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칭의론 (8)

 

 

 

[로마서 3장 19-26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7가지 소주제 중 첫 번째인 “칭의의필요성”에 대해서 이미 4번 묵상을 했고, 두 번째 소주제인 “칭의의 주체”에 대해서도 묵상하고 있습니다.  칭의의 주체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십니다.

 

로마서 3장 19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말하는 바는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즉,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이러한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들은 거짓말하는 사람들로서 천국에 못 들어 갑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1절)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 ….”  이들은 오히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임.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8절).  이 목록을 보면 마지막에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을 보면 거기에도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 성 밖”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21:8)인 지옥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2:15).  이들은 칭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칭의를 주셔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구원을 받을 수가 있음).

 

로마서 3장 20-2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율법의 행위(율법을 지킴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20절).  여기서 “이제는”(21절)라는 단어는 3중으로 강세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이 단어가 문장의 제일 앞에 나오는 것은 강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이 단어가 원어인 헬라어로는 ‘Nuni’(Nun이 아니라)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강세를 더하기 위해서입니다.  (3) 한국 성경에는 “이제는”이지만 원어인 헬라어는 직역하면 “그러나 이제는”입니다.  여기서 “그러나”는 강세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비유로 설명한 것을 보면 큰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는 “이제”이며 또한 캄캄한 어둠 끝에 밝음에 이른 “이제”이며,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제”입니다.  “이제”야 말로 큰 기쁨의 폭발이요 큰 감사의 연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제는”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기쁜 가운데서 목소리를 힘을 다하여 큰 소리로 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다 죄로 인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유황 불 못에 들어가야만 했었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칭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나 감사와 큰 기쁨을 가지고 큰 소리로 “이제는”이라고 외쳐야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21절).  왜 “율법 외에”인가 하면 “율법의 행위로는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20절).  즉, 율법은 칭의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칭의를 받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1절에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율법과 선지자들”은 구약 성경을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약을 폐하려 오신 게 아니라 온전히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도 칭의를 얻음에 있어서는 신약과 동일합니다.  구약에서 구원을 얻고 칭의를 얻는 것과 신약에서 구원을 얻고 칭의를 얻는 것은 동일합니다.  즉, 천국 가는 길은 구약과 신약과 동일합니다.

 

로마서 3장 22-24절 말씀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마암”는 것입니다(22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칭의의 근거가 되시고, “믿음”은 칭의를 얻는 방법 또는 수단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23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미 로마서 1장 18-20절까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한 것에 대해 말씀했는데 여기서 칭의를 말씀하시면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라고 또 죄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러한 죄인인데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칭의를 주시사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는 칭의의 근거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란 칭의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 은혜를 받아 가지고 칭의를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 바울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 말씀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3:24)고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값없이 의롭다하셨음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값없이 칭의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 값을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로마서 3장 25-26절 말씀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죄값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첫 사람이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창2:17)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그 열매를 먹었습니다(3:6).  그 죄값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2:17)였습니다.  즉, 범죄한 아담은 영적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구약의 사람들도 아담으로부터 죄를 범하였으므로 죄의 값인 합당한 벌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습니다(롬3:25).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없는 것과 같이 여기사 그들의 죄를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니시요 의로우신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신 이유는 하나님은 자신이 의로우심을 나타내시려고 한 것입니다(25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고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셨습니다(26절).  즉,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구약의 모든 사람들의 죄도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칭의의 근원이 되십니다.  아무도 의롭다 할 수가 없습니다.  율법도 칭의를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칭의를 하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 말씀입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의롭다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칭의) 하셨기에 우리가 구원을 얻었고 천국에 가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