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율법

 

 

 

 

[로마서 714-20]

 

 

성경 로마서 7장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 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이 성경 구절 말씀을 3개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1)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우리는 율법이 영적인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2) “나는 육신에 속하여”(“나는 육신에 속한 사람이 되어”), (3) “죄 아래에 팔렸도다”(“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 오늘 이 세 번째 부분의 말씀인 “죄 아래에 팔렸도다”를 묵상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 죄 아래에 팔렸도다”(“죄의 종으로 팔렸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팔렸도다”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 열왕기상 21장 20절을 보십시오: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악한 왕 아합은 자기 자신을 죄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죄에 팔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를 죄에 팔리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 51편 5절을 보십시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현대인의 성경)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으며 우리 어머니가 나를 밴 순간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회개의 시입니다. 언제 다윗이 이 회개의 시를 썼는가 하면 그가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덮으려고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였으면서도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사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사 회개케 하셨을 때에 다윗은 이 회개의 시인 성경 시편 51편을 썼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죄악 중에서 출생했다(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 로마서 7장 14절에서 “죄 아래 팔렸도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자기가 “죄의 종(또는 죄의 노예)으로 팔렸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죄의 종” 또는 죄의 노예는 사도 바울 당시 말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노예 중에도 부모가 노예이기에 자녀들도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사람들은 아무 권한이나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저 그들은 주인의 노예였을 뿐입니다. 주인이 돈 주고 사온 노예이기에 자기의 재산이요 가구 같은 존재로서 자기 마음대로 쓰다가 그 노예를 팔수도 있었고 또한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 자신은 죄의 노예로 팔렸다고 말했을 때 그는 죄나 율법이 무엇인지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바울로서 주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주님의 종이요 선교사였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썼을 때가 바로 그가 제2차 선교를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기가 죄의 노예로 팔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럼 누가 바울을 죄의 노예로 팔았습니까?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사도 바울만 아니라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면서 기도하면서도 우리도 바울처럼 죄 아래 팔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 아래 팔리는 것도 못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어서 죄가 이끄는 대로 죄를 범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중생하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죄의 노예로 팔려서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성경 디모데전서 1장 15절을 보십시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괴수니라”[(현대인의 성경) “여기에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도 좋은 믿을 만한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죄인 중에서도 두목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죄수니라”는 고백을 로마 감옥에 있었을 때 고백했습니다. 즉, 그는 언제 죽을지(순교할지)도 모를 때에 로마 감옥에서 자기는 죄인 중에 두목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만큼 자기에게 죄가 많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죄가 없습니까? 우리는 죄와 멀리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죄를 심상히 여기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우리 자신이 죄의 노예로 팔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죄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죄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죄의 노예로 팔려가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기가 죄의 노예로 팔리고 있었기에 마음에 고통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26장 74-75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는데 세 번째 부인할 때에는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예수님)을 알지 못하노라”고까지 말했습니다(74절). 그 때에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인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75절). 전설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죄의 노예로 팔린 우리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사도 베드로처럼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고 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죄를 범하게 하고 죄의 노예로 팔게 한 사탄은 틈만 있으면 우리를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해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이 사탄의 공격과 싸워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죄의 경각심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끝까지 잘 싸워서 이제 후로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된 의의 면류관을 다 받는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딤후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