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전략 (1)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출애굽기 143).

 

 

이 구절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탄의 전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로 하여금 목표가 없이 방황하며 살게 하는 것이고 둘째로는 우리를 코너에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사탄의 첫 번째 전략인 목적이 없이 방황하며 살게 하는 것은 본문을 영어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그 땅에서 아득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영어성경 NASB를 보면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They are wondering aimlessly in the land." 이 말씀은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바로의 생각을 이미 알고 계시므로 이 바로의 생각을 모세에게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목적이 없이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 들... 왜 바로는 이렇게 생각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목적을 주셨는데 왜 바로는 그들이 광야에서 목적이 없이 방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궁금한 것 입니다.

 

먼저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목적은 예배입니다. 어느 성경학자는 우리의 구원이 방법이 라면 그 목적은 예배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예배케 하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목적은 바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적이 없이 방황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생각해 볼 때에 출애굽기 14장 12절 말씀을 한 예로 들고 싶습니다: "...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 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낮겠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뒤돌아 본 것입니다. 광야에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애굽을 섬기겠다고 뒤돌아 본 것입니다. 마땅히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면서 하나님의 경배하고 또한 광야에서 죽을지언정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애굽을 섬기고 광야 에서 죽는 것보다 애굽에서 생명을 좀 더 부지하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광야의 영성보다 도시인 애굽의 육신의 정욕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를 돌아보면서 갈팡질팡하니 바로의 생각대로 그들은 목적 없이 광야에 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없는 방황의 삶은 너무나 많은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많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자꾸만 뒤돌아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 옛 생활의 향수병에 걸려 과거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우왕좌왕하면서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기보다 혼동의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그러기에 어느 면으로 보면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책이 best seller가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봅니다. 예배의 목적과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 이 외에도 하나님이 우리 개개인을 부르시사 주시는 삶의 목적에 확신이 없이 이 광야의 삶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바로”와 같은 사단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의 전략이 먹혀 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첫 번째 전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망각하고 혼동 상태에서 방황하는 삶입니다.

 

마지막 두 번째로 사탄의 또 다른 전략은 우리를 광야에서 코너(corner)로 몰아세우는 것입니다. 권투를 보면 코너로 몰아세워서 상대방 선수를 쓰러트리려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우리를 코너에 몰아세워 쓰러트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홍해, 좌우에는 사막, 그리고 바로는 자기가 뒤를 좇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서남북이 막혀 도망갈 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14:7) 거느리고 장관들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아간 것입니다. 그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14:10)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은 후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14:11). 이렇게 원망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보다 당면한 상황의 지배를 받아 다시 과거를 돌아보며 섬김의 대상을 바꾸고자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사탄이 기뻐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 사탄이 기뻐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에 갇힌 상황처럼 아무리 들러 보아도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지도자를 원망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동서남북을 아무리 보아도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 두려움과 낙심 속에서 좌절하면 하나님과 사람을 원망할 때가 있지 않는지요? 그리고는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과거를 뒤돌아보면 믿음 없는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죄를 범하며 사탄의 기뻐하는 일을 행하지는 않는지요?

 

이러한 사탄의 두 가지 전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종 모세는 그 전략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 의 목적은 분명했고 또한 광야에 갇힌바 된 상황에서도 위를 바라보면 기도하는 가운데 홍해를 들고 있는 지팡이로 치라는 명령에 그저 믿음으로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홍해가 갈라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모세의 지팡이와 바로의 군대를 비교할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대도 안 되는 싸움인데 모세의 단순한 순종으로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내리쳤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았지만 바로와 그의 군대는 다 멸망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그러므로 사탄의 전략을 이기는 방법은 모세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의 목적에 이끌림을 받으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진정한 약속의 땅인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분명한 삶의 목적, 확신하는 가운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참된 예배의 삶 가운데 천국을 향하여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이기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한 승리의 삶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