케 하셨으면 그리도 새벽기도회를 싫어하였던 저로 하여금 새벽기도회 시간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시고 조금씩 조금씩 말씀 묵상과 기도에 즐거움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오늘 본문 사사기 20장을 읽다가 18절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20장 18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또 읽다가 이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사사기 1장에서 읽은 기억이 나서 사사기 1장을 폈더니 1절과 2절에 이러한 유사한 말씀이 적혀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시니라.” 먼저 저는 이 두 군데의 말씀을 비교하면서 비슷한 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두 군데의 성경 구절을 보면 비슷한 점은 둘 다다 이스라엘 자손이 전쟁을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여쭈었다는 것입니다(1:1, 20:18).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답변의 말씀이 같습니다: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2), “유다가 올라갈지니라”(20:18). 그런데 다른 점은 이스라엘 자손이 싸우고자 한 전쟁의 대상이 달랐습니다. 사사기 1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싸우고자 했던 전쟁의 대상은 “가나안 족속”이었던 반면에 사사기 20장에서 그들이 싸우고자 했던 전쟁의 대상은 같은 동족인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사사기 1장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족속과 싸워 전쟁에서 승리한 반면에 사사기 20장에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뺀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과 싸워 전쟁에서는 두 번이나 패합니다(20:18-25). 왜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에게 두 번이나 패했을까요? 분명히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에 “칼을 빼는 보병이 사십만 명”(2절, 참고: 17절)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15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400,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이 26,700명의 베냐민 자손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한 것일까요? 인간의 계산법으로는 군인 숫자가 많은 이스라엘 자손이 군인 숫자가 매우 작은 베냐민 자손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어야 했지 않았나요? 그런데 전쟁의 결과는 두 번이나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에게 패했습니다. 그 원인이 뭘까요? 왜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한 것일까요? 분명히 두 번 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8절), “올라가서 치라”(23절)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여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간 이스라엘 자손이 왜 두 번 다 전쟁에서 진 것일까요?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흥미로운 점은, 첫 번째 전쟁에서 패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죽은 숫자가 22,000명이었고(21절) 두 번째 전쟁에서 패할 때에는 18,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이 죽었습니다(25절). 우리는 이 두 숫자를 합치면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과의 두 번 전쟁에서 죽은 군인의 숫자가 40,000명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40,000명이라면 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군인 숫자인 400,000명(2, 17절) 중에 십분의 일(1/10)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좀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의 전체 군인 숫자에서 10%가 죽임을 당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일어난 일일 텐데 왜 10%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40만 명 군인들 중에 두 전쟁을 치루면서 4만 명이 죽고 나서야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렸기 때문입니다(26절). 처음 두 전쟁에서 패한 후에는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첫 번째 전쟁에서 패한 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22절). 마치 한국 사극 드라마를 보면 오랑캐 적군이 성읍 안에 있는 조선 사람들을 죽이려고 성읍을 공격했는데 패하므로 말미암아 다시 자기들 진영으로 와서 전열을 갖추고 그 다음 날 다시 공격하는 것을 연상케 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이 첫 번째 전쟁에 패한 후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잔열을 갖춘 것을 보면 어쩌면 그들은 자기들의 남은 378,000명의 군인으로도(400,000명 – 22,000명 – 378,000명) 충분히 26,700명의 베냐민 자손과 싸워 승리할 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그러나 그 결과는 또 다시 18,000명의 이스라엘 자손이 죽임을 당했습니다(25절). 그래서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앉아 울면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린 것입니다(26절). 그 때에는 처음 두 전쟁과 달리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언약궤”도 거기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도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27절).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다시금 여쭈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28절).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8절).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사사기 1장 1-2절과 사사기 20장 18절의 또 다른 점입니다. 그 다른 점이란 사사기 1장 1-2절에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2절)고 말씀하신 반면에 사사기 20장 18절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18절).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웠는데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22,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고 말씀을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첫 번째 전쟁에서 패한 것입니다. 두 번째 전쟁에서도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올라가서 치라”(23절)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스라엘 자손은 전쟁에서 패했습니다(25절). 왜 이리 이스라엘 자손은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한 것일까요?