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9)

 

 

 

[로마서 835-39]

 

 

성경 로마서 8장 35절을 보십시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여기서 “우리”란 어떠한 사람이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일까요? 한 3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우리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가리킵니다(8:33).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성경 에베소서 1장 4-5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리를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2) 우리란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이들을 가리킵니다(8: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의롭다 선언하신 것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으로 여기시고 대우해 주십니다. 성경 에베소서 1장 5절을 보십시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의롭다하신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우리를 누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3) 우리란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간구하시는 자들을 가리킵니다(8:34).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롬8:35). 성경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1장 1, 1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시고(18절) 성육신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이시기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요한계시록22장 20-21절을 보십시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진실로 속이 오리라”는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실로 속이 오시는 것입니까? 성경 요한복음 14장 31절을 보십시오: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목적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주님에게로 영접하여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신부된 우리 교회를 데리러 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계신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셔서(계시록 21:1-2) 우리로 하여금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케 하실 것입니다(19:9).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 찬양, 경배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가득 찬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묵상할 수가 없고 로마서 8장 34절만 묵상하고자 합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것과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부활)과 우리의 영생을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충분히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엡3:19).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새 찬송가 304장 3절과 후렴 가사는 이렇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 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35절에서 “누가”라고 말씀을 시작하였는데 여기서 “누가”란 7가지를 가리킵니다: (1) “환난”(롬8:35): 로마 시대 때 곡식을 타작할 때 사용하던 ‘트리볼롬’(타작기)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도리깨’라고 콩이나 보리 등 고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구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타작기로 곡식이 아닌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내리친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바로 “환난”이란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러한 환난을 많이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4장 2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이 말씀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제 1차 선교 여행을 갔다고 돌아오면서 안디옥 교호에 들려 제자들을 권면한 말씀입니다. 이 권면의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하). (2) “곤고”(롬8:35): 여기서 “곤고”란 정신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3) “박해”(롬8:35): 여기서 “박해”란 다시 말하면 “핍박”을 말합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3장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4) “기근”(롬8:35): 여기서 “기근”이란 굶주림 또는 배고픔을 말합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를 받게 되면 굶주리고 배고픔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4) “적신”(롬8:35): 여기서 “적신”이란 헐벗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적신으로 못 박히셨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도 적신으로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5) “위험”(롬8:35): 사도 바울은 위험을 많이 당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11장 26절을 보십시오: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사도 바울이 선교를 하면서 여러 종류의 위험을 당했던 것처럼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위하여 선교지에서 수고하시는 많은 선교사님들도 여러 종류의 위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6) “칼”(롬8:35): 여기서 “칼”이란 긴 칼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긴 칼이란 사람의 목을 베는데 쓰이는 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칼”이란 죽음을 상징합니다. 성경을 보면 제일 먼저 칼로 죽임(순교)을 당한 사도는 사도 요한의 형제인 사도 야고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헤롯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행12:1-2).

 

결국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에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사 의롭다하시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33-34절). 그러므로 이 7가지[“누가”(35절)]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쓴 것입니다. 10년이 못되어 로마 교회 성도들은 로마 네로 황제에게 이 7가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했음). 이 시대를 보면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이 온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이전에 대환난이 이를 것입니다. 언제런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누구도 끊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담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요16:33하).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승리자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