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전략 (9)

 

 

 

그리고서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왕의 도장을 찍어 나봇의 성에 사는 지도자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는데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여러분은 금식일을 선포하고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아 나봇을 높은 곳에 앉히시오. 그리고 건달 두 사람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언하게 한 다음 그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시오” (열왕기상 218-10, 현대인의 성경).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함부로 글이나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인터넷 상에 잘못 올렸다가는 큰 어려움을 당합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이 악의로 우리를 괴롭히고 고통을 주려고 마음을 먹고 우리의 글이나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악용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서 아주 나쁜 거짓된 글을 올려서 모함을 한다든지 이상한 소문을 퍼트린다면 우리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터넷 상에 올린 글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글이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입은 치명적인 상처는 회복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에서 글이란 것은 부정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21장 8-10절을 보면 북쪽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부인인 이세벨이 자기 남편 아합의 이름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아합 왕의 도장을 찍어 나봇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성읍에 사는 지도자들(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낸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한 마디로 나봇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세벨은 나봇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가지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1-2절). 그 이유는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으로 채소밭을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2절). 그래서 아합 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값을 후하게 매겨 돈을 많이 줘서라도 사려고 했지만(2절) 나봇은 자기 조상의 유산을 아합 왕에게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었기에 아합 왕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3절). 그 때 아합 왕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도 안하고 있으니까(4절) 그의 아내 이세벨이 무슨 근심이 있길래 자기 남편이 식사를 하지 않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5절). 그 때 아합 왕은 이세벨에게 “나봇에게 그의 포도원을 팔거나 내 포도원과 바꾸자고 했더니 그가 거절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이세벨은 자기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이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후(7절) 아합의 이름으로 여러 통의 편지를 써서 왕의 도장을 찍어 나봇의 성에 사는 지도자들과 귀족들에게 보낸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 보낸 편지의 내용을 저는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사탄의 전략을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사람들 앞에서 높은 곳에 앉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21장 9절을 보십시오: “그 편지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여러분은 금식일을 선포하고 주민들을 한자리에 모아 나봇을 높은 곳에 앉히시오”(현대인의 성경). 이세벨이 편지를 써서 나봇과 함께 사는 지도자(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내린 첫 번째 지시(11절)는 금식일을 선포하고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아 나봇을 높은 곳에 앉히라는 것이었습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왜 이세벨은 그리 지시를 내렸을까요? 어차피 결국에는 나봇을 죽이려고 했을 텐데 뭐 하러 금식일까지 선포하면서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아다가 나봇을 상좌에 앉히라고 명하였을까요? 과연 나봇이 그 높은 곳에 앉았을까요? 만일 그가 앉았다면 과연 그가 높은 곳에 앉는 것을 좋아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나봇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3절). 하나님께서 조상의 유산을 아합 왕에게 주는 것을 금하셨다는 나봇의 말을 생각할 때(3절) 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 받기를 좋아하여 잔치와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마23:6). 그런데 사탄의 전략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게 만듭니다. 대접을 받게 만들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상석에 앉히려고 합니다. 그는 우리의 마음을 자꾸만 교만하게 만들어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결국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상석을 좋아하게 만들어(눅20:46) 사람들 앞에서 높임을 받게 하여 교만한 마음을 자극하고 극대화시킵니다.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사람들 앞에서도 의도적으로라도 낮아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높은 곳에 앉는 것이 익숙해지게 되면 우리의 마음도 교만해질 위험이 충분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은 높은 곳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낮은 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낮은 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품어 그의 마음을 배워 나아가야 합니다(빌2:5-8). 우리는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기보다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둘째로,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모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21장 10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하고 ….” 이세벨이 편지를 써서 나봇과 함께 사는 지도자(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내린 두 번째 지시는 건달 두 사람(현대인의 성경)을 세워 나봇 앞에 마주 앉히고 나봇에 대하여 거짓 증거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거짓 증거란 나봇이 하나님과 아합 왕을 저주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10절). 이 얼마나 간교한 계략입니까. 나봇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적도 없었는데 나봇이 사는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나봇을 하나님과 왕을 저주한 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13절). 아니,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지 않는 나봇이 어떻게 하나님을 저주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아합 왕을 아무리 악하다 해도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는 나봇이 저주했겠습니까? 이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은 그 거짓말을 사실로 만들어 버리고자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요8:44). 그에게는 진리가 없으므로 그는 진리의 편에 서지 못합니다(44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44절). 그의 계략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거짓말 하되 사단은 진리에서 더하든지 빼든지 하여 우리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그 거짓말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거짓을 진리로 바꾸는 사탄은 자기의 종인 거짓 증인들을 사용해서라도 우리를 모함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소문내서라도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깨어 근신하여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어떠한 거짓말과 모함 속에서도 우리의 진실성을 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진리가 거짓을 이긴다는 믿음으로 가지고 더욱더 진실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건지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모함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사탄의 교묘한 거짓말이나 그의 거짓 증인들의 거짓말을 잘 분별하여 거짓말을 버리고 더욱더 진리 가운데 견고히 서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사탄의 전략은 우리를 죽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21장 10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라 하였더라.” 이세벨이 편지를 써서 나봇과 함께 사는 지도자(장로)들과 귀족들에게 내린 마지막 세 번째 지시는 나봇을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지시에 따라 나봇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11절) 결국에는 무리가 나봇을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려 쳐 죽였습니다(13절). 그리곤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였습니다(14절). 이 통보를 받은 이세벨은 자기의 남편인 아합 왕에게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15절). 그래서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고 내려갔습니다(16절).

