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2)
[마가복음 15장 21-32절]
마가복음 15장 22-23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 형장인 해골의 곳, 즉 골고다까지 가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몰약을 탄 포도주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몰약을 탄 포도주는 마취제로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들에게 줘서 고통을 들 당하도록 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받지 않으신 이유는 마취에 취하시지 않으시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있어서 고난을 감하지 않으시고 충분히 받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강도들보다 못한 우리를 구원하시사 성자 예수님을 닮는 성도가 되게 하시려고 이렇게 예수님께서 충분히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충분히 고난을 당하신 것은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은혜로 믿는 우리도 성숙한 믿음 또는 충만한 믿음을 가져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충분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참고: 막8:35; 15:23; 빌1:29).
요한복음 12장 23-24, 2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중에 헬라인(그리스 사람들)도 몇 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빌립에게 가서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께서 가서 여쭸습니다(요12:1, 12, 20-22). 그 여쭘에 대한 대답을 예수님께 하셨습니다(23절).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2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1)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24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것(23절)과 (2)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많은 열매”를 맺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24절). 여기에 “많은 열매”란 빌립에게 와서 예수님을 뵙게 해 달라고 간청했던 헬라인들 같은 이방인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다 구원하시므로 열매를 맺는 것이 되기에 영광이란 말씀입니다(23절). 요한복음 12장 28절 말씀입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다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대답(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미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였다는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장 14절 말씀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강생(탄생)을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의 강생(탄생)으로 말미임아 이미 영광을 받으신 것입니다(요12:28).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는 말씀의 내용은 무엇입니까?(28절) 이 말씀은 앞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3일 만에 다시 살아나게 (부활케)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심으로 영광스럽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빌립보서 2장 9-11절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이러므로”란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으로를 가리킵니다(8절).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신 예수님을 지극이 높여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9-11절).
요한복음 12장 32-33절 말씀입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 9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그래서 모세는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두었는데 뱀에 물린 자마다 그 놋 뱀을 쳐다보고 살아났다.” 예수님께서는 마치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둔 것같이(민21:9) 예수님도 십자가에 들리사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요3:14; 12:32-33).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들리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백성(“모든 사람”)을 다 이끌어 구원하시사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드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끌다’는 단어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이끄시듯이 사랑으로 이끄신다는 말씀입니다. 호세아 11장 3-4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마치 아버지가 어린 자녀에게 걸음을 가르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브라임”)을 애굽에서 건져내시사 광야에서 걸음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팔로 안으시사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양들을 위하여 버리시기까지(요10:11, 15) 그들을 사랑의 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다 이끌어 구원하셨으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12:28).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뜻을 이루시고자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받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사 충분히 고난을 받으셨기에(막15:22-24)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요12:28).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12:28)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예수님의 강생(탄생)으로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결국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 오시고(예수님의 강생/탄생)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예수님의 죽으심)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즉,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시작(탄생)과 끝(죽으심)은 온전히 하나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을 때부터(새 생명의 시작)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1문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할 때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예수님처럼 우리의 죽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벨처럼 우리가 죽은 후에도 믿음으로 “지금도 여전히”(히11:4, 현대인의 성경) 우리 자녀 후손 및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