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이 없는 형제 사랑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요한일서 2장 10절).

 

 

주일 예배 당에 올라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알면서도(마5:23) 그 형제와 먼저 화목하지도 않고 예배를 드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일 아침 예배당에 올라오면서도 부부가 서로 다툴 때도 있고, 자식들과도 언짢은 일도 있으며 교회에 와서는 성도들 서로 간에 좀 껄끄러운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가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드리기 전에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5:24). 과연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왠지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도 서로의 관계가 껄끄러운 사람들이 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로 껄끄러운 관계이면서도 표면적으로는 예배당에 올라와 서로 악수나 인사를 하면서 한 자리에 앉아 거룩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간의 사랑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신뢰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는 교회의 통일성(unity)을 지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제 사랑을 가리켜 저는 오늘 본문 요한일서 2장 10절에 근거하여 ‘거리낌이 없는 형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형제 사랑에 관한 거리낌이 있다면 그 거리낌은 왜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형제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요일2:11). 입술로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형제를 미워하는 죄를 범하는 것에 대해 요한일서에서 한 3가지로 생각하면서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습니다.

 

요한일서2장11절을 보십시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빛이십니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1:5).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한다면 어두운 가운데 행하는 것이므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6절). 이렇게 거짓말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행하므로 갈 곳을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2:11). 어두움이 형제를 미워하는 자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11절).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으므로 말미암아 진리 가운데 행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형제를 사랑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미움으로 차 있는 어두운 마음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상대방 형제의 사랑조차도 받기를 거부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2:9).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 온전케 되지 못한 자입니다(2:5). 빛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15절을 보십시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3:13). 어느 면으로 보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임에도 불구하고 형제가 서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형제가 서로 미워하는 것을 성경은 ‘살인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보통 살인하면 우리는 칼로, 총으로 등등 사람을 죽이는 것을 생각하는데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 중 7계명인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란 말씀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두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31)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때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요 결국 형제를 살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큰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을 가벼운 죄로 여기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인죄를 범한 것을 회개하기를 더디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4:16). 또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람이 없”다고 사도 요한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15:13).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롬5:6), 죄인 되었을 때(8절) 그리고 원수 되었을 때(10절)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8절). 그러므로 우리 또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야 합니다. 결코 형제를 미워하므로 살인하는 죄를 범해선 아니 될 것입니다.

 

셋째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20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이 진리는 지극히 상식 적이라 생각합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면서 어떻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벗어나는 행동을 수 없이 범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 분에 찬양과 경배를 드리면서 수 없이 사랑 고백을 하면서도 보이는 형제를 너무나 쉽게 미워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쉽게 형제를 판단하고 비판하며 또한 형제 용서하기를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우리 안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그리도 사랑하는 것 같으면서도 보이는 형제를 그리도 사랑하지 못하는 양 면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 사랑(수직적 사랑), 이웃 사랑(수평적 사랑)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뛰어 놀래야 뛰어 놀 수 없는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마땅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확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마24:12). 인간의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수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점점 더 증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시117:2). 그 증대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때 우리 마음과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 것입니다. 결코 형제를 미워하므로 마음에 거리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지 않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