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말씀 (5)
[요한복음 19장 28-30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입니다(마27:46). 이 예수님의 말씀은 아람어로서 한국어 의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46절). 이 네 번째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 우리의 죄, 우리의 모든 죄를 걸머지시고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서 버리시므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이 네 번째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말씀은 우리 죄의 값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다윗왕의 구약 성경 시편 22편 1절 예언을 성취하심을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을 때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요일4:8, 16)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데[(시51:5, 현대인의 성경) “나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으며 우리 어머니가 나를 밴 순간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고[“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죽으시므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나타내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가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고[“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죽으시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5:10).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9-10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상에서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난바 되었는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속하여 우리를 살리시려고 화목 제물로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독생자를 이 세상에 화목 제물로 보내시되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주시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다섯 번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8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여기서 “그 후에”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막15:34)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요19:28)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모든 일”이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실 것을 다 이루어진 줄 아심을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고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이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셨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요한복음 19장 28절에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구약 성경 시편 69편 21절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음식 대신에 나에게 쓸개를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초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시기 전에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마27:34) 또는 “몰약을 탄 포도주”(막15:23)를 드려 마시게 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을 맛보시고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는 마취제를 포도주에 탄 것으로 정신을 희미하게 하므로 고통을 덜 느낄 수가 있기에 예수님을 그 쓸개/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후에도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스펀지 같은 것)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마27:48; 막15:36)[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매달아(요19:29, 현대인의 성경)]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대었는데 그 때는 예수님께서 그 신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요19:29-30,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신 포도주”와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는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대한 설들 중 대부분 학자들은 같은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소수의 학자들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신 포도주”와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3가지입니다: (1) “신 포도주”와 “쓸개 탄 포도주” 및 “몰약을 탄 포도주” 단어의 원어 헬라어가 다릅니다. (2)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는 마취제 성분이 있지만 “신 포도주”는 식초를 탄 포도주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마취제 성분이 있는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는 받지 않으셨지만(마27:34; 막15:23), “신 포도주”는 받으셨습니다(요19:30). 예수님께서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마취제 성분으로 인해 고통을 덜 느낄 것을 아셨기 때문이요, 식초를 탄 “신 포도주”는 받으신 이유는 고통을 더 느낄 줄 아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저의 생각의 근거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구하셨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고난의 잔”을 받으시는 것으로 기도 응답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눅22:42)[참고: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27-28; 막14:23-24)].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는 고통을 받으신 후[“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막15:34)] 식초를 탄 “신 포도주”를 받으시므로(요19:30) 결국 자신의 목마름[(28절) “내가 목마르다”]을 해갈하려고 하셨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해하시려고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우리를 살리시려고(요일4:9)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자(3:16) 덜 고통을 느끼게 하는 마취제 성분이 있는 “쓸개 탄 포도주”나 “몰약을 탄 포도주”가 아닌 더 고통을 느끼게 하는 식초를 탄 “신 포도주”를 받으셨다고 생각합니다(요19:28).
새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가사를 보십시오: (1절)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2절)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3절)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하려냐, (4절) 한없는 용서와 참 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하나님의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 죽을 인생인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를 속하여(대속하여) 값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살길을 주시고자 이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에 몸을 희생하시고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사랑의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널 위에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