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의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1). 이 말씀은 칭의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칭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으로도 의롭다하심(칭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선행으로, 착한 일로, 사랑으로,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칭의란 인간의 공로가 아닙니다. 칭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위해서 입니다. 성경 에베소서 2장 8-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자랑하지 못합니다. 성경 로마서 3장 26-30절을 보십시오: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으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이 필요합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비록 율법은 우리의 구원과는 관계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관계가 있습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율법을 지키므로 율법을 굳게 세워야 합니다(31절).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faith)으로만 구원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감사, 찬양, 경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행위 등)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신실하게(faithfully) 율법(예: 십계명)을 사랑하고 준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중계명(하나님을 사랑하라 & 이웃을 사랑하라)을 순종해야 합니다(이것은 중생한 증거임).

 

성경 로마서 5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이 접속사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 1절 이전에 이미 말한 내용과 5장 1절부터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연결해 줍니다. 그러면 이 “그러므로”는 앞으로 5장 1절 이전 어디부터 바울이 말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가에 대한 여러 주장(혹은 설)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장 15절부터 연결해 준다는 설도 있고, 4장 전체부터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3장 21절부터 또는 1장 18절부터 연결해 준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면 이 “그러므로”(5:1)는 뒤로 어디까지 바울이 말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5장 11절까지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 로마서 5장 1절을 보면 “우리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란 사도 바울과 로마 교회 성도를 가리킵니다. 적용하자면,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절). 여기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은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선언하시고, 그렇게 여기시고 또한 그렇게 대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은 아무 근거 없이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아무 근거 없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실 수가 없으시고 그렇게 아니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일까요? “믿음“을 근거로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방법/방편/수단일 뿐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1절), 즉 예수 그리스도가 근거가 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근거로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근거로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 로마서 5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서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는 “믿음”이란 로마서 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리킵니다. 성경 로마서 4장 3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이”란 창세기 15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관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5-6절을 보십시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현대인의 성경)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 아브라함이 믿음이 좀 약해져서 하나님께 저에게는 자식이 없으므로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습니다’(2절)라고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엘리에셀”(2절)을 통해서 이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4절)를 통해서 이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롬4:3). 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3절). 그런데 성경 로마서 4장 16절부터 보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또 다른 믿음의 행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성경 창세기 12장에 나옵니다. 성경 창세기 15장 5-6절 말씀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다 들어와서 거의 10년 후인 아브라함의 나이 85세 즘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 로마서 4장 16절 이하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사라는 89세였습니다. 성경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였으니까 로마서 4장 16절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나이는 99세였으니까 24년 즘 후였을 때입니다. 성경 창세기 15장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85세였으니까 그 때부터 로마서 4장 16절의 아브라함은 한 14년 후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나이 99세 때(롬4:16이하) 자기 자신을 보니까 아이가 없었고 아이를 가질 수도 없는 나이였습니다. 사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경 로마서 4장 19절을 보십시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의 아내인 사라의 나이 89세였기에 아브라함은 자식을 낳음에 있어서는 자기나 사라나 마치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18절, 창15:5 인용), 특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하신 말씀(창15:4)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롬4:18). 성경 로마서 4장 16절 이하를 보면 “약속”이란 단어(16, 20, 21절)와 “말씀”[17절(“기록된 바”, 18절)이란 단어가 여러 번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그 약속은 바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18절).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들을 보면 대부분 우리가 바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이란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될 때 까지 자식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18절)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거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모든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랬습니다. 성경 로마서 4장 17절을 보십시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신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기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19절)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17절)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17절). 자식도 하나도 없는데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18절).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4장 19-20절을 보십시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의 믿음은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믿음이었습니다(20절). 성경 로마서 4장 21절을 보십시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확신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4장 2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4장 23-25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를 위해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성경은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24절).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죄를 범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25절). 우리는 다 죄인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죄,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 이 모든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생명이 죽으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가 아무리 크고 무거울지라도 충분히 다 해결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생명)로 죄의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죄의 문제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서 편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죄에서 완전히 자유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25절).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입니다(참고: 5:1).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그가 무덤에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목적인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자 임을 믿습니다. 과연 믿습니까??

 

우리가 약 2주전 주일에 받은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면 ‘과연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지배했을 때 신사에다가 절하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사에게 절했습니다. 그런데 절하지 않고 순교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수가 적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 합쳐서 80여명 되는데 앞으로 장차 환난과 핍박이 오면 적어도 10명이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10명도 가능할지 … 나 자신을 뒤돌아 볼 때에도 과연 순교할 수 있을지…. 우리가 믿습니까? 우리가 과연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믿음은 과연 어떠한 믿음입니까? 과연 지금 우리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었는데,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바라고 믿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있습니까? 나이가 많아 자기 몸이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자기의 아내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지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고 있습니까? 성경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우리는 환난이 오기 전에 우리 자신을 스스로 살피고 확증해야 합니다. 환난이 와도 좋다고 하는 믿음, 핍박이 와도 좋다고 하는 믿음,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확증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 잘 준비해서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이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여 주님 앞에 설 때에 승리의 면류관을 받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