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여기서 “뱀”은 지혜의 상징입니다. 주님께서 뱀의 지혜를 말씀하신 것은 무엇보다 뱀은 자기에게 닥쳐오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조심성 있게 대처하여서 그 어려움을 모면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뱀이 지혜롭다는 것은 신중한 분별력을 말합니다. 뱀의 지혜로움은 모든 사리를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우리가 뱀같이 지혜로워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파송하셨는데 이 세상에는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인 거짓 선지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마 7:15; 10:16).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즉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하라’ 말씀하시면서 “양”과 “이리”를 말씀하셨습니다(7:15). 그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나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의 의미는 거짓 선지자들의 양의 탈을 쓰고 양처럼 행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 거짓 선지자들은 양 같이 보여서 우리에게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은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 오지만 그들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노략질”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에는 ‘강도나 사기꾼과 같이 극심하게 탐욕스러운’이란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10:16).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한 4가지를 좀 생각해 보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우리에게도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별하라”는 단어의 의미는 ‘시험하라’(test)입니다. 이 ‘시험하라’는 단어는 금속의 순도와 가치를 결정하기 위해서 금속을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금속공학자의 용어라고 합니다(MacArthur). 그래서 저는 금속의 순도와 가치를 결정하는 금속 분속 방법에 대해서 인터넷을 뒤져보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글들이 있지만 전문 용어가 많고 해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포항동부 교회 “박기종” 목사님이 “순금과 정금 차이”란 제목아래 쓴 글이 있어 좀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에 이런 글 내용이 있었습니다: “순금(24K)에도 불순물이 들어 있다. 순도 표시의 최고 가치는 100%에서 0.1%를 빼고 99.9%라고 표기한다. 광석이 들어오면 일단 용광로에서 녹인다. 금이 나오기까지 3개의 용광로를 통과한다. 1000도 이상씩 3000도 이상의 고난을 극복해야 순금이 된다.” 한국에서 최고의 금을 생산하는 회사는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LS-NIKKO 동제련이라고 하는데 그 회사의 귀금속 팀에서 금을 만들고 있는 최용실(34) 대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련 과정에서 먼지만한 불순물이라도 들어가면 순금을 만들 수 없다. … 순금을 만들려면 자신의 얼굴이 거울처럼 보일 때까지 연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 특히 금을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 사랑을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 박기종 목사님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용광로에서 노폐물이 제거되어 정금이 되듯이 고통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의 찌꺼기들을 제거하고 거룩한 사람을 만든다. 예수의 용광로는 정금을 만든다. 제련소의 용광로는 순금을 만들지만 예수의 용광로는 ‘정금’을 만든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은 욥의 신앙고백은 감동의 백미이다”(인터넷). 욥기 23장 10절 말씀입니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잠언 17장 3절 말씀입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중심)을 보시고 계십니다(삼상16: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십니다(시51: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십니다(잠17:3).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연단하시므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길 원하십니다(말3:3).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어떻게 연단하십니까? 성경 이사야 48장 10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되 고난의 불로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I have tested you in the furnace of affliction).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12-13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련을 당할 때 마치 이상한 일이나 일어난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 시련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이 “분별하라”(test)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단어의 의미는 ‘시험하라’(test)또는 ‘살피라’(examine)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 4가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12장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아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변화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상고할 때 성경의 원리, 교리, 약속, 교훈 등을 통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과 비교하고 자신의 결정에 앞에 이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은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꾸준히 읽고 상고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들과 비교할 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입니다. 다음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도움이 될 것입니다.
(a)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자신 스스로에게 이 일을 하려는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면서, 이 일이 하나님의 일에 적합한지를 스스로 질문을 해 봅니다.
(b) 하나님께서 이미 명령하신 바를 순종합니다.
새로운 일을 하기 전에 이미 명령하신 바를 순종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우리게 많은 부분이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자의적으로 순종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c) 기도합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다른 사람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d) 성경을 연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을 읽되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 원리를 찾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특정한 단어들이나 증거가 될 만한 문장을 찾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e) 충고를 받아들입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을 잘 아는 먼저 된 신앙이 성숙한 분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f) 우선순위를 정합니다.
