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가복음 15장 33-36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네 번째 말씀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가복음 15장 34절 말씀입니다: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우리가 지난 주 수요예배 때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하신 이 네 번째 말씀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마태복음 27장 46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인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 53장 7절에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잠잠하실 것을 예언했는데 이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잠잠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마27:46).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기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하신 이 네 번째 말씀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를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33-36절, 특히 34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참고할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란 말씀은 아람어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아람어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람어도 사용을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언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버리셨는가’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33-34절 말씀입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언제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냐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인 안나스에게 심문 받을 때도 아니고, 가야바에게 심문 받을 때나 혹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아니고, 빌라도에게 심문 및 재판을 받을 때나 혹은 헤롯왕에게 심문 받을 때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그 형벌을 받을 그 장소인 해골(골고다)에 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아니고,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3시간 동안(오전 9시에서 오후 12시까지)에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또한 오후 12시부터 3시까지 캄캄할 때도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고, 그것이 다 끝날 지경인 오후 3시쯤 되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모든 일이 다 완성된 것을 아시고 성경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시려고 ‘내가 목마르다.’하고 말씀”(요19:28, 현대인의 성경)하시고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셨는데(30절) 그 죽으시기 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신 것입니다(막15:34).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3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며 거룩하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을 보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6:9; 눅11:2).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박국 1장 1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현대인의 성경) “주의 눈은 너무 정결하셔서 악을 보지 못하시며 비행을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공의로우시기에 그분의 정결한 눈으로는 죄악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용납하실 수 없으시며, 반드시 죄에 대한 형벌을 가차 없이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형벌을 가차 없이 내리시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마3:17)까지 십자가상에서 버리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죄의 값이 얼마나 무겁고 또한 무서운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즉,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죄의 값은 사망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만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아담은 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음으로(3:6) 죄의 형벌인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율법의 말씀을 주신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의 말씀 중 마태복음 5장 26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개역한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여기서 “한 푼”이란 예수님 당시에 로마 사람들의 화폐 중에 단위가 제일 낮은 것입니다. 개역한글에는 “호리”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호리”란 사분의 일 앗사리온(1 앗사리온은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데나리온의 1/16정도에 불과)에 해당하는 아주 작은 단위의 돈입니다(인터넷)[지금 미국으로 말하자면 1 센트(cent)임].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빚진 자가 다 갚고도 단 한 푼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빚진 자가 마지막 빚 한 푼까지도 모두 지불한다는 것은 완전히 가망이 없는 것이기에 빚을 다 갚기까지 형벌을 면키 심히 어렵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마태복음 5장 26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한 최종적인 유죄 선고를 나타내 줍니다(인터넷). 이 세상에 많은 감옥에서는 빚을 갚고 또 갚고 다 갚다가 돈 1센트(cent)를 못 갚아서 감옥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비록 이 세상의 법은 이렇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단 한 푼이라도 못 갚으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영원한 감옥(지옥)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정도로 하나님의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하여 무섭게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비록 1센트(cent)같은 죄라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 사람의 눈에는 그 죄가 보이지 않아 그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서운 형벌을 내리시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예를 들어, 머리털이 다 해결되었다 할지라도 머리털 끝 한 부분의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될 수가 없고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만큼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한 푼의 죄요 1 cent의 죄요, 머리털 끝 한 부분의 죄까지도 다 담당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버리심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우리에게 예언의 성취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예언이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약 1,000년 전에 다윗이 예언한 시편 22편 1절 말씀을 가리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현대인의 성경)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아침의 사슴' 이란 곡조에 맞춰 부른 노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어째서 나를 돕지 않으시고 내가 신음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십니까?”]. 이 시편 22편의 표제(머리말)를 보면 “다윗의 시, 영장으로 아얠렛 샤할에 맞춘 노래”라고 쓰여 있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다윗의 시. 성가대 지휘자를 따라 ‘아침의 사슴’이란 곡조에 맞춰 보른 노래”라고 번역을 했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 시편 22편은 노래라기보다는 예언으로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시편 22편 1절 말씀[“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란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크게 소리 지르시므로 성취가 되었음] 외에도 또 한 예로 18절을 보아도 알 수가 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예언의 말씀은 요한복음 19장 23-24절에서 성취가 되었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 즉 한 푼(1 센트)같은 죄나 보이지 않는 죄나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죄까지도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 지르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시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드리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1절 말씀입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당하시는 영혼의 수고를 하신 것을 보시고 만족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예언하신 것을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성취하셨기에 예수님께서는 만족히 여기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도 만족히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만족케 하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큰 죄뿐만 아니라 지극히 한 푼 같은 죄까지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까지 다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상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믿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시므로(forsaken by God)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forgiven by God)는 이 놀라운 죄 사함의 은혜에 감사 찬양 경배를 평생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