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7)
[누가복음 23장 44-4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번째 말씀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아더 핑크(Arthur Pink)라는 학자는 이 예수님의 일곱 번째 말씀을 ‘”만족의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만족의 행동이요 믿음의 행동이요 신뢰의 행동이요 사랑의 행동이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더 핑크는 이 만족의 말씀을 일곱으로 나눠서 자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1)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와의 교제로 다시 회복되신 구주를 봅니다. (2) 여기서 우리는 한 의도적인 대조를 봅니다. (3)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종을 봅니다. (4) 여기서 우리는 구주의 절대적인 유일무일성을 봅니다. (5) 여기서 우리는 영원히 완전한 피난처를 봅니다. (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봅니다. (7) 여기서 우리는 마음의 참된 안식처를 봅니다. 오늘 이 일곱 개 중 첫 번째인 “여기서 우리는 아버지와의 교제로 다시 회복되신 구주를 봅니다”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독생성자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독생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기 전 영원한 세계에서도 교제를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5절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하나님께 드렸던 이 기도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창세전에 영원 세계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시면서 교제를 누리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하나님과의 교제는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시고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가셨을 때 그 때에 베드로가 잡으러 온 무리들 중에 한 사람인 말고의 귀를 칼로 베어 버렸을 때(10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잔”은 “고난의 잔”입니다. 이 잔은 아버지의 저주의 잔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잔을 마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교제를 계속해 나아가셨습니다. 또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3시간 혹은 6시간 달리시고도 계속해서 이 교제(관계)를 이어 나아가셨습니다. 그러다가 캄캄함이 다 지나갈 때에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뜻: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막15:33-34).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버리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정결하시므로 죄를 용납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죄를 벌하시고 멸하십니다. 하박국 1장 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도 못하시는 그러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시 못하시는 분이신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나의 죄, 우리의 죄를 걸머지시고 죄 없는 죄인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6절 말씀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죄 없으신 분이신데 우리의 모든 죄악을 걸머지시고 이렇게 대신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도록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렇게 우리로 화목케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누가복음 23장 4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큰 소리로 부르시지 않으시고(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큰 소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된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끝나지 않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7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 아버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와 아들(부자) 관계인데 “곧 너희 아버지”, 즉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자녀입니까? 로마서 8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형성이 된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 말씀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18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십자가상에서 계속해서 침묵을 하시던 예수님께서는 두 번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한 번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고 또 다른 한 번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크게 두 번 소리 지르심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면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비할 수 없는 영광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고난에 영광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