모든 일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경험도 이럴 때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 기준은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사도 요한이 “분별하라”고 말씀했을 때에는 물론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의 로마서 12장 2절 말씀과 연관해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분별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한 4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적용해 보았습니다:
(a) 하나님의 뜻은 ‘빛을 발하라!’입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그가 쓴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8:12).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36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예수님의 말씀과 유사한 말씀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에베소서 5장 8절에 적혀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을 향한 빛이신 주님의 뜻은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빛을 행해야 합니다.
(b) 하나님의 뜻은 ‘진리를 행하라!’입니다.
요한일서 1장 6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사도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교제)이 있다고 말하면서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달리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자들로서 어둠에 행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 돼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진리”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요14:6). 우리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고 있다면 우리는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진리이십니다. 우리 주님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거짓이 없는 진리를 행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입니다.
(c) 하나님의 뜻은 ‘사랑하라!’입니다.
요한일서 3장 11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사도 요한은 주님의 계명은 예수님을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빛이시라(1:5),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요8:12)고 말씀을 하면서 우리에게 빛을 행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진리이시다(요14:6)라고 말씀하면서 우리에게 진리를 행하라는 주님의 뜻을 가르쳐 주셨는데, 요한일서 4장 8, 16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시다’라고 말씀하면서 이렇게 주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3:11, 23).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길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d) 하나님의 뜻은 ‘의를 행하라!’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 하반절과 6절을 보십시오: “…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산다고 하는 자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대로 우리를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를 행하신대로 우리 또한 의를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의를 행해야 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제 생각엔 의를 행한다는 말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의를 행하는 것이란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빛을 발하며, 성자 예수님의 뜻대로 진리를 행하며,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우십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를 행하신 것처럼 우리도 의를 행해야 합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어두운 세상에 오셔서 빛을 발하시고, 거짓이 난무한 이 세상에서 진리를 행하시며, 미움이 가득 찬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며, 진리를 행하며, 서로 사랑하므로 의를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2)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살피고 시험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취 보면서 과연 내가 지금 믿음으로 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살피고 시험해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야고보서 1장 6-8절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거리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에게서 무엇을 받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중인격자이며 언제나 자기가 하는 일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살필 때에 이렇게 자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는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구하기보다 의심하면서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일 의심하면서 기도하고 있다면 나는 지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저는 사도 바울의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을 사도 요한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4가지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고 시험해 봄에 있어서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가르쳐 준 하나님의 뜻 4가지를 우리 각자 자신에게 적용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과연 나는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빛을 발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빛의 자녀로서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빛 된 삶으로서 어두움이 없고 오히려 어두움을 들춰내고 있습니까?
(b) 과연 나는 성자 예수님의 뜻대로 진리를 행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진리이신 예수님처럼 거짓된 이 세상에서 진리를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진실 된 삶으로서 거짓을 미워하고 주님의 계명의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c) 과연 나는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 이웃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사랑의 삶이 되어서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을 맺어드려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까?
(d) 과연 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뜻대로 빛을 발하고, 진리를 행하며, 사랑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의를 행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의를 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삶 자체가 의로운 삶이 되어서 예수님의 의를 들어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3) 우리는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진실한지를 시험해봐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장 8절을 보십시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이것을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열심과 비교하여 여러분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아보려는 것뿐입니다”]. 그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 4-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란 말씀을 통해 상대방 형제, 자매의 사랑을 시험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잠언 17장 9절 말씀인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에 근거에서도 상대방의 사랑이 진실한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고린도후서 8장 8절 말씀을 사도 요한의 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진실한지를 시험할 수 있는지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a)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겸손한 사랑인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을 ‘성육신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요이7).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를 섬기셨습니다(빌2:6-8). 이 예수님의 성육신 사랑을 달리 말한다면 스스로 낮춰서 이웃을 섬기는 겸손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상대방 지체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는 시험해 봐야 합니다.
