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서 6장 15-18절]
성경 로마서 6장 12-14절 말씀[제목: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결과]을 다시금 복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영원히 살아 계심과(10절) 같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기며 또한 그리 살아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12절). 우리는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아야 합니다(12절). 여기서 “사욕”이란 단어가 원어 헬라어 단어가 8가지로 번역이 되었다고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말했지만 실제로는 10가지 이상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번역 중에는 죄가 아닌 선한 일에 대한 ‘욕망’/’욕심’으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성경 빌립보서 1장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란 말씀을 개역한글 성경책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욕망.” 우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롬6:13).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13절).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13절). 우리는 우리 몸의 지체를 의의 무기(도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13절).
오늘은 로마서 6장 15-18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성경 로마서 6장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여기 로마서 6장 17절에 나오는 “본래”라는 단어는 원래 우리는 죄의 종(17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의의 종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18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17절). 또한 여기 로마서 6장 17절을 보면 “너희”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성경 로마서 6장 1-23절에서 “우리”라는 단어(주로 전반부에 나옴)는 11번 나오고 “너희”라는 단어(주로 후반부에 나옴)는 21번 나오는데 “우리”와 “너희”라는 말은 같은 의미로서 그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아 장사되었다가 부활한 “우리”/”너희”를 말합니다(4절). 여기서 “세례”에 대해서 4가지로 생각을 했습니다: (1)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 (2) 물세례를 받고 나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 (3) 성령 세례만 받은 사람들, 그리고 (4) 물세례만 받은 사람들. “우리”와 “너희”는 (1) ~ (3)까지만 적용됩니다. 물세례만 받은 사람들은 “우리”와 “너희”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와 “너희”는 (1)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 (2) 물세례를 받고 나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 (3) 성령 세례만 받은 사람들이지 (4) 물세례만 받은 사람들은 아니란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 물세례만 받고 직분자로 섬기다가 나중에 성령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고 물세례만 받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다면 성령 세례를 꼭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 세례란 중생/거듭남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성령 세례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17절). 그 이유는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는데[우리는 본래 영적으로 죽은 자였습니다. 우리는 죽어서 태어나서 그러다가 육체적으로 죽으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둘째 사망)] 지금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의 종이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17-18절).
성경에는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성경 누가복음 17장 11-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어떤 마을에 들어가셔서 나병환자 10명을 만나셨습니다(눅17:11-12). 그 때 그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습니다(13절).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14절). 그런데 깨끗함을 받은 10명의 나병환자들 중 오직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5-16절). 또 다른 예는, 성경 사도행전 3장 1-10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을 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성전 문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했습니다(1-3절). 그 때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습니다(6절). 그리고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7-8절). 그리고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8절). 우리는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던 나병환자였던 그 사마리아인과 치유를 받은 그 앉은뱅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를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하루 종일 살다가 감사로 하루를 마친 후에도 꿈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 생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성경 로마서 6장 17절을 보면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교훈”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입니다. 그리고 “본”이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본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에 들어가 복음화 돼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돼야 하며 그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의 행함이 그 복음의 향기를 들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성령님께서 행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굳센 믿음으로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하십니다. 또한 성경 로마서 6장 17절에서 “마음으로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순정)으로 순종해야 함(형식적으로 말고)을 말씀합니다. 그 예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순종하므로 사도 바울과 주님을 본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살전1:6). 그리고 그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7절). 순종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합니다. 왜 순종의 삶을 못사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믿음이 약해서입니다.
성경 로마서 6장 18절을 보면 “죄로부터 해방되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래 죄가 우리 삶 속에 왕 노릇했었습니다. 죄가 우리를 사로잡았고 우리를 꼼짝도 못하게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 대항하여 싸울 수가 있게 되었고 또한 죄에서 이겨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도망갑니다. 우리는 죄를 범하는 자가 아닙니다(요일3:6, 9). 우리는 더 이상 고의로 죄를 짓지 않고(고범죄), 습관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으면(습관적인 죄) 또한 계획적으로 모의해서 죄를 짓지 않습니다(모의죄). 그런데 우리는 그 외에 다른 죄를 짓고 있습니다. 성경적인 예는 사도 베드로를 들 수가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부르셨을 때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랐지만 죄를 범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셔서 간구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지만 간구하고 돌아오셨을 때에 제자들은 졸고 있었습니다(막14:32-37).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윈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37-38절).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결국에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고범죄나 습관적인 죄나 계획적인 죄가 아니라 약해서 시험에 넘어져 짓는 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잡히셨을 때에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마26:70, 72, 74).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를 했습니다(75절). 또한 사도 베드로는 안디옥에서 사도 바울에게 책망 받을 일을 범했습니다(갈2:11). 그는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 몇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나가버렸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다른 유대인들도 안 먹은 체하며 밖으로 나갔고 바나바 까지도 그들의 위선에 유혹을 받았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사도 베드로처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죄를 범했을 때 우리는 성경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을 붙잡고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부지런히 회개해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6장 18절을 보면 “의의 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의 종이십니다: “의로운 종”(사53:11), “의로운 가지”(렘23:5), “의의 태양”(말4: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로마 시대/바울 시대 때 종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종이란 노예였습니다. 노예란 자기 자유/인권이 없었습니다. 그저 주인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노예란 전쟁에서 져서 종이 되기도 했고, 빛 때문에도 종이 되기도 했고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종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할 수 없이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었기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러모로 힘든 이 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본래 죄의 종이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이젠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와 기쁨과 감사를 누려야 합니다. 감사할 때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