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증거

 

 

 

[요한일서 56-12]

 

 

여러분, 우리 모두 합부로 전도하지 마십시다. 제가 2005년 4월 8일에 “함부로 전도하지 마십시다”란 제목 아래 글을 썼습니다. 이 문구는 제가 그날 저희 교회 나오시던 어르신 한분을 찾아뵙고 난 후에 “함부로 전도하지 마십시다”란 제목 아래 글을 썼습니다. 제가 그 때 그 어르신을 찾아뵙고 전도하려고 그분이 누워계신 병원에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분이 저에게 ‘이런 얘기 목사님이 계신데서 말하면 안 되는데 …’하시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숯덩이’와 같이 시꺼머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자신의 '숯덩이'와 같은 마음을 고백하면서 낮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은 나의 또한 우리의 창피요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글을 써서 기록에 남겨놓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존재가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가운데서 우리의 행함은 너무나 바리새인들처럼 또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의 바울, 즉 사울의 모습처럼 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사람 보기에 완벽한(?) 기독교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실 되지 못한 인격과 삶, 위선이 가득 찬 마음과 삶은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 앞에서 들춰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전도를 방해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는 복음 전도, 무능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입술은 사랑을 외치질 모르지만 사랑을 상대방이 느낄 수 없다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 밖에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의 전도 프로그램이나 기독교 단체에서 받은 전도 훈련 등등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가운데서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를 증인의 삶으로 하려고 하기 전에 증거로 하려고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존재 자체는 증인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면서 열심히 증거를 하려고 하니 결국 교회로 인도는 할지 모르지만 전도자의 삶을 보면서 시험에 들어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떠나 다시는 교회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영혼으로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없는 전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기보다 사람의 행함이 들어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전도 왕'이란 말도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배당에 채워지고 있는 사람 숫자들, 과연 교회 안에서 구원받고 천국 가는 영혼들이 몇 퍼센트가 될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 함부로 전도하지 마십시다.” 여러분은 제가 쓴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를 증인의 삶으로 하려고 하기 전에 증거로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증인의 삶을 살지 못하는 가운데서 입술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9절 하반절과 10절 하반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9절하), “…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10절하).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증거”란 제목 아래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6-12 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 “간증”(testimony)이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간증은 무엇입니까? 저는 “간증”하면 성경 사도행전 22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간증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첫째 부분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 믿기 전(Before Christ)의 이야기입니다(22:2-5a).

 

그 이야기란 사울은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어서(행22:3)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여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잡아 가두고 죽이기까지 했”었던 이야기입니다(4절). 이 일은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바울의 “증인”이었습니다(5절).

 

(2) 둘째 부분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었던 그 순간(On Christ)의 이야기입니다(5b-16).

 

그 이야기란 사울이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에게서 다메섹에 사는 신자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다가 처벌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5절)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정오쯤 되어 “갑자기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그에게 비췄고, 그 때 그가 땅에 엎드려져 사울이 박해하든 나사렛 예수님께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 사울은 “주님 누구시니이까”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답변하신 이야기입니다(7-8절).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말씀 하셨고(10절), 사울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뜨게 된 후 아나니아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14-15절). 그리고 사울은 주님의 이름으로 불러 세례를 받고 자신의 죄를 씻음을 받았습니다(16절).

 

(3) 마지막 셋째 부분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After Christ)의 이야기입니다 (17-21).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주님을 만나 회심(Conversion)하고 또한 이방인의 사도로 사명(Commission)을 받아(21절) 그가 보고 들은 일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15절).

 

여러분, “하나님의 증거”가 ‘나의 증거’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셨습니다(요일5:9, 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 사도행전 2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간증처럼 우리도 간증을 하십시다. 우리가 간증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장소에서 조용한 마음으로 또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기 전(Before Christ)의 나의 이야기, 예수님을 믿었던 그 순간(On Christ)의 나의 이야기,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후(After Christ)의 나의 이야기를 써 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쓴 그 간증문을 우리 가족과 나누십시다. 특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우리 식구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나누십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9절 하반절과 10절 하반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9절하), “…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 하였음이라”(10절하). 사도 요한은 그가 쓴 요한복음과 요한1, 2,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증거”(witness)란 단어를 거의 70-80번 사용할 정도로 그가 자주 사용한 단어인데 그 “증거”를 한 7 종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Word Studies in the N.T. 주석):

 

(1) 아버지 하나님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the Father).

 

성경 요한복음 5장 3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직접 나를 증거하셨다”].

 

(2) 그리스도가 자신에 대한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Christ himself).

 

성경 요한복음 8장 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3) 일들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works).

 

성경 요한복음 10장 2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4) 성경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Scripture).

 

성경 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 선구자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the forerunner).

 

성경 요한복음 1장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6) 제자들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the disciples).

 

성경 요한일서 1장 2절을 보십시오: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성경 요한일서 4장 1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7) 성령님의 증거입니다(The witness of the Spirit).

