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의 결과 (8):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로마서 55-6).

 

 

성경 로마서 5장 6절을 보면 한국 성경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라고 시작하지만 원어 헬라어에는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있어서 “그러므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란 앞 구절 5절에서 사도 바울이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한 말씀과 연결해서(이어서) 한 말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5절에서 말한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6절부터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로마서 5장 6절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주 연약할 때, 아주 작은 것을 할 수 없는 매우 연약할 때를 말합니다. 그 과거 때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이요(1절),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없었던 때이며(1절), 우리가 믿음으로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지 못했을 때이며(2절),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지(소망하지) 못하고 즐거워하지 못했을 때이며(2절), 우리가 환난 중에 즐거워하지 못했을 때이며(3절) 또한 우리에게 성령님이 없고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되기 전입니다(5절). 성경 로마서 5장 6절에서 “기약대로”라는 말씀은 적절한 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정하셨고 그 정한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정한 때에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5절). 성경 갈라디아서 4장 4절을 보십시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때가 차매 여인의 후손으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여인에게서 나게하셨습니다. 성경 마태복음 1장 16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성경 로마서 5장 6절을 보면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1:18). 불경건한 자들은 진리를 거역하고 배반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위하여”라고 로마서 5장 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위하여”와 “대신하여”(고후 5:14, 15, 21)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4, 15, 2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위하여”란 우리는 우리 자녀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여러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는 있지만 대신해서는 죽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하여”란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님만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완전하신 사람이시기에 오직 예수님만이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고 우리는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의롭다하시고 등등 하신 것입니다. “위하여” 죽는 것은 그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지만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그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리 성도의 죽음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스데반 집사의 죽음에 대해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표현을 했습니다(행7:60).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15:20).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3번이나 ‘자는 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기약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신(롬5:6)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사하며 감격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은 죽음 같이, 아니 죽음 보다 강한 사랑입니다(아8:6-7). 이 사랑을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셨으니 우리는 그 사랑으로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 마태복음 22장 37-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마음과 목숨과 뜻들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롬5:1).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있습니다(1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갔습니다(2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2절).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3절).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습니다(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