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1930; 마가복음 1542-46]

 

 

지난 주일은 종려 주일로 지켰습니다. 종려주일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종려주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절기를 앞두고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시게 됩니다. 그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을 다른 말로 하면 무교절입니다. 그 다음에는 50일 후에 오순절 또는 칠칠절, 또는 맥추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초막절이 있습니다(요7:2). 그 초막절을 구약에는 수장절이라고 말했습니다(출23:16; 34:22).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삼대 절기 때에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예루살렘으로 다 올라와서 지켰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는 사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되었겠지만 외부에서 많은 때에는 약 2백만 명이나 예루살렘 성에 모여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 때 예루살렘에 입성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맞이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종려 가지 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라고 외치면서 찬송했습니다(마21:9, 15, 막11:9-10, 요12:13). 그것이 종려주일에 있었던 일이고 오늘 고난 주간 금요일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데 오늘 마가복음 15장 말씀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5장 1절 말씀입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여기서 “새벽”이란 아침 한 6시 전후일 것입니다. 그 때 대제사장들이 급하니까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제일 권력이 센 최고의 산헤드린 공회와 더불어 예수님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줬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고소(송사)했을 때 예수님이 자칭 왕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네 말이 옳도다”였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에 이렇게 답변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3절 말씀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그래서 대제사장들은 여러 가지로 고발을 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칭 왕이라고 예수님이 한 말과 갖가지 죄목을 붙여서 예수님을 고소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5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빌라도가 다시 예수님께 ‘사람들이 저토록 여러 가지로 너를 고소하는데 왜 한 마디 변명도 없는가?’하고 물었지만(4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5절).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종려 주일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종려 가지를 들고 환영을 했었는데 왜 여기 마가복음 15장에서는 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유대인들의 메시야관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심을 예언하고 있는데 이 유대인들은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시면 그들의 왕이 되어가지고 로마 나라에서 자기들을 해방시켜주시고 평화를 이루고 잘 살게 해주실 줄 알고 기대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대대로 그들을 로마 나라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평화를 이루고 잘 살게 해주시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서 우리를 사탄의 왕국에서 구원해 주시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하시고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로마 나라에서 구출해 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로마 총독에게 붙잡혀 가지고 재판을 받는 이러한 그리스도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들을 돌이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마가복음 15장 13-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그 결과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15절).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고,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16-20절).

 

마가복음 15장 22-25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해골의 곳)에 이르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그 때가 “제 삼시”였는데 우리 시간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3-34절 말씀입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는데 “제 육시” 즉, 오후 12시까지는 예수님께서 땡볕에 고난만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부터는 온 땅에 어둠이 임했는데 오후 3시가 되어서는 그 때까지 잠잠하시던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뜻: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셨습니다(37절). 이 말씀을 누가복음 23장 4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신 내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마가복음 15장 38절 말씀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막15:37; 눅23:46)라고 말씀하신 후 숨지시니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막15:38). “휘장”은 성소에 2개가 있습니다. 성소 안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휘장이 있었습니다. 그 휘장을 통해서 성소에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이었습니다. 여기서 “휘장”은 제일 좋은 실로 짰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엮어서 그 휘장을 짰습니다. 그래서 손 등(2 cm)만큼 두꺼웠습니다. 이 휘장은 누가 찢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휘장 앞에 수를 놓았는데 그룹(천사) 셋을 수놓았습니다. 그 의미는 천사들이 지키니까 아무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휘장으로 지성소를 막은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었기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다 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못 들어오도록 지성소 앞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 단 한번 속죄일 때만 대제사장만이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정결 예식을 다하고 지성소에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휘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지셨을 때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장소는 골고다 언덕인데 아니 성 안에 있는 성소에서 그 휘장이 찢어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 때는 오후 3시였고 제사장들이 나와 가지고 제사를 드리고 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사도행전 3장1-8절에 “어느 날 오후 3시 기도 시간에”(1절, 현대인의 성경)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문 앞에 있는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하여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므로 그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 오후 3시에 제사장들이 성전에 있었기에 그 휘장이 찢어진 것을 알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휘장을 찢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셔서 그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주석가들). 그러면 그 휘장이 찢어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그 휘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래서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이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므로 사람들이 지성소에 들어가고 나올 수 있게 된 것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에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도 우리가 죽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한 주일 산 것을 생각하면 이 양심에 가책되는 게 많고 삶이 너무 부끄럽고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우리는 담대히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말씀합니다. 오늘 주일 우리가 예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우리의 영혼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시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휘장이 찢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2-45절 말씀입니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여기서 “준비일”이란 유월절을 준비하는 날을 가리킵니다. 이 날은 안식일 전날 으로서 금요일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 상류 사람이요 권세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빌라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에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6시간 만에 죽는 게 아니라 대개 2-3일은 살아 있다가 죽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6시간에 죽으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니까 빌라도에 입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44절). 그래서 빌라도는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물었던 것입니다(44절). 그렇게 빌라도는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내줬습니다(45절). 그러나 예수님이 죽으셨을 그 때 양편에 못 박힌 강도들은 아직도 살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적어도 이틀 동안은 살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그 두 사람의 다리를 꺾고(요19:32) 죽여가지고 시체를 내준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예수님이 죽었는지를 확인하려고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므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33-34절). 그래서 예수님의 시체를 내준 것입니다. 그리고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일이 있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33킬로그램 정도 가지고 와서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료를 바르고 모시 천으로 싸서 요셉의 무덤에 안장을 했습니다(39-40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해서 금요일 날 결국 예수님께서 부자 요셉의 새 무덤에 안장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예언대로 다 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첫 예언은 창세기 3장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뱀”은 사탄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박살낸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으로 시작해서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예언을 많이 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한 예로, 이사야 53장 9절 말씀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기서 “부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하나님의 뜻에 다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다 되겠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매를 맞으면 되고, 없어도 하나님의 뜻이면 없으면 되고, 등등) 그러면 하나님께서 참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지를 기원하면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우리 생활의 표준(지침)으로 삼고 살아가면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다 영광이고 복된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언하신 그대로 다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갈 길을 다 열어주셨으니까 우리는 감사하므로 찬양하므로 그 길을 따라 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뵙고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