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전략 (2)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에스라 4장 4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스4:1)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려고 했을 때 그 소식을 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은(1절) “그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4절). 어떻게 성전 재건축을 방해하였습니까?
첫째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했습니다 (4절).
다시 말하면, 대적들은 유다 백성들을 위협하고 두렵게 하므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을 약하게 하므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지 못하게 하려고 힘썼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사탄의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일을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그는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연약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사탄이 제 마음을 연약하게 하는 여러 전략 중 하나는 바로 삐뚤어진 자아관을 심어주므로 제 마음을 연약하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삐뚤어진 자아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제 자신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하고 듣게 만들므로 제 자신 또한 삐뚤어지게 바라보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저는 제게 제 자신을 바라보면서 실망하고 낙망하며 절망할 때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소망으로 인하여 제 마음을 소성케 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영을 저희 하였습니다(5절).
다시 말하면, 대적들은 “왕의 모사들(7:14, 28)”이나 혹은 “왕의 비서관 같은 자”(박윤선)에게 뇌물을 주어서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뇌물을 관리에게 주어서 의로운 일의 성사를 방해하게 하는 것은 의를 대적하는 원수의 행동이니 그것이야말로 마귀의 행동이다.”
뇌물이란 무엇입니까? 어느 인터넷 웹 사이트에선 뇌물의 정의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직권(職權)을 이용하여 특별한 편의를 보아 달라는 뜻으로 주는 부정한 금품.” 이러한 뇌물은 결국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므로 말미암아(출23:8) 부정부패[공직자가 사적인 이익(금전적 이득, 지위확보, 영향력 행사)이나 기타 어떤 목적을 위해 공적인 역할을 남용하거나 그 지위와 관련된 법적·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일탈하는 행위(인터넷)]란 썩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러한 썩은 열매의 쓴 뿌리는 결국 돈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딤후3:2). 돈을 사랑하므로 말미암아 뇌물을 받는 것이고 뇌물로 인하여 판단력과 양심이 흐려지므로 말미암아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 분쟁과 나뉨과 요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을 심비에 계속 깊이 적어야 할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셋째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은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을 고소”하였습니다(스4:6).
즉, 대적들은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에게 글을 올려 고소했습니다(6, 8절). 그 고소 내용을 보면 이스라엘 대적들은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폐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고 있는데(12, 15, 19절)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13절)는 말이었습니다. 또한 이 패역한 성읍은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열왕과 각 도에 손해”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 19절). 더 나아가서, 그 고소 내용에는 만일 예루살렘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진다는 말이었습니다(16절).
요즘 “고소”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듣습니다. 물론 뉴스를 통해서 수 없이 듣지만 교회 안에서도 세상 법정에 고소를 하는 사건을 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고소하는 소식을 접할 때 저는 가끔 고린도전서 6장 5-6절 말씀을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주님의 몸 된 교회 한 지체로서 창피하고 부끄러워해야 함을 상기하게 됩니다. 형제간에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어서 세상 법정까지 교회 문제를 가지고 가야 하는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단은 비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고소하게도 하지만 또한 믿는 성도를 유혹하여 교회를 고소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므로 사단은 교회를 갈라놓게 하기도 하고 또한 무너트리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방해 역사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한 저희 동료와 강 서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려서(17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역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21절). 결국 이 조소를 받은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들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예루살렘 성읍 및 성전 재건 역사를 그치게 하므로 말미암아(23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 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24절).
사탄의 목적은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항상 교회를 갈라놓고 무너트리려고 집요하게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여 약하게 만들어서 주님의 전을 세우는 일을 멈추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돈을 사랑하게 자극하고 또한 돈 문제로 성도들 간에 다투고 싸우게도 만들기도 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성도들 간에서 서로 고소까지 하게 만들므로 세상 법정에까지 문제를 가지고 가 결국 많은 성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신앙을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역사를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파악하여 그가 우리를 유혹할 때 믿음으로 싸워 이겨야 합니다. 에스라 5장과 6장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은 하나님의 역사가 사탄의 역사를 이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전 역사하는 손을 힘 있게 하시므로 말미암아(6:22) 성전을 재건축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마16:18) 어떠한 사탄의 대적이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그의 교회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망하지 말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역사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