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 (1)
[요한복음 20장 1-10절]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건은 사복음서(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에 다 기록돼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20장 1-10절 말씀 중심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고 다음 주 수요예배 때에는 마태복음 28장 말씀 중심으로 증언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1절 말씀입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이란 그 때 안식일이 토요일이었으니까 그 다음 날은 일요일, 즉 주일입니다. 성경은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왔다고 기록돼 있는데 마태/마가/누가복음을 보면 그녀 외에도 적어도 4명의 여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와 동행했습니다[“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마28:1),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막16:1), “이 여자들”(눅24:1), 즉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23:55)]. 예수님의 무덤을 단단히 막고 봉인하고 있었던(마27:66, 현대인의 성경) “돌”(요20:1)은 큰 돌로서 예수님의 무덤 문을 막은 큰 문짝 같은 돌이었습니다. 결코 여자들 4명으로는 도저히 옮겨 놓을 수 없을 정도의 큰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돌을 옮겨 놓았을까요?(마28:2) 그 이유는 빈 무덤을 알려주기(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빈 무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2절 말씀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본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인 사도 요한에게 달려가서 주님이 무덤에 안 계신 것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 없음을 보여줍니다. 즉,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다고 믿었다면 그녀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에게 달려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었을 텐데 오히려 그녀는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2절). 즉, 그녀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했기에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에게 주님의 시신(죽은 몸)이 어디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분명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돌이 무덤을 막았다할지라도 충분히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오실 수 있으신 영광스러운 주님이십니다.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주님은 아무리 큰 돌이 무덤을 막았다 할지라도 충분히 무덤에서 나오실 수 있으신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3절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간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3번이나 자신이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것입니다(4절). 그들은 죽으신지 3일 만에 부활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빈 무덤으로 가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했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4-8절 말씀입니다: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사도 요한이 사도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음질하여 먼저 예수님의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지만 그 빈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4-5절). 그 때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었습니다(6-7절). 수건으로 머리를 싸면 머리 모양이 둥그렇기 때문에 수건도 둥그런 모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머리를 쌌던 수건도 그래도 둥그렇게 있었습니다. 그것을 베드로가 자세히 보고 나오니까 사도 요한도 그 때서야 무덤에 들어가 보고 믿었습니다(8절).
오늘 본문 요한복음 20장 9-10절 말씀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 사도 요한의 신앙은 보고 믿는 신앙이지(8절)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고전15:3-4)을 믿는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처럼 성경에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요20:9). 분명히 성경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이 많이 기록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10절). 이렇게 보고만 믿는 신앙은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7-9절 말씀입니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우리는 사도 요한처럼 보고 믿는 신앙이 아니라 “인자(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부활을 믿고 다른 모든 이에게 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살아 있을 때 3일 만에 자기가 살아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몰려와서 예수님의 무덤을 3일까지 잘 지키라고 경비병에게 명령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경비병과 함께 가서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켰습니다(마27:62-66). 이 사실을 보면 사도 베드로나 사도 요한보다 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더 믿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고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현대인의 성경)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29절 말씀입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린도전서 15장 3-4절 말씀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께서는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처럼 보고 믿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는 그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 것을 가지고 믿으려고 합니다. 요즘 어떤 이들은 천국, 지옥을 갔다 왔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는데 그러한 믿음은 흔들리기가 쉬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믿으면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서 믿음 생활을 든든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돼야 합니다(계3:7-13). 우리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사탄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로 인한 환난과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승리하여 주님께 칭찬을 받는 교회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라오디아 교회처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므로 주님께 책망과 징계를 받아서 아니 될 것입니다(14-19절). 주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리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쓰인 주님의 부활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음을 모든 사람들에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도자들이 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