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다 도상의 예수님 (3)

 

 

 

 

[누가복음 2326-32]

 

 

 

골고다 도상에 있었던 첫 번째 있었던 일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일입니다(눅23:26). 두 번째 있었던 일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뒤따라 간 일입니다(27절). 세 번째 있었던 일은 다른 두 행악자도 예수님과 함께 끌려간 일입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3장 32절을 보십시오: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여기서 “두 행악자”란 말씀이 요한복음에는 “두 사람”(요19:18)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에는 “강도 둘”(마27:38) 또는 “강도들”(44절) 그리고 마가복음에서는 “두 강도”(막15: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강도가 받을 형벌은 십자가형뿐 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강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를 향하여 간 것을 보면 그들을 흉악한 강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과연 이 두 강도들이 예수님을 따라갔던 것이 예수님에게 도움이나 유익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지가 4일이나 되어 냄새가 났던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요11:41-44) 그 이적을 본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를 위로하러 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45절). 그러나 예수님의 이적을 본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습니다(46절). 그 결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아 말했고(47-48절), 그 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했으며(49-52절), 결국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53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많은 군중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기도 하고 나무 가지를 꺾어 길에 깔기도 하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마21:7-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을 때 온 성이 소동하여 “이는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10절). 그러자 군중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고 대답하였습니다(11절). 여기서 “선지자”란 모세와 같은 선지자[(신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로서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다렸던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 후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을 고쳐 주셨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님께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소?”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마21:14-16,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시편 8편 2절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16). 결국 대제사장들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11절)는 말대로 예수님을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가 말한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에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요11:53,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고소를 했고(눅23:2, 현대인의 성경),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3번이나 말하고(4, 14, 22절) 예수님을 놓아 주고자 노력했지만(20절)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무리들이 큰 소리로 빌라도를 재촉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므로 그들의 소리가 이겼습니다(23절).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대로 할 것은 선언하였으므로 그들이 요구한대로 예수님을 넘겨주어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했습니다(24-2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대제사장들은 다른 두 행악자들[흉악한 두 강도들(마27:38, 44; 막15:27)]을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로 가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암암리에 예수가 저 두 흉악한 강도들과 같은 사람임을 군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의 계획이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마태복음 27장 38-42절을 보면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이사야 53장 12절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두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사형수 범죄자 중에 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으신 것입니다. 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이방인 로마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3번이나 말했는데) 흉악한 강도와 같은 사형수 범죄자로 취급을 받으신 것입니까? 바로 우리 같은 흉악한 강도와 같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형수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 찬양 경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주님께 헌신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해야 합니다.

 

(1절)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우리의 죄를 속하시려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어린 양 보혈을 흘렸네

(2절) 죄악은 성난 파도같이 우리 영혼을 위협하나

헤아릴 수 없는 주 은혜 십자가에서 보이셨네

(3절) 죄악에 물든 영혼들을 주께서 피로 씻으시네

지금도 흐르는 그 피에 눈보다 더 희게 씻으라

(4절) 비할 수 없는 그 은혜를 믿는 자에게 거저주제

형제여 주 앞에 나와서 더 지체 말고 곧 받으라

(후렴)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주의 은혜 우리의 죄를 다 씻었네.

 

[새 찬송가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