 

성경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이 7 종류의 “증거”중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9절 하반절과 10절 하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증거는 첫 번째 종류의 증거인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입니다. 이것을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의 증거”(the testimony of Go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증거”의 내용은 “그 아들에 대하여”(9, 10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신 독생자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를 하셨다는 말씀인데 독생자 예수님이 누구라고 증거하셨다는 말씀일까요? 우리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이미 묵상한 요한일서 5장 1절과 5절을 다시 봐야 합니다. 1절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라고 말하였고, 5절에 가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라고 이렇게 예수님에 대하여 2가지 진리의 말씀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9절과 10절에서 하나님의 증거는 “그의 아들에 대하여”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남은 하나의 진리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는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 9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증거”는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6-12절 적어도 2가지 증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의 증거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6-8절을 보십시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아들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은 성령님 자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세 증인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이 셋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세 증인인 “성령과 물과 피”는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이 사실을 증거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증거”란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인데(9-10절) 그 증거란 “하나님의 아들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진리이신 성령님이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씀에 “물”과 “피”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사도 요한은 “물”이란 단어를 요한일서에서는 여기 요한일서 5장 6, 8절에서만 사용하고 있지만 동일한 저자인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에서는 여러 번 사용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26, 31, 33절을 보면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3장 22절과 4절 12절을 보면 예수님도 “물”로 세례를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물”이란 “정화” 또는 “죄를 씻음”(cleansing)을 상징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3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이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씻음”을 의미합니다(비교: 겔 36:25-27). 또한 “물”이란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님의 선물’(“성령 부어 주심)(the gift of the Spirit)을 상징하기도 합니다(요4:13-14; 7:37-39). 결국 “물”이란 “정화” 또는 “죄를 씻음”을 상징하되 특히 성령님으로 인한 “죄를 씻음”을 의미합니다(The IVP 신약 주석). 그러면 “피”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우리가 이미 묵상한 요한일서 1장 7절 하반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성경 요한복음 6장 51-58절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피”라는 것은 예수님의 자기희생적인 죽음을 가리키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이 없이는 영생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피 흘려 죽으심이 없이는 죄 씻음이나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요한복음 19장 34절을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고 군인 한 사람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을 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쏟아져 나온 예수님의 “피와 물”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님의 선물(“물”)과 죄 씻음(“피”)을 의미합니다(The IVP 신약 주석).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8절에서 “성령과 물과 피”, 이 세 증인이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미 요한일서 5장 1절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씀의 의미도 배웠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즉 우리를 우리의 죄에게 구원할 자이심을 의미하고 “그리스도”란 “기름 부은 자”란 뜻으로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시요 그 선지자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만왕의 왕이시요 대제사장이시요 그 선지자이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미 요한일서 5장 5절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라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6-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가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로마서 6장과 연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피”)과 합하여 세례(“물”)를 받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었다는 것입니다(롬6:4).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므로 우리의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6절). 한 마디로,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요일5:6)의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롬6:11). 이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그 결과는 영원한 생명인 것입니다(22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11-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 하나님의 증거사람들의 증언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여기서 사도 요한은 “사람들의 증언”과 “하나님의 증거” 즉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을 비교하면서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았다면 더욱 크신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받은 “사람들의 증언”은 무엇입니까? 우선 이 요한일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받은 사람들의 증언 중에는 요한일서 1장 2절 말씀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이 생명이 세상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므로 그분을 여러분에게 증거하며 전합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즉, 그들은 사도 요한의 증언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 요한은 그에게 임한 성령님으로 인하여 권능을 받아 그가 직접 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일서 편지를 통해 그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이 증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신 것을 그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시되 첫째로는 “성령과 물과 피”로 증언하시고(6-8절), 둘째로는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증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 하나님의 증거를 듣는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증거를 듣는 첫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1, 4절). 즉, 그들은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신 자들(중생케 하신 자들)로서(성령님의 중생케 하신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시사(성령님의 회심케 하신 사랑) 영생을 얻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11절을 보십시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현대인의 성경) “그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이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증거”(9절),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신 증거(10절)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11절).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다고 사도 요한은 말씀했는데 (11절) 그 의미는 영원한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장 1-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요(1절)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그리고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되었고, 사도 요한은 자기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보았으므로 그 분을 여러분에게 증거하며 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이 사도 요한의 증언을 받을진대 더욱 크신 하나님의 증거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받고 진리이신 성령님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와 회심의 역사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안에는 “증거”가 있습니다(5:10). 그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12절). 그 이유는 그들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셨기 때문입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2) 하나님의 증거를 듣는 둘째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10).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10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고 말씀을 한 후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a) 먼저, 사도 요한은 왜 하나님을 아들을 믿는 자라고 말씀한 후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씀(대조)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씀한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여기서 “말씀”은 성자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인데 사도 요한은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라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는 말씀입니다.

 

(b)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10절에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미 묵상한 요한일서 1장 10절을 보면 이미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에 대해 언급을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현대인의 성경). 빚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데(5절) 우리가 그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하면서[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현대인의 성경)] 어둠에 행하면[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그래도 한다면(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현대인의 성경)](6절). 그러면서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고(9절) 오히려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요(8절) 또한 그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10절).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5장 10절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 대하여 증거하신 것을 그가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아들을 모시지 않는 사람”]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그리고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지 않는 불신자들은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2절). 그 말씀은 불신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아니요(1, 4절), 거듭난 자들(중생한 자들)이 아니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엡2:1)이기에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말입니다(요일5:12).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요(1절) 하나님의 아들이심(5절)을 증거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도 요한의 증언을 받을 진데 더욱 큰 또는 “훨씬 더 강력한 증거”를 받지 않겠습니까(9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 아버지의 증거는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으로서(9절) 그 증거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증언입니다. 이 하나님의 증거는 “성령과 물과 피”의 증거로서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6-8절, 현대인의 성경).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증거란 “하나님의 아들은 물과 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요 이 사실을 진리이신 성령님이 증거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희생적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님의 선물(“물”)과 죄 씻음(“피”)으로 구원(영원한 생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증거를 듣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10절) “아들이 있는 자”[“하나님의 아들을 모신 사람”(현대인의 성경)]는 생명[“영생”(13절)]이 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로서(12절)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이요(10절) 그에게는 “생명”(영원한 생명)이 없습니다(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