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우리 문에 엎드려 있습니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32-3; 47).

 

 

제가 즐겨본 중국 무협 영화중에 영화배우 주윤발이 출현한 “와호장룡”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영문 제목은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입니다. 여기서 “Crouching Tiger”이란 말은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란 말입니다. 그 모습을 좀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앞에 먹잇감을 노려보면서 잡아먹으려고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 상상이 되십니까?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처럼 지금 사단은 우리 마음 문에 엎드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4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의 아들 가인에게 말씀하시면서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영어 성경 New International Version(NIV)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But if you do not do what is right, sin is crouching at your door.” 즉, 선을 행하지 않고 있으면 죄가 당신 문에 웅크리고(crouching) 있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인의 동생인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4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5절). 그러므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였습니다(5절). 그것을 아시고 계셨던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면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it desires to have you, but you must master it)고 말씀하신 것입니다(7절). 죄가 가인의 마음 문 앞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가인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의 아우인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8절). 결국 가인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그의 대적 마귀(벧전5:8)에게 져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에 다스림을 받음으로 결국 자기 친동생을 죽이는 살인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웅크리고 있었던 사자 같은 사단의 밥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가인의 모습을 생각할 때 저는 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담과 하와도 사탄의 밥이 되어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하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3:3)를 먹되 먼저 여자가 먹고 그녀가 아담에게 주므로 아담도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12절). 흥미로운 점은 그 열매를 먹는 과정 속에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1절) 아담을 유혹하지 않고 그의 여자를 유혹했다는 사실과 그 여자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라고 말했다는 사실입니다(3절). 왜 뱀이 아담을 유혹하지 않고 그의 여자를 유혹하였을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명령)을 직접 받았지만(11절) 그의 여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즉, 그 여자는 하나님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2:17)는 명령을 직접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그의 남편인 아담에게 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이 그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고 말했을 때 그녀는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2-3절). 즉, 그녀는 뱀이 유혹하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웠던 것입니다(3절). 그러나 뱀이 다시금 그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고 유혹하였을 때(4-5절) 그녀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에”라고 말하지 않(못하)고 “그 나무”(선악과)를 보았습니다(6절). 그녀는 이미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처럼 사탄이 유혹할 때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으되”(마4:4, 7, 10)] 싸워 이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선악과를 본 것입니다. 그 결과 그녀는 육신의 정욕(요일2:16) [“먹음직도 하고”(창3:6)]과 안목의 정욕(요일2:16)[“보암직도 하고”(창3:6)]과 이생의 자랑 (요일2:16) [“지혜롭게 할 만큼 탑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에 빠졌습니다. 즉, 그녀는 선악과 열매를 따먹었습니다(6절). 그리고 그녀는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아담)에게 그 열매를 주므로 그도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6절). 좀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아담은 하나님께 직접 명령을 받은 자로서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선악과 열매를 주었을 때 거절하고 자기의 아내를 사랑으로 책망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그 여자는 뱀이 유혹했을 때 한번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그냥 아내가 주는 열매를 받아 자기도 먹은 것이 참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담은 자기 아내를 이끌었어야 하는데 그녀에게 이끌려 함께 선악의 열매를 따먹은 것이 참으로 한심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뱀은 여자에게 말했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9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의 열매를 따먹으므로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아내는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자기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10절). 그렇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었을 때(8절) 하나님께서는 먼저 죄를 범한 그 여자를 부르지 않으시고 아담을 부르셨습니다(9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11절)라고 물었을 때 아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 이게 과연 타당한 이유입니까? 아니 어떻게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그 여자’가 자기에게 열매를 줘서 자기가 먹었다고 핑계를 댈 수가 있습니까? 결국 아담과 그의 아내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므로 인하여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롬5:12).

 

지금 사탄은 우리 문에 엎드려 있습니다. 마치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처럼 사탄은 우리 마음 문에 엎드려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케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지금 주님은 우리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의 마음 문을 여십시다. 그러므로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의 힘으로 죄와 마귀 사탄과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벧전 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