(b)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화목케 하는 사랑인가? 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을 보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웃 사랑은 서로 화목하게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c)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목숨까지 내어주는 희생적인 사랑인가? 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상대방 지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실한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세 번째 기준은 그 지체가 나를 사랑함에 있어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희생적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입니다.
(d) 상대방 지체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상대방 지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진실한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네 번째 기준은 과연 그 지체가 나를 말로만 사랑하는가 아니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고 있는가 입니다. 그 지체의 사랑이 진실한지를 시험해 보려면 그 지체가 나를 진실함과 행함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말로만 하는지를 보면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4)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살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을 보십시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현대인의 성경) “모든 것을 잘 살펴 선한 것은 붙잡고 악한 것은 흉내도 내지 마십시오”]. 이 사도 바울의 권면대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 좋은 것은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을 취하고 유혹하는 자의 유혹들을 뿌리쳤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취하고 불신을 버렸고, 사랑을 취하고 미움을 버렸으며 또한 소망을 취하고 절망을 버렸습니다. 우리도 믿음을 취하고 불신을 버리며, 사랑을 취하고 미움을 버리며, 또한 소망을 취하고 절망을 버려야 합니다.
저는 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 말씀을 사도 요한의 관점에서 한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빛을 취하고 어두움을 버리며, 진리를 취하고 거짓을 버리며, 사랑을 취하고 미움을 버리며 그리고 의를 취하고 불의/악을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목사님들의 설교를 무턱대고 믿어야 하나요? 아니면, 목사님들의 설교조차도 성경에 근거해서 맞는 말씀인지 아니면 틀린 말인지 분별해야 하나요? 성경 사도행전 17장 11절을 보면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을 사도 바울을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서를 연구했다는 말입니다(공동번역). 이 말씀을 현대에 적용한다면, 여러분이 목사님들을 통해서 듣는 설교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날마다 연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젠 옛날에 어떤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말한 것처럼 성경을 덮어 놓고 무조건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거짓 목사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거짓 복음, 거짓 설교가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거짓 목사들입니까? 거짓 목사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의 간교한 것을 말합니다(렘23:26). 그들은 거짓된 마음에서 거짓말을 내뱉습니다. 죄를 범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가 평안하리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17절)고 말하면서 헛된 위로의 설교를 합니다. 거짓 목사들은 바른 교훈을 전하기보다 듣는 자들의 간지러운 귀를 긁어 줍니다(딤후 4:3). 경책과 경계와 권면이 없습니다(2절). 그들은 거짓 복음을 전합니다. 그들은 죄를 범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이키기보다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힘 있게 하여 계속 죄를 범케 합니다(렘23:14). 거짓 목사들은 성도들을 그릇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3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거짓 목사들 자신들이 그릇된 길을 달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21절 – “달음질”). 자기들 스스로를 더럽히면서 악을 행하되 하나님의 집 안에서도 악행을 범하므로 말미암아 결국 그들에게서 더러움이 나와서 온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사랑하는 여러분,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에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일서 편지를 수신자들에게 쓸 때에는 이미 요한일서 2장 18절에서 “지금은 마지막 때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때에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들이 나타났다고 말씀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이 적그리스도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이요(22절) “미혹하는 자들”입니다(26절).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을 부인합니다(22절). 이렇게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 나타났기에 사도 요한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4:1). 다시 말하면, 사도 요한은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고 그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한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우리는 2 가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1) 우리는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아야 합니다(요일4:1).
