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빛이시라

 

 

 

[요한일서 15-10절 말씀 묵상]

 

 

제 기억으로는 우리 교회 약 39년 역사에 적어도 한번은 전기가 나가서 새벽기도회 때 촛불을 키고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교회 안에 있었던 촛불은 주로 우리가 한국에서 사용했던 긴 촛대가 아니라 넓적하고 작은 것으로서 주로 연회 때 식탁에 decoration으로 놓은 촛대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개 촛불을 켰지만 이 어두운 본당을 환하게 밝혀주지 못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성경 마태복음 5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이와 같이”란 “우리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놓아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칩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서 어떻게 우리 집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특히 이 어두운 세상에서 어떻게 빛을 비춰야 하는지 잠언 13장 말씀 중심으로 한 3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쳐야 할까요? 우리는 거짓말을 미워하고(잠13:5) 진리를 기뻐하므로 이 세상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으로 진실을 말하므로 이 세상에 빛을 발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거짓 입술을 미워하십니다(12:2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실히 행하는 자, 다시 말하면 진실 된 자를 사랑하십니다(22절).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말하므로 이 거짓된 세상에서 의인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진실한 입술은 마치 양약 같아서(18절) 선한 말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야 합니다(25절).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의 정직한 입술로 사람을 구원하기까지 해야 합니다(6절).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므로 그들에게 영적 유익을 끼치되 그들의 영혼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또한 그들의 영혼의 인도자가 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지키므로 우리의 영혼을 보존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 13장 3절을 보십시오: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 10장 19절을 보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입술을 제어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으로 빛을 환하게 비취기 위해선 우리는 부지런해야 합니다(13:4). 중요한 것은 우리는 부자가 되느냐 가난한 자가 되느냐가 아니라 부지런한가 아니면 게으른가 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는 부지런함으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정직히 행하므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6절).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정직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하며 존경해야 합니다(13절).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행사가 다 진실해야 합니다(시33:4). 우리는 지혜롭게 행하므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행해야 합니다(잠13:16).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샘이 되는 교훈을 가르치므로 그들로 하여금 사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14절).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이루므로 이 세상을 환하게 빛을 비춰야 합니다.

 

성경 잠언 13장 12절을 보십시오: “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소원이 이루는 것은 곧 생명나무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래의 소원의 성취가 더딜 때 우리는 상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이루심을 목격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성취해 주시므로 이 소망이 없는 세상에 우리로 하여금 빛을 발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들은 말씀으로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에 대하여 두 부분으로 된 진리(twofold truth)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두 부분으로 된 진리란 (1)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과 (2)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을 생각할 때 저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9장 5절에서 하신 말씀인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요한복음 9장 5절에 기록했는데 이렇게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절에 와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기록을 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빛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성자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예수님은 이 세상의 빛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시요 하나님이시요 창조주이시라고 말한 후(요1:1-3)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습니다(4절). 여러분,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 1장 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는데 요한일서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요일1:1)이요 또한 “영원한 생명”(2절)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시요 또한 “사람들의 빛”이라고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도 말하였는데 그는 세례 요한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신(요1:9)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말했습니다(8절). 그러면서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이 빛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이렇게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뿐만 아니라 요한일서에서도 “빛”에 대해서 말을 했는데 그의 말을 다시 좀 정리하다면 이렇게 요약을 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요 “세상의 빛”이시요 “사람들의 빛”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이 참 빛, 세상의 빛, 사람들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대하여 증언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절 상반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말한 후 5절 하반절에 와서는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우리에게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은 빛과 어두움을 대조하면서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결코 어두움이 조금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빛은 무엇이고 어둠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4절에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했고 요한일서 1장 1, 2절에서는 “생명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는 말씀에서의 빛과 어둠은 빛은 생명(Life) 또는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가리키고 어둠은 반대로 죽음(death) 또는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빛과 어둠이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6절인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란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때 빛은 “진리”(truth)고 어둠은 거짓(lie)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 자란 요한일서 2장 22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2장 9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말씀에서 빛은 “사랑”(love)을 의미할 수 있고 그 반대로 어둠은 ‘미움’(hate)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일서 2장 9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여기서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어둠에 행한 자에 대한 예를 든다면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3장 12절에서 말한 가인을 들 수가 있습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빛과 어둠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빛은 “의로움”(righteous)이고 어둠은 “악”(evil) 또한 요한일서 1장 9절로 말한다면 “불의”(unrighteous)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빛의 자녀들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두 부분으로 된 진리(twofold truth)를 말했는데 그는 요한복음 12장 36절에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가리켜 “빛의 자녀”라고도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 빛이시요 세상의 빛이시요 사람들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빛의 자녀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빛의 자녀들은 어떻게 생활합니까? 저는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6-10절 말씀 중심으로 한 3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6-7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사귐”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사귐”이란 영어로 “fellowship”, 즉 “교제”를 말합니다(“친교”가 아님).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제”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대답을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 여기서 “교제”란 단어를 의미하는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 라는 단어 속에는 2 가지의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1) 함께 나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공유) 그리고 (2)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분유). 흥미로운 점은 사도행전 2장 4절에서 한국 성경에는 “서로 교제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원어 헬라어를 보며 “교제”란 단어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교제”란 말입니다. 여기서 “그 교제”란 바로 “성령의 교제”를 가리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6절 말씀으로 말한다면 그 교제란 ‘성령 하나님과의 사귐’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한 역사 가운데 약 3000명 새로운 성도들이 함께 공유했던 것은 그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님의 교제(성령님과의 사귐)에 헌신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성령님의 교제 또는 성령 하나님과의 사귐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6-7절에서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무엇입니까? 2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 2 가지를 사도 요한은 “만일”(if)로 시작했습니다:

