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전략 (7)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사사기 1615).

 

 

여러분, 힘들고 지쳐 낙심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특히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께 구하는 5가지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힘’, ‘사랑의 힘’, ‘말씀의 힘’, ‘기도의 힘’ 그리고 ‘성령님의 힘’입니다. 제가 이 5가지 힘을 구하는 이유는 그 힘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구하는 이유는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깊이 깨달아 가면 갈수록 저는 그 은혜의 힘으로 감사하면서 더욱더 주님의 일을 수고할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고전15:10). 또한 제가 주님께 사랑의 힘을 구하는 이유는 제 자신의 힘으로는 제 아내조차도 사랑할 수 없음을 점점 더 깊이 그리고 많이 깨달아 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만 제 아내를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물댄 동산이 되어서 나 같은 죄인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깊이, 많이, 넓게, 높게 깨달아 알아갈 때에만이(엡3:19) 그 주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마22:37-39). 이렇게 저는 주님께 5가지 힘을 구하곤 하는데 문제는 사탄은 이 5가지의 힘과 정반대로 저의 삶 속에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탄은 제가 주님께 은혜의 힘을 구할 때 제 생각에 은혜 의식 보다 공로 의식을 자꾸만 심어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다 행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고백을 해야 하는데(눅17:10) 사탄은 제 자신을 우쭐되게 자극하며 또한 디오드레베와 같이 교회 사람들 중에서 으뜸 되는 것을 좋아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요삼1:9). 결국 사탄은 저로 하여금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다’라는 고백이 아닌 ‘나의 나 된 것은 내 힘(능력)으로 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제 머리에 주입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사업을 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사탄이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일 것입니다(신8:17).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네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것인데도 말입니다(18절). 또한 사탄은 제가 주님께 사랑의 힘을 구할 때 제 마음에 미움을 싹트게 하여 제 아내조차도 미워하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일3:15) 사탄은 저와 주님 안에서 한 몸인 제 아내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녀는 미워하고 또 미워하게 부단히 제 삶 속에 일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제가 주님께 말씀의 힘을 구할 때 사탄은 저로 하여금 성경책을 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저로 하여금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지 못하게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지켜 행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저의 마음을 저의 형제, 자매들 위에 교만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신17:19-20). 그 뿐만 아니라 사탄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면 진리 그 자체보다 그 진리의 말씀에 추가하던지 빼던지 하게 거짓말을 제 귀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은 저로 하여금 기도의 힘을 얻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제가 기도를 하려고 하면 자꾸만 졸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데(마26:41) 사탄의 목적은 저로 하여금 유혹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기에 자꾸만 기도할 때 연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졸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무릎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마음의 자세와 기도의 습관을 길러야 하는데 저로 하여금 서서 제 힘과 능력과 경험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계속해서 충돌질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님의 힘을 구할 때 사탄은 죄악 된 육신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저를 부축이고 있습니다. 즉, 사단은 저로 하여금 성령님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육체의 일을 하게 만들려고 계속해서 유인하고 있습니다(갈5:16-21). 이렇게 사탄은 제가 주님께 구하고 있는 5가지 힘과 정반대로 제 삶에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탄은 이 모든 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으로 부터 저를 멀어지게 만들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습니다. 그 주님을 향한 저의 믿음을 공격하여 자꾸만 제 생각의 영역에서 의문을 던지게 만들고 결국에 가서는 제 마음의 의심을 품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저로 하여금 힘의 근원이 되시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데서(히12:2) 제 시선을 자꾸만 돌려 주님을 보고 믿음으로 걷는 저로 하여금 “바람”을 보게 하고 제 마음을 두렵게 하므로(마14:30) 두려운 상황에 이끌림을 받게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꾐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 사사기 16장 15절을 보면 사사 삼손이 사랑하는 여인인 들릴라(4절)가 삼손을 날마다 재촉하여 조를 때(16절) 한 말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15절). 여기서 들릴라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나하였도다”라는 말은 실제로 들릴라가 알고 싶었다기 보다 그녀를 뒤에서 배후 조종하고 있었던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 알고 싶어 했던 것이었습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들릴라에게 가서 “너는 삼손을 꾀어 그가 지닌 큰 힘의 비결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눌러 묶고 복종시킬 수 있는지 알아 오너라. 그러면 우리가 각각 은화 1,100개씩 너에게 주겠다.”고 말하였기에(5절, 현대인의 성경) 그녀는 삼손에게 네 번이나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는지”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6, 10, 13, 15절). 즉, 들릴라가 원했던 것은 삼손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는가 라기 보다 그녀를 뒤에서 배후 조종하고 있었던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에게 각각 은화 1,100개씩(합계: 5,500개)이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녀에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1)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마르지 않은 읽 일곱 가닥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7절), (2)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11절), (3)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자면 되리라”(13절). 