사도 요한은 자신의 요한일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영을 다 믿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말한다면,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사도 요한은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믿지 말”라고 권면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는 그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 중에 다 예수님을 믿고 모두 다 성령님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 중 어떤 이는 다른 영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그는 요한일서 3장 24절에서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라고 이미 말했는데 오늘 본문 4장 1절에 와서는 “영을 다 믿지 말”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다 믿지 말라’라는 말씀은 헬라어 원어를 보면 사도요한의 편지를 받고 있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다른 영을 믿고 있는 지속적인 행동을 ‘멈추라”(“Stop believing every spirit”)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Believe not’ is in a construction in the Greek text which forbids the continuation of an action already going on”(Wuest’s Word Studies in the Greek N.T. 주석)]. 그 말은, 사도 요한의 요한일서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하나님께 받은 성령님 외에 다른 영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의 편지를 받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 무슨 다른 영들이 있었을까요? 디모데전서 4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 그 당시에 “미혹하는 영”들(deceitful spirits)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귀신의 가르침”(doctrines of demons)도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죤 맥아더 목사님은 사도 요한이 성령님 외에 다른 영들을 “demonic spirits”(악한 영들, 악령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MacArthur).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3절을 보면 좀 그 질문의 답변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 자기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 가운데서는 “적그리스도의 영”(the spirit of the antichrist)을 믿는 자들이 있었기에 그는 “영을 다 믿지 말”라, 즉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 다른 영들을 더 이상 믿지 말라, 즉 믿는 것을 멈추라고(stop believing) 권면한 것입니다(1절).
(2) 우리는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시험해 봐야 합니다(요일4:1).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1절에서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 다른 영들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시험해 볼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시험하며 어떻게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요한일서 4장 2-3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런 눈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원수인 마귀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원수가 오리라는 말을 들었겠지만 그가 벌써 세상에 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어떻게 영이 하나님께 왔는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기준이란 하나님은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는 영입니다.
이 기준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 4가지로 사도 요한의 편지를 통해 요약해 볼 수가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은 (1)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습니다(3절), (2)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합니다(2:22), (3)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합니다(22절). 하나님 아버지가 없습니다(23절),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합니다(요이1:7). 이 4가지 기준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 외에 다른 영들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다(요일1:2). 즉, 하나님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을 시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죄 없는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시인/인정하며 고백케 합니다(MacArthur)[(요일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좀 더 신학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humanity)과 신성(divinity)을 시인합니다.
셋째로,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거짓 선지자들을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4장 4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현대인의 성경)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안에 계시는 분이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더 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면 거룩한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거룩한 삶이란 바로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요(롬1:6) 또한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7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예수님께 속해 있다는 분명한 소속감을 가지고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아드리는 자요, 더 나아가서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로서의 책임은 죄악 된 세상과 절교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마치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빛의 자녀인 성도는 어두운 세상과 짝지어서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성도의 소속감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명심해야 합니다(요17:16). 우리는 빛 되시는 주님께 속한 자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4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현대인의 성경)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하였고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안에 계시는 분이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더 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시인/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이긴 비결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거짓 선지자들 안에 있는 “세상에 있는 자”인 “마귀”보다 크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마귀보다 크시기에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거짓 선지자들’과 “마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거짓 선지자들:
(벧후 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이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 “멸망하게 할 이단”, “파괴적인 이단”을 몰래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24:11, 24)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 마귀: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계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20:2, 10)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 말씀들을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마귀와 거짓 선지자들은 미혹하는 자들로서(마24:11; 계20:10) 할 수만 있으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미혹하는 자들입니다(마24:11, 24).
그러면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도 요한이 성령에 대해 한 말씀을 보십시오:
(요일5:6) “… 성령은 진리니라”
(요일3:24; 4:13)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 말씀들을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4절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하나님께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성령님으로서(요16:13; 요일5:6)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고(요15:26),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를 가르쳐 주시며(요14:26),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사(요16: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줄 압니다(요일3:24; 4:13). 그 결과 하나님께 속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시인/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이깁니다. 그 이긴 비결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이기셨다는 사실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고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거짓 선지자들/거짓 선생들/거짓 목사들을 이기게 하십니다.
