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을 받으시는 예수님 (2)
[요한복음 19장 13-16절]
재판장은 “빌라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3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재판석에 앉아 있는 재판장 빌라도는 로마 총독으로서 유대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장으로서 가능하면 예수님을 재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이유는 4가지였습니다: (1) 첫째 이유는, 빌라도가 볼 때에 예수님은 로마인의 법대로 십자가에 처형해야 할 정도로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들은 그들의 고발 내용입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눅23:1-2). 빌라도의 답변입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4절). (2) 둘째 이유는,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시기가 가득해서 예수님을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빌라도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겨 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 셋째 이유는, 빌라도는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당신은 그 죄 없는 사람(예수님)에게 상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7장 19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 이런 말을 전했다. '당신은 그 죄 없는 사람에게 상관하지 마세요. 지난 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 (4) 넷째 이유는,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것이 두려운 일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9장 7-8절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이방인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입장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자기에게 고발한 이유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두려워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0-11절 말씀입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빌라도가 또 두려워했던 이유는 예수님께서 “위에서(하나님 아버지께서 빌라도에게 권한을)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이 재판을 취급하게 되면 자신이 죄인이 될 것이기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8장 36-3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그렇다. 네 말대로 나는 왕이다. ....” 빌라도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4가지 이유로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재판을 한 이유는 원고 측에서 강력하게 나왔기에 때문입니다.
원고는 가야바 대제사장 및 산헤드린 공회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섰던 이스라엘 최고의 종교 법정이었습니다(인터넷). 공회의 최고 의장은 대제사장으로 요셉 가야바였고 그 권세는 막강했습니다. 그 구성원은 다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마16:21). 재판장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힘썼던 반면에(요19:12) 원고인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0절 말씀입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원고인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말로서(49절) “한 사람”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이고 “백성을 위해서 죽어서”란 가야바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말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겉으로는 가야바는 예수님이 죽어서 온 유대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대인들에게 유익한데 그들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의미는 요한복음 11장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이 있는 장으로서 그 기적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기에(45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만일 그(예수님)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그 당시 유대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던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고 말한 것입니다(48절). 그러나 원고인 대제사장 가야바의 마음속에는 “한 사람”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53절 말씀입니다: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현대인의 성경)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원고 측에서는 예수님을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모의를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 61-64절 말씀입니다: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예수님께서는 거짓 증인들의 거짓 증거에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 하셨습니다(61절). 그러자 대제사장 가야바가 다시 예수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현대인의 성경)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61절).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렇다. 내가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은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62절, 현대인의 성경). 그 예수님을 대답을 들은 대제사장 가야바는 자기 옷을 찢으며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했을 때(64절) “그들은 모두 예수님이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64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예수님을 정죄한 원고 측 대제사장과 가야바와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돌로 쳐 죽여야 했는데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나무에 달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였기에(신21:23; 갈3:13) 그렇게 선전하고자 했습니다.
피고는 예수 그리스도이었습니다. 피고이셨던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셨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지만 시험에 빠지지 않으시고 이기셔서 죄가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에도 비록 죄 있는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셨기에(마1:18, 20) 죄가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로마 총독 빌라도도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3번이나 말했던 것입니다(요18:38; 19:4, 6). 피고이셨던 예수님은 죄가 있으셨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이 시험에 져서 죄가 있으셨다는 말이 아니라 죄는 없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옮기셨기에 예수님은 죄가 있으셨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53장 6절 말씀입니다: “…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리스도에게 우리 죄를 대신 지우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의롭다는 인정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피고로 재판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고인 대제사장 가야바나 재판장인 로마 총독 빌라도나 어떤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 예언을 이루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마태복음 20장 18-19절 말씀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과 예수님께서도 예언하신대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시고 또한 이방인들인 로마 총독 빌라도와 군인들에게 넘겨주어 예수님을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재판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현대인의 성경) “유월절 전날”]이었고 재판 시간은 “제육시”[(현대인의 성경) “정오쯤”]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4절 말씀입니다: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 비록 이 사실에 대하여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공관복음)의 기록은 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반영하여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성경 무오성을 믿음으로 전제(presupposition)하는 자들이기에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를 기도하며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실 때까지 겸손히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은 그 자체가 완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12:6),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시19:7),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잠 30:5). 성경의 순전함과 완전함에 대한 이 구절들의 주장은 절대적인 진술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책의 저자이신 성령 하나님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영감의 과정을 통해 인간 저자들을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벧후 1:21; 렘 1:2 참조)(인터넷).
재판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한 것입니다. 재판석에 앉아 있는 재판장 로마 총독 빌라도가 원고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19:14)라고 말하니까 “그들은 큰 소리로 '죽여 버리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며 외쳤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빌라도가 그들에게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란 말이오?” 하자 대제사장들이 “로마 황제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 복음(the original gospel)[구약성경 최초의 메시아적 예언]인 창세기 3장 15절 말씀의 성취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요셉과 약혼했지만 아직 결혼 전이었던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시사(마1:18) 낳은바 되신(25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사탄이 자기의 후손(예: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유대인 지도자들)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대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의 모든 죄를 죄 없으신 예수님에게 옮기셔서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