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사
[로마서 6장 23절]
성경 로마서 6장 23절을 보십시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현대인의 성경)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을 둘로 나눠서 생각합니다:
첫째로, 중생입니다.
“중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의 시초(시작)입니다. 영혼이 거듭난 것(다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내가 분명히 너에게 말하지만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중생이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말합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려주신바 된 것을 말합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가 중생하기 전/거듭나기 전/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엡2:1). 우리는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었고(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 육체의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이 하나님께서 맺으신 언약이 명령대로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생령으로(창2:7) 영원히 살 수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으므로(3:6) 하나님께서 맺은 언약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아담의 영혼만 죽은 것이 아니라(영적 죽음), 그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5:12). 즉, 아담의 범죄로 인해 아담뿐만 아니라 아담에게 속해 있는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영혼이 죽은 사람들이 되었고 또한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여 영원한 죽음(“둘째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6:23).
그러면 언제 우리가 중생했습니까? 언제 우리의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났습니까? 바로 허물과 죄로 죽었을 때입니다(엡2:1). 그 때에 우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2절). 우리는 세상의 악한 길을 따르고 하늘 아래의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마귀에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3절). 바로 그 때에(2절) 우리가 중생했고/거듭났고/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나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중생했습니까? 어떻게 우리의 죽은 영혼이 다시 살아났습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는데(4-5절) 어떻게 살리셨는가 하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롬6:23)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과 함께 죽고 장사되게 하시고(3-4, 8절)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4절) 우리도 그 분과 함께 살게 하시사(8절) 우리로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셨습니다(4절). 이 신비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므로 우리의 옛 사람(중생하기 전의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우리는 새 사람/중생한 사람/거듭난 사람/새 피조물이 되어 새 생명으로 행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로마서 6장 23절 상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란 말씀은 중생한 우리 신자들에게는 더 이상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죄의 대가로 죽는데 아니라는 말입니다. 의의 종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값으로 육신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셨기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8: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이미 해방시켜 주셨습니다(2절).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지만(6:17) 그러나 이제는 죄로부터 해방되었기에(22절; 참고: 18절) 우리는 죄의 대가로 죽는 것이 더 이상 아닙니다(23절). 오히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요11:25)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살4:16).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성경에서 자는 자들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 우리의 육체적 죽음은 죄의 대가가 아니라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천국에 못가는 것은 이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 육체적인 죽음이 없기에 우리는 지금 천국에 못가지만 우리가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하면 비록 우리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요11:24-25).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죽어도 우리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기에 하나님께 감사로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예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한 강도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23:42).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43절). 주로 그 당시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들은 이틀 내지 사흘 만에 사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오늘”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제 삼시(오전9시경)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막15:25), 제 구시(오후3시경)에 죽으셨으니까(15:34, 37) 약 6시간 정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 강도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죽어야 할 죄인인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입니까. 또한 육체적 고통을 이틀 내지 사흘 동안 십자가에서 겪었어야 했는데 약 6시간만 겪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은혜요 사랑입니까.
둘째로, 영생입니다.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영생은 중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중생의 완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주님의 재림 때 몸은 변화하던지(그 때까지 살아있다면) 또는 부활하여 (죽었다면) 영혼과 연합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부활을 생각해 보십시다. 성경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을 보십시오: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현대인의 성경) “바다와 죽음과 지옥도 죽은 사람들을 토해 냈으며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죽은 자들이 내준바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스도 안에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할 것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52-53절을 보십시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재림 때) 죽은 자들은 썩지 아니할 것으로 ‘부활’(다시 살아날) 것이고, 그 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은 “변화”될 것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21절을 보십시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분이 오시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그 능력으로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낮은 몸(천한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제와 같이(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천국을 생각해보십시다. 요한계시록 22장 4-5절을 보십시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천국에는 음부에 있는 있은 것이 없습니다(음부에 없는 것이 천국에 있음). 천국에서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고전13:12,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어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요일3:2, 현대인의 성경).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냐 좋으랴”(새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1절). 천국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입니다(계22:5).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됐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롬6:23, 현대인의 성경; 참고: 요3:16).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란 말씀에서 “주 안에”라는 말씀이 164번 나오는데 3개만 소개합니다: “…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죽은 자들)(살전4:14),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중생한 자들)(롬6:11), “…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완성된 영생, 천국 가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것임)(롬6:23).
성경 고린도전서 15장 57-58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성경 요한계시록 22장 12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실 상을 받고자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 즉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을 중생과 영생으로 나눠서 묵상할 때 영생의 시초(시작)인 중생과 중생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생 사이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Already) 과거(past)에 중생했고/거듭났고/새 피조물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직”(Not-yet) 미래(future)에 올 예수님의 재림 때 영생의 완성을 소망하면서 “이미”와 “아직” 사이인 현재(present)를 어떻게 살아드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그 답변을 새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에 3절 가사인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이미” 중생과 아직도 “영생” 사이를 이 땅에서 살면서 새 생명 얻은 자답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생을 누리는 삶은 천국 생활이요, 그 영생을 누리는 마음은 천국이요(참고: 눅17:21), 그 영생을 누리는 공동체(주님 중심된 가정과 교회)는 천국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생의 시작인 이미 중생과 영생의 완성인 아직도 영생 사이에서 어떻게 영생을 누리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합니다[(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여기서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요일3:24) 우리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성부 하나님(3:1-2)과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2:2) 십자가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3:16)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시요 또한 영원한 생명이신 성자 예수님과 사귐(교제)을 누리므로(1:1-3)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면서(3:11, 23, 24)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갈 5:22-23). 그 주님의 계명은 이중계명(twofold)으로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의 계명)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수평적인 형제와의 교제 속에서의 계명)입니다(마22:37, 39). 이 계명이 바로 천국의 계명입니다. 이 주님의 이중계명(천국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주님을 아는 것이요, 주님 안에 사는 것이요 또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천국 생활입니다(요15:9-12). 이것이 바로 다가오는 세상(천국)에서 충만히 누리는 영원한 생명을 이 세상에서 부분적으로 누리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