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의 불순종, 나의 불순종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6).

 

 

어제 오후부터 새로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 제목은 “Legacy of Faith”(믿음의 유산)(Lydia Brownback)이란 책입니다. 책 목록을 보니까 성경에 나오는 여러 여인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저자가 각 여인들에 대하여 어떻게 얘기할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자가 제일 먼저 언급한 여인은 바로 온 인류의 첫 여자인 “하와”(Eve)였습니다. 저는 하와에 대한 글을 다 읽고 제 나름대로 이러한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하와는 불순종한 여인이었다.’ 하와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6-17)는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여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3:6).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하와의 모습에 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한 3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로, 나의 불순종은 내가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3장 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 하와는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 나무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음속으로 불순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성경은 그녀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그 나무를 보기 시작한 하와의 마음에는 결국 그 나무의 열매를 탐한 것을 보면 그녀는 그 선악과를 따 먹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있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5장 2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성경은 마음의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 그녀와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간음과 음란”일진대(마15:19)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본다는 것은 그녀와 동침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미 마음으로 간음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의 탐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 출애굽기 20장 17절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웃의 아내도 탐한다는 것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을 한 것입니다. 하와는 이미 마음으로 선악과를 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나무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미 마음으로 탐욕을 품고 선악과를 바라보았을 때 그 나무의 열매가 보암직하였다는 것은 이미 그녀는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 시선이 멀어져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는 믿음의 주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꾸만 제가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바라볼 때 저는 이미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여기서 저의 ‘선악과’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하신 말씀들로서 그 예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지 말라는 말씀(마5:28),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는 말씀(시146:3), “교만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엡13:15).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교만하지 말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마음으로 간음하고, 마음으로 사람을 의지하고, 마음으로 교만한 것을 보면 그 시작은 제 시선이 주님께 맞춰져있지 않고 제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이 여겨주시사 회개의 은총을 날마다 베풀어 주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바라보던 제 시선을 돌이켜 오직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게 해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겸손히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나의 불순종은 듣지 말아야 할 사탄의 미혹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3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와는 아예 뱀의 말을 듣지도 말고 뱀과는 말을 섞지도 말았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교활한 뱀이 다가와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1절, 현대인의 성경)고 물어도 답변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아예 그 자리를 피했어야 했습니다. 성경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은 그리했습니다. 그가 섬기고 있었던 애굽 왕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인 보디발(1절)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에게(10절) 눈짓을 하며 동침하기를 청해도(7절) 요셉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0절). 그 뿐만 아니라 요셉은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1절).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을 때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고 그 여인만 있었습니다(11-12절). 그 때 그 여인이 요셉의 옷을 붙들고 자기와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하니까 요셉은 자기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버려든 채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요셉처럼 이래야 하는데 성경 잠언 7장에 나오는 지혜 없는 어리석은 젊은이처럼(7절)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간 것처럼(8절) 하와는 멀리해야 할 선악과를 가까이 가서 보았을 뿐만 아니라[“그 열매를 따 먹”을 정도의 거리였다면(6절)] 멀리해야 할 뱀을 가까이 하여 뱀의 말을 들었습니다(창3:1ff). 그 뿐만 아니라 하와는 뱀과 말을 섞었습니다. 그 자리를 피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뱀의 말을 듣지 말고 아예 무시해 버리고 그 곳을 떠났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탐심 가운데 뱀의 말을 중요시하고 있었다고 증거입니다.

 

성경 신명기 5장 27절을 보면 “당신은 가까이 나아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듣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처럼 저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을 다 들어야 하는데 저는 그 말씀에 불순종하고 오히려 사탄의 말 듣기를 더 속히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미 저는 저의 생각의 영역에서 사탄의 거짓말과 섞고 있을 때가 참 많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하는데 불쑥 불쑥 자꾸만 사탄의 달콤한 귓속말이 생각날 때가 참 많습니다. 왜 이렇게 나는 사탄의 미혹의 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 볼 때 그 원인은 제 자신에 욕심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제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입니다(약1:14). 그 결과 진리를 떠나(5:19) 시험을 받아(1:14)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하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이 여겨주시사 회개의 은총을 날마다 베풀어 주시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마음의 귀를 열어주시사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이 없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주 음성 외에는”(새 찬송가 446장)]. 그러므로 제가 더 이상 사탄의 달콤한 속삭임을 은근히 좋아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좋아하며 그 들은 말씀을 순종하는 기쁨을 더욱더 맛보는 주님의 제자가 되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나의 불순종은 불순종하는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만일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는 뱀의 미혹에 넘어가 그 열매를 따먹었습니다(3:6).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약속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하와는 불순종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그녀는 자신의 죄악 된 선택의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탐심은 하와로 하여금 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보다 그 나무의 보암직함과 먹음직함과 지혜롭게 탐스러움을 더 원하게 만들어 결국은 그녀로 하여금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만들었습니다(6절). 이렇게 하나님과 멀어지고 '선악과'에 가까이 접근해 있으므로 자신의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만족시키고자 죄악 된 선택을 하면서도 그 죄악 된 선택의 큰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그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 민수기 14장 34절을 보면 “너희는 그 땅을 탐지하는 데 소요된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여 40년 동안 너희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나를 거절한 결과가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탐지하기 위하여 보낸 12명의 정탐꾼들 중 갈렙과 여호수아만 빼고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악평과 불신의 보고를 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낙심케 하고 통곡하며 울게 만들었습니다(민13:31-33; 14:1, 11). 그 결과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하나님을 원망한 자들은 전부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14:28-30). 그들은 자신들의 반역한 죄를 지고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33절). 그리고 그들은 광야에서 소멸되어 죽었습니다(35절).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저의 경우도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불순종하여 불의를 행한 결과 약 19년 전에 제 첫째 아기가 제 품 안에서 죽었습니다. 회개치 않은 제 죄악의 결과를 고통스럽게 겪은 후에도 아직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범하는 제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오 주님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마26:39) 죽기까지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기원합니다(빌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