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10)

 

 

 

[로마서 835-39]

 

 

성경 로마서 8장 36-37절을 보십시오: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기록된바”란 사도 바울이 구약 성경 시편 44편 22절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주를 위해 하루 종일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도살장의 양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가“(롬8:36)에서 ”우리“란 문맥상 3가지를 가리킵니다: (1)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33절), (2)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이들(33절), 그리고 (3)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간구하시는 자들(34절). 사도 바울은 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다고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여기서 “종일”이란 하루 종일을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일평생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 옥중서신이 로마서를 쓰면서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으면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가르침이란 마가복음 8장 35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즉,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기까지 하면서 살고 있는 가운데서(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었음) 로마서 편지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쓰면서 시편 44편 22절을 인용하여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롬8:36)란 말씀은 “나와 복음을 위하여”(막8:35),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란 말입니다. 성경 로마서 14장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성경 누가복음 9장 23절을 보십시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되 자기를 부인하고(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시편 44편 22절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종이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롬8:36)라고 말했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죽임의 위험을 당하고”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 성도들이 당하였던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35절)같은 죽음의 위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위험은 그들로 하여금 마치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할 정도였습니다. 성경에 욥이란 인물이 마치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할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면서 이러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롬8:36)라고 말했는데 양을 키우는 목적은 도살장에 끌고 가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메시아)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들어 보십시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현대인의 성경) “그가 곤욕을 당하면서도 침묵을 지켰으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그의 입을 열지 않았다”](사53:7).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로마서 편지를 쓰면서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고 말한 것을 보면(롬8:36) 사도 바울은 이사야 53장 7절에서 예언하고 있고 그 예언대로 실제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기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종일 고난을 당하면서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었고, 그랬기에 그는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롬8:36)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4장 9, 11-13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이 우리 사도들을 사형장의 죄수들처럼 제일 천한 자리에 세우셔서 …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집 없이 떠돌아다니고 생활비를 위해 수고하며 손수 일해 왔습니다. 그리고 욕을 얻어먹어도 축복하고 핍박을 당해도 참고 비방을 받아도 좋은 말로 달래니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의 쓰레기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며 여러 번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으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습니다. 또 세 번이나 몽둥이로 맞았고 한번은 돌에 맞았으며 세 번이나 파선하였고 밤낮 하루를 꼬박 바다에서 헤맨 일도 있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들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신자들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또 수고하고 애쓰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여러 번이었고 주리고 목마르며 수없이 굶고 추위에 떨며 헐벗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 자신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있었지만(롬8:36, 현대인의 성경)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그는 그들에게 비록 “우리”(바울과 로마 교회 성도들)가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같은(35절) “죽음의 위험”을 당한다 할지라도(36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37절).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되 간신히 이기는 게 아니라 “넉넉히” 또는 “거뜬히”(현대인의 성경) 이깁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사랑하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16장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감히 고발하겠습니까?(롬8:33)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34절)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35절) “환난”입니까?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입니까?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거뜬히 이깁니다(37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55-57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죽음이 쏘는 것은 죄이며 죄의 힘은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 모두 구원의 확신과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