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고다 도상의 예수님 (1)

 

 

 

[누가복음 2326-32]

 

 

누가복음 23장 2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올라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게 하였다”]. 마가복음 15장 21-22절 말씀입니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여기서 “골고다”(마27:33; 막15:22; 요19:17)란 곳은 예수님께서 재판받으신 곳에서부터 한 700미터 거리였다고 합니다. 그곳을 “해골의 곳”(마27:33; 막15:22) 또는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요19:17)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곳이 위해서 보기에 해골 같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판에서 사형선도를 받으셨기에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시기 위해서 골고다로 가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시는 길에 한 3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1)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대신 지고 간 일(눅23:26)과 (2) 백성과 여자들이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을 때(27절) 예수님께서는 돌이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신 일(28-31절)과 (3)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님과 함께 끌려간 일입니다(32절).

 

오늘 본문 누가복음 23장 26절에서 “그들이”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 (로마군인들)을 가리켜며, “예수를 끌고 갈 때에 ... 십자가를 지워 ...”란 말씀은 그 당시 사형수가 직접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고 합니다(박윤선). 그런데 로마 군인들이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여기서 “시몬”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이며 그 당시 “시몬”이란 이름은 좋기에 많은 사람들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열두 사도의 이름을 보면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가나나인 시몬”이 있었습니다(마10:2, 4). 이렇게 “시몬”이란 이름이 많았기에 구별해 주기 위해서 “시몬”이름 앞에 지명이 있었습니다[예: “가나나인 시몬”(4절). 여기서 “가나나인”이란 그 “시몬”이란 사람의 지명임].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란 말씀(눅23:26)에서 “구레네”는 시몬이 살던 지방 이름인데 이 “구레네”란 지방은 애굽 남쪽에 있는 나라인 리비아의 수도 이름이었습니다[(행2:10) “…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 …”]. “구레네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로서 현재 리비아의 트리폴리(tripoli)를 말합니다(박윤선). 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 리비아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까지 약 270-280km 먼 거리를 온 것입니다(약 1달 걸렸을 것임). 그런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23장 26절을 보면 로마 군인들이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보면 “붙들어”라고 쓰여 있지 않고 “억지로”라고 쓰여 있습니다: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로마 군인들이 그를 잡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기에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입니다. 여기서 던지는 질문은 ‘과연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 형장까지 억지로 지고 간 것이 예수님에게 도움이 되었을까요?’입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시몬이 억지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기에 예수님에게 도움이 되었고 그 결과 그와 그의 가정이 축복을 받아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교회에 귀히 쓰임을 받았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좀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시몬이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것은 예수님에게 도움이 된 것아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이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시는 일이 없기 때문이요 또한 예수님은 속죄성업에 수고는 오직 그가 홀로 하실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은 죄인이므로 이에 공로를 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도와드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못 박는 무리들의 일을 억지로 돕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억지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억지로 하다가는 잘못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즐겁게,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길 원하십니다. 출애굽기 35장 21, 29절 말씀입니다: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또한 출애굽기 36장 3, 5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왔으므로 …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는 즐거운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기로 다짐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