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칭의론 (6)
[로마서 3장 21-26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7가지 소주제 중 첫 번째인 “칭의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미 4번 묵상을 했고,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두 번째 소주제인 “칭의의 주체”에 대해서 묵상했는데 오늘도 계속해서 “칭의의 주체”에 대해서 좀 더 묵상하고자 합니다.
칭의의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해서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니까 자기의 의를 세워가지고 면해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10장 3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한 예로 우리는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한 바리새인을 누가복음 18장 11-12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세우려고 이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랍비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많은 세세한 범죄까지 구분한 39종의 주요 행동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핸드릭슨). 예를 들어,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안식일에 대한 세칙을 이리 많이 만들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렇게 십계명 중 제4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랍비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세세한 부분에까지 이렇게 구분을 했는데 여기에 보면 39종이나 주요 행동에 대해서 목록을 작성해 가지고 그들이 지켜 나아갔습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가지고 먹었는데 여기서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은 안식일에 수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범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타작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어기고 타작을 범한 것입니다. 또 알곡을 먹는 것은 탈곡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범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먹은 것은 안식일에 음식을 준비하는 말라는 것을 범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은 세칙을 만들어서 지키므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10절 말씀입니다: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베데스다라 하는 못 가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병든 자가 병이 더 심해지면 안식일에도 고침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시므로 그의 병이 나아졌는데 이것은 그들의 보기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8년된 병자가 병이 나아가지고 자기 자리를 들고 걸어간 것은 유대인들이 보기엔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 의를 세워 가지고 자기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4장 6절 말씀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람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아서 이것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설 수도 없습니다. 사람의 의가지고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선행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5절 말씀입니다: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를 행하는 사람은 율법의 의를 행하기 위해서 열심으로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빌3:6). 그는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무리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설 수가 없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현대인의 성경) “누구든지 율법을 다 지키다가도 그 중에 하나를 어기면 율법 전부를 범한 것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는 것은 율법을 열심으로 지켰지만 다 지킨 것은 아닙니다. 그는 십계명 중 10번째 계명을 범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 말씀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그는 탐심의 죄를 범했습니다. 로마서 7장 7-8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탐심의 죄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는 우리는 마음으로 간음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지켜므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로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헬라어 성경에는 “이제는” 이전에 “그러나”가 있습니다. 즉, “그러나 이제는 …”입니다. 다시 말하면, 로마서 1장 18절에서 3장 20절까지 이렇게 범죄로 인해서 칭의가 필요한데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칭의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율법 외에, 즉 이 율법과 관계없는 하나님의 한 의로만이 칭의를 얻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의(사람의 선행)나 율법의 의나 칭의에는 아무 도움이나 보냄이 되지 않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 성경에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하나님의 의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