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검이 무딜 때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사무엘상 1321).

 

 

저에게 있어서 스마트 폰(smart phone)는 유익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제가 읽고 묵상하는 글이나 말씀들의 내용들을 곧장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을 열어 제가 관리하는 웹사이트[네이버 블로그, 페이스 북(개인, 교회, 말씀묵상 나눔 공간 및 목강전사, 연애/결혼/가정, 대학 및 신학교), 카카오톡, 카카오톡 스토리, 교회 웹사이트, 이 메일]에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리는 글들 중에는 제가 그 때 그 때 읽고 있는 기독교 서적들 중 도전받는 글들 있습니다. 저는 그 그들을 인용해서 제가 관리하는 웹사이트 여기저기에 올리므로 다른 지체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밤에 잠들기 전에 성경책을 읽다가 주시는 깨달음이 있으면 제 깨달음을 글로 적어서 제가 관리하는 웹사이트에 올립니다. 어쩔 때는 밤에 성경을 읽다가 주시는 깨달음이 여러 개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저는 그 모든 깨달음을 제 개인 웹사이트 여기저기에 올립니다. 이러한 습관이 저의 신앙생활에 유익을 줍니다. 그렇게 밤에 성경을 읽고 깨달음을 적는 습관과 더불어 저의 신앙생활을 유익하게 하는 것은 새벽기도회 후 지금처럼 은혜 주신 말씀을 목양실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다시금 묵상하는 것입니다. 어제 밤에 이미 묵상한 말씀이지만, 그리고 오늘 새벽기도회 때 전파한 말씀이지만, 많은 때에 주시는 은혜는 이미 묵상하고 설교한 말씀이지만 설교하다가 주시는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렇게 다시금 묵상하고자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도 주시는 깨달음이 있기에 이렇게 새벽기도회 후 조용한 아침 시간에 홀로 목양실 의자에 앉아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좀 더 묵상하고자 하는 말씀은 사무엘상 13장 21절 말씀입니다. 어젯밤에 성경 말씀을 읽다가 이 말씀에 나오는 “무딜 때에”라는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어 묵상을 했었습니다. 그리 묵상할 때 저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이 “무딜 때에”(삼상13:21) 나는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공격에 패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제 자신의 어젯 하루의 삶을 뒤돌아보아도 오전부터 오후까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무딛었을 때에 저는 영적 전쟁에서 사탄의 공격에 패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다. 월요일 아침 일어나서 성경책도 읽지 않고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리했습니다. 그냥 쉬고 싶다고 하여 성경 말씀과 기도도 쉬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사탄의 유혹에 너무나 쉽게 노출되어서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패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젯밤에 성경책을 읽다가 사무엘상 12장 21절과 25절 말씀에서 주신 깨달음이 있어 이렇게 스마트 폰으로 제가 관리는 하는 웹사이트 여기저기에 이런 글을 적어 올렸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않는 헛된 것인 줄 알면서도 왜 돌아서지 못하는 것인가? ㅠ 여전히 악을 행하면 망하는데 ... ㅠㅠ”(2016. 3. 28.). 그랬더니 제 개인 네이버 블로그에 어떤 지체가 이러한 댓글을 적었습니다: “그러게요.. 쉽지 않네요.. 놓을 수가 없네요..ㅠㅠ 주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ㅠㅠ.” 그래서 저는 그 지체의 댓글에 이렇게 비밀 댓글을 달았습니다: “저도요 ㅠㅠ 주님께, 가정에게, 교회에게, 주위 형제, 자매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ㅠㅠ.” 성령의 검이 무딜 때에 저의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도 흐려져 있는 것을 엿봅니다. 그리고 저의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이 흐려져 있을 때 저는 제 자신이 혼동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봅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의 검이 무딜 때에 저는 제 자신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기보다 제 주위 환경에 민감해져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한 영적 상태에서 사탄이 이런 저런 유혹으로 공격해 오면 언행으로 죄를 범하기 전에 먼저 제 생각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들을 싸워 이길 능력이 상실한 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죄를 짓는 것 자체보다 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어젯밤에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13장 21절에서 “무딜 때에”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으므로(19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20절)나 “쇠스랑이나 …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것들을 블레셋 대장장이에게 가지고 갔었다(20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왜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블레셋 사람들은 히브리 사람들이 칼이나 창을 만들어 가지는 것을 두렵게 여겨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에 앞서서 칼이나 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밖에 없었습니다(22절). 그리고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나 쇠스랑이나 쇄채찍을 가지고 전쟁에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도 날카롭지 못하고 무딘 상태에서 전쟁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전쟁에서 싸워 승리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다만 무딘 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원인은 군인 숫자가 3,000명에서[사울에게는 2,000명, 요나단에게는 1,000명](2절) 사울에게는 약 600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5절). 군인들이 그리 줄어든 이유는 사울에게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8절).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사울에게서 “하나씩 둘씩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8절, 현대인의 성경) 사울을 따르던 모든 백성이 무서워서 떨었기 때문입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왜 그들은 무서워서 떨었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3,000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들과 싸우려고 온 적군 블레셋 사람들은 “병거가 삼만 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5절). 그러니 어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떨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7절). 그래서 “적의 어마어마한 병력을 보고 사태가 다급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빈 무덤과 웅덩이를 찾아 숨었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사울과 함께 길갈에 머물러 있었던 사람들은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며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거기서 사울 왕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7일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그때까지 길갈로 오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하나 둘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하고(8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보고(11절)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12절). 그러나 이것은 사울 왕이 망령되이 행한 것이었습니다(13절). 즉,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13절).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13, 14절)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한 때를 생각해 보면 그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 때 우리는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무기인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던지 갖추고 있다 해도 그 검이 무디어서 우리는 사탄의 공격과 유혹에 패할 수밖에 없는 영적 상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 전쟁에 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씀에 견고히 서 있지 못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이끌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 이끌림을 받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기보다 그 힘든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무서워하여 두려워 떨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여(잠3:5) 두려움 속에서 그 힘든 현실을 피하여 도망가기 바쁩니다. 이러한 기피증과 도피증은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의 일은 사람들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삼상14:6) 우리가 두려움 가운데 있으면 우리는 사람들의 숫자의 많음과 적음에 치우쳐 우왕좌왕하며 흩어지기까지 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고 두려운 상황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죄를 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을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영적 분별력과 판단력 그리고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사탄의 공격과 유혹에 패하고 넘어가 육체의 욕심대로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갈5:16, 17). 육체의 일은 분명합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19-21절).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이러한 것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성령의 검을 날카롭게 하여 이러한 육체의 욕심과 육체의 일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인드(mind)를 부지런히 날카롭게 하여 나 자신과 죄악과 세상과 사탄과 죽음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에 승리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