 

(1) 첫 번째 만일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입니다(6절상).

 

실제로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빛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사귐(교제) 을 하고 있다면 당연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하는데(7절) 어둠에 행할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미워하고, 불의를 행하며 죄를 범할 때가 많습니다. 만일 그리 행하고 있다면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지금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6절하).

 

(2) 두 번째 만일만일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입니다(7절상).

 

여기서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근거해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는 것(practice the truth)이라 생각합니다(6절하). 사도 요한은 만일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안에 계신 예수님처럼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하).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서로 사귐(교제)가 있기 위해선 먼저 우리는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말했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먼저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수직적인 사귐). 이 수직적인 사귐이 먼저 있어야 우리에게 서로 사귐이 있을 수 있습니다(수평적인 사귐). 사귐의 우선순위는 먼저 성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 사귐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서로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이중 사귐에 중요한 것은 "그 교제"입니다(사도행전 2장 42절 한국 성경에는 "교제"라고 쓰여 있지만 원어 헬라어를 보면 정관사가 "교제"란 단어 앞에 있음). 여기서 "그 교제"란 성령님의 교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중 사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성령님께서 성부, 성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리를 함께 나누게 (공유케)하시고 또한 주님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를 서로에게 주는 것(분유하는 것)입니다[사도행전 2장 4절에 나오는 "교제"(원어 헬라어: 디아코니아)의 의미는 공유와 분유임]. 그러므로 이 이중 사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하는 것입니다(요일 1:6).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만일우리가 예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하). 여기서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흘리신 피로 모든 죄에서 사함을 받지 않았나요? 성경 요한일서 2장 12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이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7절에서 예수님의 피가 빛 가운데 행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아직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요?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고 어둠에 행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2장9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이 말씀대로 우리는 아직도 형제를 미워하는 죄를 범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게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1:7).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님과의 사귐 속에서 성령님께서 서로 사귐이 있게 하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부, 성자 하나님의 사귐에 합당하지 않은 모든 어둠에 행하는 일들을 우리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빛의 자녀들은 스스로 속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8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여러분, 우리는 진실 된 사람이 돼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을 멀리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는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서로에게 진실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숨기기 바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마음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겉으로는 거룩한 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시119:113). 우리는 두 마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12:2). 이렇게 우리 같은 이중인격자들은 언제나 우리가 하는 일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립니다(약1:8, 현대인의 성경). 또한 지금 우리가 접한 심각한 문제는 우리는 거짓말을 가볍게 하고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므로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지 말고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8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8절) 여러분, 이 세상에서 어느 누가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10절, 현대인의 성경) 오직 어둠이 조금도 없으신 빛이신 하나님만(5절)이 죄를 한 번도 짓지 않으시고 아예 죄가 없으십니다. 성경 요한일서 3장 5절을 보십시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도 알고 있는 대로 예수님은 죄를 없애려고 세상에 오셨으며 그분에게는 죄가 전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직 예수님만 죄가 전혀 없으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 로마서 3장 23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 로마서 5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 시편 51편 5절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현대인의 성경) “나는 때어날 때부터 죄인이었으며 우리 어머니가 나를 밴 순간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어머니가 우리를 밴 순간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분명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나는 죄가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8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라”(5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빛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어둠에 행하면”(6절), 다시 말하면,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그대로 한다면”(6절, 현대인의 성경) 그 어둠(죄)이 어떻게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 들춰지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빛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지 않고 어둠에 행할 때 우리의 죄를 들춰내십니다. 그 때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또한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현대인의 성경)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요한일서 1장 10절은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사도 요한은 8절 하반절에서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했는데 10절 하반절에서는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8장 44절은 진리가 마귀 속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8절과 10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진리(하나님의 말씀)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진리가 마귀 속에 없는데 죄가 없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자들에게도 진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빛이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들은 스스로 속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진리(하나님의 말씀)가 우리 속에 있습니다(8절). 빛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실천에 옮깁니다(약 1:22). 그리고 빛의 자녀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합니다(요일1:6).

