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3)

 

 

 

 

[마가복음 1521-32]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계셨을 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고, 모욕하고, 희롱하며, 욕했습니다. 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비웃고, 모욕하고, 희롱하며 욕했습니까?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9-30절 말씀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1-32절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31절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 마태복음 27장 41절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장로들도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1-43절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산헤드린 공회원들로서 유대의 지도자들인 관리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5절 말씀입니다: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군인들도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6-37절 말씀입니다: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강도들은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44절 말씀입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이 일곱 부류의 사람들[(1) 지나가는 자들, (2) 대제사장들, (3) 서기관들, (4) 장로들, (5) 관리들, (6) 군인들, (7)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비웃고 희롱하고 모욕한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내용은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내용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여 십자가에 죽지 말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탄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탄(마귀)에게 3번 시험을 받으셨는데(눅 4:1-13) 사역을 끝내시고자(완성하시고자)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에도 3번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누가복음에서만 근거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을 때 받으신 3번의 유혹입니다: (1) 첫째 유혹: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23:35), (2) 둘째 유혹: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36-37절), (3) 셋째 유혹: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39절). 이 사탄의 3가지 유혹의 목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구원해서 죽지 않으시고 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대속 죽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기에 "관리들"(35절), "군인들"(36절),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39절)를 사용해서 예수님에게 '스스로 구원하라'고 유혹을 3번이나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사탄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죽기보다, 사람의 뜻대로 살라고 우리를 비웃고, 희롱하며, 비방하면서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단계적 유혹은 먼저 좀 우리에게 멀리 있는 "관리들" 같은 사람들로 우리를 유혹을 한 다음, 좀 더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군인들" 같은 사람들로 우리를 유혹을 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제일 가까운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한 사람'같은 사람으로도 우리를 유혹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3 부류의 사람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데 제가 보기에 제일 치명적인 유혹은 바로 우리에게 제일 가까운 식구를 통해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욥의 경우는 고난을 당하고 있었을 때 그의 아내가 그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라고 말했습니다(욥2:9). “그러나 욥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말은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소.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는데 재난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소?' 이 모든 일을 당하고서도 욥은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는 비웃음과 희롱과 모욕을 당하신 것입니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비웃음과 희롱과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될 것은 이미 시편 22편 6-8절(현대인의 성경)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사람이 아닌 벌레에 불과하며 내 백성에게까지 멸시를 당하고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나를 보는 자마다 비웃고 모욕하며 머리를 흔들고, '너는 여호와를 신뢰하던 자가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그가 너를 구해 주지 않느냐? 만일 여호와가 너를 좋아하신다면 어째서 너를 돕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미리(먼저)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자들(롬8:30)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상에서 모든 수욕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롬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8절),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10절) 마땅히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모든 수욕과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 모든 수욕과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대할 때 마땅히 감사와 감격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새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4, 5절 가사입니다: (4절)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5절)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사사 모든 수욕과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모든 형벌을 받으시사 십자가에 죽으신 그 일이 고마워 우리 얼굴을 감시 못 들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생명 등을 다 바쳐서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마음으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금강석 같이 되었고(슥7:12), 우리의 이마 또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겔3:9).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새 찬송가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2절 가사입니다: “내 주는 쓰라린 고통을 다 견디셨도다 주 지신 십자가 대할 때 나 눈물 흘리네.” 우리는 주님 지신 십자가를 믿음으로 겸손히 대해야 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받으신 모든 수욕과 고난을 깊이 묵상하면서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속한 헛된 욕심과 교만한 마음 등 다 버리고 주님이 크는 은혜를 깨달아 알아가는 가운데 놀라운 사랑받은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제물을 삼아 주님께 받쳐 감사의 눈물 외에도 헌신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새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그리고 우리는 멸시 천대 받은 주님의 십자가에 나의 마음이 끌리므로(새 찬송가 150장 “갈보리산 위에”, 2절)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새 찬송가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