 

이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악한 아합은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을 어기고 자기 이웃의 포도원을 탐내었고(출20:17) 그의 부인인 이세벨은 자기 남편이 원하는 나봇의 포도원을 나봇을 죽여서라도 아합으로 하여금 차지하게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악합니까. 한 나라의 왕과 여왕이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나봇을 죽여서라도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빼앗아 가지니 이 얼마나 악합니까(19절). 아합은 자기 자신을 팔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그의 아내 이세벨은 그를 충동하였습니다(20, 25절). 아마 아합과 이세벨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이긴 줄 알았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범한 죄에게 대하여 아무 죄책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어 아합 왕을 만나(18절)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9절).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아합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21-22절). 이세벨에 대하여도 하나님께서는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24절).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해야 합니다(마10:28).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 묵상 글을 써서 제 개인 Facebook이나 네이버 블로그 같은 SNS(Social Network Service)에 올려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제 글을 공개한다는 것은 한 쪽으로 생각하면 말씀 전파에 효과적이라 생각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쪽으로는 위험부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들어서 더욱 드는 생각은, 마치 짐승이 덫에 걸리듯 제가 제 자신이 쓴 글에 걸려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 나름대로 열심히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제 자신에게 비춰보고 반영하면서 진솔하게 글을 적어내려 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제 허물도 글로 적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앞으로 충분히 제 자신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라는 것은 글 쓴 사람의 의도가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보다 각자 나름대로 글을 해석하되 특히 저를 미워하는 사람이 제 글을 읽는다면 전혀 제 의도와는 달리 제 글을 충분히 오해하여 왜곡하므로 저를 공격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전보다 더 글을 쓰고 나누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묵상한 말씀을 나누는 것이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저로 하여금 이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일할 것입니다. 사탄은 저를 사람들 앞에서 높은 곳에 앉혀 저로 하여금 마음을 교만하게 계속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그의 거짓 증인들로 하여금 저의 말씀 묵상의 글들을 거짓화하여 저를 모함하려고 계속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리하는 목적은 저를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죽이되 사탄은 저의 육신을 죽이기보다(생사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기에) 저의 믿음을 죽이려고 계속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저로 하여금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갖게 하려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약2:26). 사탄은 저로 하여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로 만들어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마7:21). 그러다 저는 두렵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서 사탄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나누면서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나마 더욱더 충분히 누리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