이 사실에 대해 사도 요한은 이미 요한일서 2장 14절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현대인의 성경) “…청년들이여,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여러분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마귀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형제를 미워하라는 마귀의 유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우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강하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강력한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강한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그 말씀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그만큼 견고하며 굳게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5장 4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성경은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6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들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무딘 칼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들 수밖에 없습니다(전10:10). 이와 같이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엡6:17)이 무딘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에 힘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인드(mind)가 날카롭게 돼 있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은 성령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 아니 사람(육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영적 민감함이 둔해져서(spiritual insensitivity)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므로(lack of spiritual discernment) 혼동(confusion) 속에 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갈 바를 알지 못해 이리 저리 헤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인드 날카롭게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민감함과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예민할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어는 문은 닫으시고 어는 문은 열어주시는지 분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의 영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선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보다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신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육체의 일을 추구하면서 시기와 분쟁의 죄악 된 열매를 맺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말씀을 초보자인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을 택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특히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교회의 하나 됨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5-6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거짓 예언자들은 세상에 속하여 세상 일을 말하며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들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2절)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 성도들,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적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는 자들, 마귀의 자녀들, 거짓 선지자들)를 구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 한 2가지로 5절에서 말씀을 했습니다:
(1)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을 한다는 것입니다(5절).
여기서 세상에 속한 자들은 거짓 선지자들로서(1절) 적그리스도의 거짓된 영이 그들을 통해 일하고 있는 자들입니다(WBC). 이들은 “세상에 속한 말”을 하는데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세상”은 요한일서 2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세상에 속한 말이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관한 말들로서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들입니다(16절).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적이고 정욕적이며 삶에 대한 자랑하는 말들은 세상적인 말들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을 하지 않고(17절) 적그리스도가 원한는데로 말합니다(18절). 즉, 세상에 속한 자들인 거짓 선지자들이 말하는 세상에 속한 말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말들,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을 부인하는 말들입니다(22-23절). 한 마디로 간략하게 말한다면, 세상에 속한 거짓 선지자들(거짓 목사들/거짓 선생들)이 말하는 세상에 속한 말들은 결코 진리가 아닌 거짓말입니다(22절).
(2) 세상에 속한 자들이 세상에 속한 말을 할 때에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4:5).
당연한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거짓 선지자들(거짓 목사들/선생들)이 세상에 속한 거짓말을 할 때에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거짓말에 관심을 갖고 주목을 하면서 듣지 결코 사도 요한처럼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참된 종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 사람들은 거짓 목사/거짓 교사들이 전하는 거짓 교리들인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가르침, 하나님 아버지를 부인하고 성자 예수님을 부인하는 가르침,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거짓된 가르침들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우리에게 대해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4장 6절에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2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자”들입니다(6절).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3:2)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교제를 갖고 있기에(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란 말입니다(4:6). 다시 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시사(2절) 화목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2:2)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3: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란 말입니다(4:6).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알 뿐만 아니라(know God)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습니다(be known by God)(갈4:9).
(2) 하나님께 속한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의 말을 듣습니다(요일4:6).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8장 47절에서도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선한 목자에 대해 말씀 하면서 양들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아는 고로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0:4). 그리고 양들은 “타인의 음성을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목사들/선생들)을 통해 진리만을 듣습니다(거짓은 듣지 않음).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된 주님의 종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을 듣지 다른 복음, 거짓된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세상에 속한 자들은 참된 주님의 종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짓말을 듣습니다(요일4:6). “우리는 이것으로 진리의 영과 거짓의 영을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16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 우리는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을 받은 자들과 같이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었지만 속으로는 욕심과 탐욕에 가득 찬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거짓 목사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7:15). 과연 우리는 어떻게 거짓 목사를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합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예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10장 16절 하반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먼저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로워서 사람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합니다(17절). 왜 우리가 사람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셨듯이 지금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4:11). 지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13:22)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로워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 및 거짓 목사, 거짓 선생들을 주의하고 경계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여기서 “순결”이란 단어의 헬라어 문자적 의미는 ‘섞이지 않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오염되지 않은) 깨끗한’(unmixed, pure)이란 뜻입니다(Walvoord). 즉,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시12:6)을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벧전1:22).
오늘 성경 요한일서 4장 1-6절에서 4가지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성경은 우리에게도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성경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성경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거짓 선지자들을 이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 성경은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되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잘 분별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이미 주님께서 마귀를 이기셨고 거짓 선지자들을 이기셨다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거짓 목사들, 거짓 선생들, 거짓 복음과 싸워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