이렇게 삼손이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니까 들릴라는 삼손에게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15절)라고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 된 것입니다(16절). 그래서 결국 삼손은 들릴라에게 진심을 드러내어 모든 것을 털어 놓았습니다: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17절). 그 말을 들은 들릴라는 “이제야 삼손이 진실을 말한 줄 알고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에게 사람을 보내 ‘이제 한 번만 더 오십시오. 삼손이 사실을 다 털어놓았습니다.’하고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약속대로 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고 들릴라가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고 말하니까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19-20절). 그 결과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혔고 그들은 삼손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21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어떻게 삼손이 들릴라의 꾐이 넘어갔을까를 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이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삼손은 들릴라의 배후 인물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들릴라 뒤에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 그녀에게 뇌물을 주겠다고 약속해서 자기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자기를 능히 결박하고 굴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들릴라로 하여금 자기를 꾀라고 시켰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저도 삼손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때에 저는 제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 뒤에 사탄이 배후 조종하여 저의 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저의 작은 믿음을 흔들어 놓는 것을 경험합니다. 흔들어 놓되 사탄은 저로 하여금 제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의 문제나 고통 등을 제 육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게 만들므로 저로 하여금 걱정하고 염려하며 우왕좌왕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저의 취약점이 제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임을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여러 모양으로 제 가족 식구를 통하여 저의 영적 힘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든 생각은 삼손은 들릴라에게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세 번째 거짓말에 가서는 자기의 머리털 이야기를 한 것을 볼 때 저는 삼손이 들릴라에 꾐에 점점 더 넘어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거짓말 때에는 삼손이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아직 마르지 않은 일곱 가닥의 푸른 칡덩굴”(현대인의 성경)] 자기를 결박하면 자기가 힘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7절) 두 번째 거짓말 때에는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자기를 결박하면 자기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11절)을 보면 삼손은 들릴라에 꾐에 전혀 넘어가지 않고 요동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가 들릴라에게 세 번째 거짓말을 했을 때에는 자기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자기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어느 정도 들릴라의 꾐에 넘어갔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그러다가 들릴라가 날마다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니까 삼손은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었으므로(16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에는 들릴라에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어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고 말했습니다(17절). 결국 삼손은 들릴라의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삼손의 첫 번째 여자였던 딤나에 사는 여인과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14장).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그녀를 보고(14:1) 그녀를 좋아하게 되어(3절) 자기 부모에게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2, 3절). 그래서 삼손의 아버지가 딤나로 내려갔는데 삼손이 거기서 찬치를 베풀고 친구로 삼은 30명에게 수수께끼를 내었습니다(10-12절). 그런데 그 30명 친구들이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못 푸니까 일곱 째 날[NASB는 4일째 되는 날]에 삼손의 아내인 딤나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려 달라 …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을 불사르리라 …”(15절). 그래서 삼손의 아내는 그 잔치 기간인 7일 동안 계속 울고 삼손에게 졸라대자(강요함으로) 삼손은 견디지 못해 7일째 되는 날에 그녀에게 그 수수께끼의 답을 말해주고 말았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삼손은 이미 첫 번째 여자였던 딤나 여인에게 재촉을 당해보고 그녀가 7일 동안 울고 졸라대므로 견디지 못해 수수께끼의 답을 그녀에게 말해준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들릴라가 날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란 말로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니까 결국 삼손은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어 자기의 진심을 들릴라에게 다 털어 놓은 것입니다(16:15-17).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요셉을 날마다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가 생각났습니다(창39장). 그녀는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던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였습니다(6-7절). 그 때 요셉은 그녀의 청을 거절했습니다(8절). 그 이유는 그는 자기의 주인인 보디발이 금한 그의 아내와 동침하여 그에게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동침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9절). 그런데 보십시오. 보디발의 아내도 들릴라처럼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는 모습을요(10절). 그러나 요셉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절). 심지어 요셉은 그녀와 단 둘이 집에 있었을 때에도 그녀가 자기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했을 때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든 채 뿌리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12절). 삼손도 요셉처럼 들릴라가 자기에게 아무리 날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재촉하고 조른다 할지라도 그녀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삼손은 결국에 가서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자기의 진심을 다 털어놓았습니다(삿16:15, 16).