 

여러분, 빛이신 주님을 믿는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로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빛이신 주님과 사귐(교제) 가운데 들춰지는 우리의 어둠의 일들, 우리의 죄들을 깨달으면서 ‘나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9절).

 

마지막 셋째로, 빛이 자녀들은 죄를 자백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처음으로 외웠던 것은 대학교 때 어느 목사님이 제가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에 오셔서 제자 훈련 성경공부를 인도하셨을 때 입니다. 그 때 그 목사님께서는 저와 또한 제 선배님들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시면서 제일 먼저 가르치셨던 것이 제 기억으로는 5가지 확신이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 확신이란 바로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 죄 사함의 확신입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확신 구절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대학교 때 처음으로 그 다섯 가지 확신 구절을 접하고 배운 후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삶 속에서 더욱더 느끼고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 기도응답의 확신(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승리의 확신(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4) 인도의 확신(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 사죄의 확신(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제가 이 5가지 확신 말씀 중에 근래에 와서 묵상하며 제일 고민했던 말씀은 바로 “인도의 확신”인 잠언 3장 5-6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묵상과 고민 중에 깨닫게 된 것은 제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제일 큰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제 명철을 의지하는 습관(본능)대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제 자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7절). 예를 들어, 제가 제 생각과 계획과 방법대로 이런 저런 일들을 추구하다가 계획대로 잘 되면 저는 분명히 제 자신(의 명철)을 더욱더 의지하게 될 것이고(그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임) 또한 저는 제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되면 저는 결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과의 씨름 속에서 들었던 마음의 결심을 이렇게 적었습니다(2015. 7. 9.): “나는 오늘도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내 방법대로, 내 시간에 되어지지 않는 일들을 감사히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주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며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계획과 방법대로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길 기원하는 바이다.” 이렇게 저는 근래에 “인도의 확신” 에 대한 고민과 씨름과 배움이 있었지만 이 5가지 확신 말씀을 대학교 때 배웠을 때 제일 큰 고민이 되었던 확신은 바로 “구원의 확신”이었습니다(요일5:11-12). 분명히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일5:12) 저는 오랫동안 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제일 큰 이유가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같은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저는 당연히 “승리의 확신” 성경 구절인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수 없이 마음속으로 외웠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습관적인 죄와 싸움에 있어서 승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제 자신의 죄와의 싸움에서 지고 또 지고 하니까 승리의 확신 성경 구절도 저에게는 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동시에 저는 “기도 응답의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고 수 없이 하나님께 그 습관적인 죄악 된 삶에서 건져주시길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저에게는 “사죄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죄 사함의 확신이 없었기에 항상 죄를 짓고 나면 죄책감과 자괴감에 허덕이곤 했습니다. 그 “사죄의 확신”이 바로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도 요한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그가 말한 “우리 죄”는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우리 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모든 죄를 생각하겠지만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란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무슨 죄를 염두 해 두고 “우리 죄”라고 편지를 쓴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궁금해서 다시금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10절을 읽고 읽으면서 사도 요한이 6절과 8절과 10절에서도 “만일”로 시작하는 것을 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0절)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저는 이 세 구절 말씀을 오늘 본문 9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사도 요한이 말한 “우리 죄”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것입니다(6절).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죄요 또한 진리를 행하지 않은 죄입니다(6절). 또한 사도 요한이 말한 “우리 죄”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나(10절) 또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8절) 또한 “우리 죄”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부인(deny)하는 것도 “우리 죄”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범한 죄를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자꾸만 부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요한일서 2장 11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이유는 어두움이 우리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우리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미움이라는 어두운 죄로 말미암아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눈이 멀면 볼 수 있는 능력이 상실한 것처럼 우리가 어두움에 행하고 있으면 죄를 죄라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범하고도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요, 죄가 없기에 자백할 필요성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우리 죄”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6절) 여기서 어둠에 행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4절을 보십시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둠에 행한다는 것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9, 11절을 보십시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이렇게 어둠에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죄를 자백하지 않지만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7절)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 그 이유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어둠에 행하는 자들과 달리 빛에 들춰진 자신의 죄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죄를 그들은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며 자백하는 이유는 그들은 죄사함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가 자기들을 모든 죄(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7, 9절). 또한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이유는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9절).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2:1, 2). 성경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십시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사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셨습니다(골1:22).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즉,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당연히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또한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죄가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이지 않습니다. 만일 빛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면 그것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죄요 또한 진리를 행하지 않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그 죄를 하나님께 자백합니다. 그 이유는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자신들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