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1)

 

 

 

 

[마가복음 1521-32]

 

 

 

마가복음 15장 22-25절 말씀입니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여기서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이란 예수님이 못 박히신 형장입니다. 다른 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마27:33), “해골이라 하는 곳”(눅23:33),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요19:17). “해골이라 하는 것”(눅23:33)을 킹제임스 성경은 “갈보리”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3절에서는 “몰약을 탄 포도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27장 34절에는 “쓸개 탄 포도주”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몰약은 식물에서 나오는 것이고, 쓸개는 동물에서는 나오는 것으로서 다르지만 같은 것은 둘 다다 마취제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흉악범에게 마취 성분이 든 술을 주는 관례가 있었는데 그 목적은 십자가의 형벌을 받는 사형수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습니다(인터넷). 아마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둘은 다 마셨을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셨습니다(마27:34). 그 이유는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시는 엄청난 구원의 일을 행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충분히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체적인 고통도 심하게 당하셨지만 정신적인 고통과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시는 영적인 고통도 맑은 정신으로 다 당하시고자 자신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진통 역할을 하는 마취제가 포함되어 있는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고난은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영광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24, 28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은 영광을 얻은 때였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영광이 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이 위대한 성업을 이루어 나아가심에 있어서 쓸개 탄 포도주를 마셔서 들 고통을 당하시고 몽롱한 정신으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아니라 결코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구원하심에 있어서 자신의 고통을 줄이려고 하지 않으시고 충분히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4절을 보면 성경은 “십자가에 못 박고”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은 “제 삼시”(25절), 즉 “오전 9시경”이었습니다(25절, 현대인의 성경). 요한복음 19장 14절을 보면 성경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했을 때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정도쯤 뙤었다”(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에 대해 여러 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마치 한국의 양력과 음력의 차이와 같다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한 시간과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전제는 성경의 무오성(오류가 없다는 것)을 믿기에 이 충돌에 보이는 차이도 우리가 아직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양손과 양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죄명에 적힌 죄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막15:26, 현대인의 성경). 강도 둘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을 당했는데 한 명은 예수님의 우편에, 다른 한 명은 예수님의 좌편에 있었습니다(27절). 또한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4절을 보면 성경은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는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요한복음 19:23-24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은 그의 옷을 가져다 네 조각으로 나눠 각각 하나씩 가졌다. 그러나 속옷은 이어 붙이지 않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어서 군인들은 '이것을 찢지 말고 제비를 뽑아 갖기로 하자' 하고 서로 말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내 겉옷을 서로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습니다.' 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군인들이 이런 짓을 했던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가져다 네 조각으로 나눠 각각 하나씩 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헨드릭슨 목사님이나 제임스 보이스 목사님은 이 “네 조각”을 (a) 머리 두건과 (b) 신발과 (c) 허리띠와 (d) 겉옷이라고 말한 후 4명의 군인들이 각각 하나씩 가졌다고 해석했습니다. 예수님의 “속옷”은 군인들이 찢지 말고 제비를 뽑아 갖기로 했는데 이것은 시편 22편 18편에서 예언한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들이 내 겉옷을 서로 나누고 속옷은 제비를 뽑습니다”(현대인의 성경).

 

마가복음 15장 29-32절 말씀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이와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39-44절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된 말씀을 보면 성전 모독죄와 신성 모독죄로 예수님을 모욕하였던 “지나가는 자들은” 두 가지를 예수님에게 희롱 적으로 유혹했습니다. 그 두 가지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라는 것과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마27:40). 이들의 말에 가세한 사람들이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들도 함께 예수님을 이렇게 희롱(조롱)했습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42-43절). 이 조롱 내용을 보면 그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모두다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십자가에서 죽지 말고 스스로 구원하든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탄은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이(3:17)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셨고 질고를 당하게 하시사(사53:10) 결국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소리(마27:46)조차 외면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딤전2: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했습니다(마27:44).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것을 대신 당하시되 치욕의 십자가를 지시고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