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 말씀대로 올라가서 베냐민을 치려고 싸웠는데 왜 두 번이나 그들은 전쟁에서 패한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성경 사사기 1장 1-2절 말씀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드는 생각은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과의 두 번 전쟁에서 패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베냐민 자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1:2).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과의 두 번 전쟁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베냐민 자손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었다(또는 주겠노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비교: 1:2; 20:18, 23).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리 말씀을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혹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칠 줄 아시고(21:6) 그러신 것은 아닐까요? 혹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그들이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라고 말하면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칠까봐(6절) 그들로 하여금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자손과 세 번째 전쟁해서 승리했습니다(20:26-48). 그런데 그들은 세 번째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베냐민 지파가 빠지게 하셨으므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습니다(21:15).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 자손과의 두 번 전쟁에서 패하게 하신 이유는 동족끼리의 싸움 속에서 한 지파가 없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또한 그 한 베냐민 지파가 없어지면 다른 열한 지파가 몹시 마음 아파할까봐(21:6, 15, 현대인의 성경) 그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하게 하신 이유가 동족간의 전쟁을 원치 않으셔서 그러셨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그 전쟁의 원인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이 동족간의 전쟁은 첩을 맞이한 어떤 레위 사람(19:1)이 행음하고 자기를 떠나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 달 동안을 지내”는 첩(2절)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고자(3절) 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30절). 그 레위 사람은 자기 첩과 함께 기브아에 들어가 에브라임 산지 사람인 “한 노인”의 집에 유숙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의 첩을 밤새도록 겁탈하고 욕보이고 죽입니다(10-28절). 그래서 그 레위 사람은 자기의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의 집에 도착하여 자기 첩의 시체를 열 두 토막으로 잘라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게 각각 한 토막씩 보냈습니다(29절).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 함께 미스바에 모여(20:1) 베냐민 자손과 전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20장). 이 동족간의 전쟁의 원인을 보면 “레위인이 첩을 둔다는 것부터가 율법을 범한 것이고 그 첩이 행음하고 떠났을 때 잊지 못하여 다시 데려오려 한 것부터가 잘못이라” 생각되며 또한 “이 레위인은 또 첩의 시신을 조각내어 보냄으로써 복수하고자 했고 이스라엘 각 지파가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동기가 선해 보이지 않습니다”(장태석). 어쩌면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과의 두 번 전쟁에서 패하게 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 자손과의 두 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게 하신 이유를 그들의 세 번째 전쟁에 앞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말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세 번째 전쟁에 앞서 이스라엘 자손은 그 이전에 두 번 전쟁에 앞서 행한 것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다른 점이란 이스라엘 자손은 세 번째 전쟁에 앞서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26절). 저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지난 주 새벽기도회 때 묵상한 사사기 7장 15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고.” 메뚜기 떼처럼 수없이 누워있는 적군들인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과 모래알처럼 많은 그들의 낙타를 보고(7:12, 현대인의 성경) 충분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기드온(10-11절)에게 하나님께서는 적군 진영의 두 사람의 대화(꿈 이야기와 그 꿈의 해몽)를 듣게 하셨습니다(15절). 그 꿈과 해몽을 들은 기드온은 먼저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15절). 그리고 기드온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15절) 적군과 전쟁하여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을 경험했습니다(16-8:22).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경배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요4:23). 결국 경배하는 기드온은 하나님께 찾은바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약속하신 대로 미디안을 그의 손에 넘겨주시사 이스라엘을 그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삿6:14, 16, 36; 7:7, 14). 제 생각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과의 세 번째 전쟁에서 승리케 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려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20:26)[그 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법궤가 그곳(벧엘)에 있었고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음(27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라고 여쭈었는데[비교: 첫 번째 여쭘은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18절)였고 두 번째 여쭘은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23절)였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비교: 첫 번째 하나님의 답변은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18절)이였고 두 번째 하나님의 답변은 “올라가서 치라”(23절)였음].