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에 거하는 죄”
[로마서 7장 17-20절]
성경 로마서 7장 17, 20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 …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 바울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내”란 사도 바울 자신을 말합니다. 바울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그는 교회를 열심히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6절과 디모데전서 1장 13절을 보십시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빌3:6),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딤전1:13). 그는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으려고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행9장). 예수님과 사울(바울)과의 대화를 보십시오:
예수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4절).
사울(바울): “주여 누구시니이까”(5절).
예수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5절).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에 사울(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바울)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롬11:13; 갈2:8). 바울이 안디옥에서 섬겼을 때 선교사가 됩니다. 지금의 유럽으로 가서 고린도에서 3개월 유하면서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했는데 여기서 “속”은 바울 자신의 육신을 말합니다. 성경 로마서 7장 18절을 보십시오: “내 속 곧 내 육신에 ….” 그러면 “육신”이란 무엇입니까? 성경 로마서 7장 14절을 보십시오: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 육신”(18절)이란 바울이 육신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육신에 속했다는 말은 유혹과 타락에 놓여있는 육신을 말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도 범죄하고 타락했습니다. 비록 아담은 생령으로 창조되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범하므로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6장 19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성경은 우리의 몸은 성령님의 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장 2절과 3장 3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1:2),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3:3).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중생했지만, 그래서 성도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육신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의 육신도 유혹과 타락에 놓여 있는 육신입니다.
성경 로마서 7장 17, 20절에 “거하는”에서 ‘거한다’는 말은 틈을 타서 침입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한 손님으로 초청 받아서 온 것도 아닙니다. 임시 하숙/전세도 아닙니다. ‘거한다’는 말은 거주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가 이 땅에 거주(영주)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성령님이 거주하시는데(고전6:19) 또한 죄도 거주하고 있습니다(롬7:17, 20).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죄가 우리 속에 거주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이 죄가 우리 속에 거주하는 것을 멸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성경 로마서 7장 17,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 속에 거하는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여기서 우리는 죄의 기원을 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 창세기 2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계명/율법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를 여자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먹으므로 불순종하여 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3장).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성경 로마서 5장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이 죄의 기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동시에 복음의 기원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경 창세기 3장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예언의 말씀이 약 4,000년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성취하셨습니다(요19:30).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음).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셨습니다. 뱀(사탄)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했습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 골로새서 2장 15절을 보십시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탄의 권세를 짓밟아 십자가로 승리하셔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여기서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악한 천사인 사탄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죄의 세력은 성도들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십자가에서 예수님께 패했는데도 아직 남아 있습니다. 패잔병인 사탄의 졸개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갈라디아서 5장 17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탄과 사탄의 졸개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롬7:15, 현대인의 성경). 그는 자기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을 행했습니다(19절). 그는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자기의 옛 성품 속에는 선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율법이 죄를 짓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자기 속에 있는 사탄의 졸개들 때문에 죄를 범한다는 것을 깨닫고 율법은 선하다고 시인/고백했습니다(14절). 그리고 그는 자기 속에 거하는 죄가 자기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17, 20절).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승리하셨으므로(창3:15; 요19:30; 골:2:15) 우리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전투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리하며 마귀가 도망칠 것입니다(약4:7, 현대인의 성경).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52-54절을 보십시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예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하심을 믿음으로 이 영적 싸움에서 잘 싸워 승리하여 주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