 

이 사실을 볼 때 저는 삼손과 요셉을 좀 대조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삼손은 왜 요셉처럼 여인의 유혹(꾐)을 뿌리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요셉의 경우는 보디발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고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했다는 차이는 있지만 제 생각에 이 두 남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여(잠8:13) 악을 멀리했지만(참고: 욥1:1, 8; 2:3, 28:28) 삼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나실인으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삿13:4, 7). 즉, 삼손은 부정한 이방 여인들을 세 명이나 가까이 하였을 뿐만 아니라[딤나 여인(14장), 가사 기생(16:1), 들릴라(4절)] 부정한 죽은 사자의 몸에서 꿀을 떠서 먹었고 또한 자기 부모에게도 그 꿀이 죽은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 알리지 않고 드려서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였습니다(14:6-9).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답게(13:5, 7) 살지 못했던 삼손은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들릴라 뒤에서 배후 조종하는 것도 모르고 그녀의 꾐에(16:5) 자기도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다가 결국에는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삼손처럼 하나님께 바쳐진 주님의 종답게 살지 못하고 사단의 유혹에 결국에는 넘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가 수 없이 많습니다. 제 마음은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요셉처럼 행하고 싶은데 제 육신은 삼손처럼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삼하12:14). 사단은 저의 취약점인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2:16)을 자극하여 하나님께 죄를 짓게 하므로 저를 낙심시키며 저의 영적 힘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든 생각은,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말을 듣지 아니하여 그녀와 동침하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는데(창39:10) 삼손은 들릴라에게 모든 것을 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잤다는 것입니다(삿16:19). 아니 어떻게 삼손은 자기를 꾀었던 들릴라에게 자기 머리를 밀면 자기의 힘이 떠난다는 말을 다해놓고도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잘 수가 있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정도로 삼손은 들릴라는 사랑하므로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삼손은 그가 사랑했던 들릴라의 배후 조종하고 있었던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의 위험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들릴라에게 진심을 다 털어 놓고도 그 결과를 전혀 예상도 못했기에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주전자 속에 있는 개구리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한 대학 실험실에서 개구리의 신경반응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펄펄 끓는 물에 개구리를 넣으니까 즉각 반응으로 살기위해 튀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 했는데 상황 변화를 느끼지도 상황에 대응하지도 못한 개구리는 서서히 삶아져 죽어갔다고 합니다(인터넷). 저는 삼손이 서서히 삶아져 죽어간 주전자 속의 개구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찬물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열을 가했던 것처럼 삼손은 사랑하는 들릴라의 꾐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자기의 진심을 다 털어 놓고도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블레셋 다섯 지방의 통치자들이 보기에 ‘나 잡아먹으세요’가 아니고 무엇이었겠습니까.

 

성경 잠언 7장에 나오는 자기 자신을 망치게 한 한 지혜 없는 자가 생각납니다. 이 어리석은 자는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지나갈 때(잠7:8)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오히려 돌이켜 떠났어야 했습니다(4:15). 그러나 그는 그 음녀의 길을 돌이켜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걸어가되 그 음녀의 집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것도 해가 저물고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 말입니다(7:9). 제 생각엔 이 어리석은 소년이 깊은 밤의 중 가운데 은밀하게 창녀의 집으로 간 원인은 그가 그의 눈의 중 가운데로 하나님의 말씀에 바라보면서 그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어쩌면 그는 그의 눈으로 자기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그 음녀를 은밀히 쳐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6절). 그리고 이 어리석은 자가 음녀의 집으로 갔을 때(8절) 그 “간고한 계집”은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그를 맞이하였습니다(10절). 그 숨겨진 의도는 “함정”을 놓아 그로 하여금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faithless)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 음녀의 숨겨진 참된 의도는 많은 결혼한 남자들로 하여금 결혼할 때에 언약하였던 것을 파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박윤선). 이 숨겨진 의도를 가지고 그 음녀는 그 어리석은 자를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었습니다(21절). 여기서 ‘꾀다’라는 말은 영어로 “seduce” (유혹)입니다. 이 영어 단어 “seduction”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그 문자적 의미는 “to lead astray” 곧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다,’ ‘미혹시키다’ 또는 ‘타락시키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사용되었을 시에는 유혹과 꾐이 관련되어서 한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흥분을 일으키게 하여 행동 선택을 하게 만들되 그 행동이 결국에는 그 사람을 타락하게 이끈다는 것입니다(Wikipedia). 그러면 어떻게 음녀가 한 지혜 없는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하여 타락시켰을까요? 적어도 3가지입니다: (1) 음녀는 보이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했습니다(10절 –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으니 …). (2) 음녀는 만지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했습니다(13절 – “그 계집이 붙잡고 입을 맞추며 …”). (3) 음녀는 들리는 것으로 어리석은 남자를 유혹했습니다(21절 – “여러 가지 고운 말로 … 입술의 호리는 말로”). 지금도 사탄은 어리석은 저를 유혹하여 타락을 시키곤 합니다. 사탄의 저의 취약점인 성적으로 유혹하여 마음으로 간음하게 만들곤 합니다. 그 결과 사탄은 저의 영적 힘을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힘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주님께 은혜의 힘, 사랑의 힘, 말씀의 힘, 기도의 힘 그리고 성령님의 힘을 구합니다. 그 이유는 저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제 자신과 이 세상과 죄와 사탄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수 없이 사탄의 꾐에 넘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고 지금도 범하고 있고 앞으로도 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주님께 힘을 구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만이 저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