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기브아 주위에 군사를 매복하고 3일째에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에 맞서 전열을 갖추었습니다(29-30절). “그때 베냐민 사람들이 성에서 나와 그들과 맞서 싸웠는데 베냐민 사람들은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성에서 점점 멀리 떠났”습니다(31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전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는 길과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이스라엘군을 치기 시작하여 30명 정도 죽이고 이스라엘군이 전과 같이 자기들 앞에서 패하여 도망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우리가 도망하는 척하면서 저들을 성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 하였”던 것입니다(31-32절,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군의 주력 부대는 바알-다말까지 후퇴하여 거기서 다시 전열을 갖추고 반격 태세를 취했으며 기브아 주변에 매복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은 거기서 일제히 뛰쳐나왔”습니다(33절, 현대인의 성경). “그때 전 이스라엘군 중에서 특별히 뽑힌 10,000명의 정예병이 기브아를 정면으로 공격하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냐민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재난이 닥친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34절,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군 앞에서 베냐민 사람을 패하게 하시므로 그날 이스라엘군은 칼을 쓰는 베냐민 사람 25,100명을 쳐 죽였”습니다(35절,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의 세 번째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 자손이 승리했습니다(36-48절).
저는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28절)는 말씀을 받고 올라가 베냐민과의 세 번째 전쟁에서 승리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호수아 8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자손과 아이 성 사람들과의 전쟁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두 전쟁의 승리의 방법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두 전쟁 다 이스라엘 자손을 “매복”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아이 성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약 5,000명을 매복시켰고(수8:12) 이스라엘 군은 기브아 주변에 일부 병력을 매복시켰습니다(삿20:29,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두 전쟁 다 ‘유인 작전’을 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두 전쟁 다 이스라엘 자손이 먼저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시대 때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 아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사(수7:1) 아이 성 사람들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36명 정도의 이스라엘 군이 죽임을 당했습니다(5절). 사사 시대 때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과의 두 번 전쟁에서 패하여 40,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삿20:21, 25). 그리고 두 전쟁 다 적군이 이스라엘의 유인 작전에 빠졌습니다. 여호수아 시대 때 이스라엘의 적군인 아이 왕은 이스라엘이 매복을 시킨 줄도 모르고 아침 일찍 일어나 병력을 이끌고 이스라엘 군과 싸우기 위해 요단 계곡을 향해 달려 나왔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대는 패한 척하면서 광야 길로 도망쳤으므로 아이 성 안에 모든 아이군이 이스라엘 군의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이스라엘 군을 추격하느라 아이 성에서 멀리 떠났습니다(수 7:14-16, 현대인의 성경). 아무래도 아이 왕의 입장에선 이스라엘 군와 처음 전쟁에서 승리했기에[아간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패배케 하신 것인에도 불구하고 아이 왕은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군을 물리쳐서 36명 정도의 이스라엘 군을 죽인 줄 알고 있었을 것임(5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군의 유인 작전에 말려든 것 같습니다. 사사 시대 때 베냐민 사람들도 이스라엘 자손의 유인 작전에 말려들었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성에서 나와 이스라엘 군과 맞서 싸웠는데 베냐민 사람들은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성에서 점점 멀리 떠났습니다(삿20:31). 베냐민 사람들은 “전과 같이 벧엘로 올라가는 길과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이스라엘군을 치기 시작하여 30명 정도 죽이고 이스라엘군이 전과 같이 자기들 앞에서 패하여 도망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우리가 도망하는 척하면서 저들을 성에서 큰 길로 꾀어내자'”한 것입니다(31-32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에 가서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유인 작전에 말려들어 자기들이 패한 것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36절).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승리케 하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전쟁에 대비하여 말을 준비하지만 승리는 여호와께 달려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 21:31, 현대인의 성경). 승리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승리의 하나님께서는 사사 시대 때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습니다(삿1:1-8). 또한 승리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베냐민 사람과의 전쟁에서도 승리케 하셨습니다(20:26-48).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과 싸우려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라 내가 이 땅을 그의 손에 넘겨주었노라”고 말씀하셨고(1:2)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말씀대로 유다 자손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8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베냐민과 두 번 싸웠다가 패배한 이스라엘 자손에게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리라”고 말씀하셨고(20:28)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29-48절).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가시므로 그들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출 33:14,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승리를 이미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부활케 하시므로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승리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우리의 죽음으로부터도 승리케 하셨습니다(고전 15:55).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5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