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잉태된 아기 예수님
[마태복음 1:18-20]
폴 트립 목사님은 “경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라는 제목 아래의 글에서 우리 부모가 자녀들로 하여금 진짜 그리스도 강림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5가지 방법을 말했습니다. 그 5가지 중에 4번째 방법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선물 중의 선물, 예수님을 선물하라. 선물을 주고 사랑을 표현하라. 다만 아이들에게 피조물은 만족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오직 한 선물, 곧 예수님의 성육신과 임재와 일과 은혜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라. … 예수님의 은혜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선물보다 더 밝게 빛난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 빛은 절대 꺼지지 않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트립).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18절과 20절을 보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결혼하기 전(현대인의 성경)]에 성령님으로 잉태된 것[성령님으로 임신한 것(현대인의 성경)]이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즉, 처녀 마리아가 임신을 했는데 “그녀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로마서 4장 1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그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00세가 되어 그의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상황(19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인 “네(아브라함의)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아기를 낳을 수가 없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18절). 그는 하나님께서 약 25전인 그의 나이 75세 때 주신 말씀인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창15:5)라고 하신 약속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롬4:21,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18-20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결혼(동거)도 하기 전인데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의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요? (물론 지금이야 남녀가 동거도 하지 않고도 여자로 하여금 임신하게 만들 수 있지만서두요). 더 놀라운 것은 약혼녀 마리아가 동거도 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임신)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의로운 사람인 약혼자 요셉은 마리아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남몰래 파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가(19절, 현대인의 성경) 꿈에 주님의 천사가 자기에게 “다윗의 후손 요셉아,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라. 그녀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다”(20절, 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이 말씀은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요?
또한 주님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22-23절)고 말씀했을 때 과연 요셉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사야 7장 14절을 인용한 말씀이었는데 과연 요셉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한 이 일을 아브라함처럼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롬4:20,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을까요?(20-21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요셉도 아브라함처럼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마태복음 1장 24-25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이 말씀을 보면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자신의 약혼녀인 마리아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남몰래 파혼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요셉(19절, 현대인의 성경)이 꿈에서 들려주신 주님의 천사의 말씀을 받은 후 그 말씀을 믿었기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님의 천사의 분부대로 행한 것입니다(24절). 요셉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 처녀 마리아가 약혼자 요셉과 동거도 하기 전에 임신한 것은 성령님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20절, 현대인의 성경)을 믿었기에 주님의 천사의 분부대로 행하여 약혼녀 마리아를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였고(24절) 또한 마리아가 아들(아기 예수님)을 낳을 때까지 그녀와 동침(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25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18절과 20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님으로 잉태되었다(임신했다)’는 말씀에 관심이 생겨서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했을 때 저는 우리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도저히 불가능한 성령님의 3가지 놀라운 일(역사)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도저히 불가능한 성령님의 놀라운 일(역사)은 성령님께서는 이미(과거)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첫째 부활)는 것입니다(중생).
에베소서 2장 1절 말씀입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말한다면, 우리는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을 보면 성경은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3가지를 의미합니다: (1)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된 '영적인 죽음'과 (2) 몸과 영혼이 분리가 될 '육체적인 죽음'과 (3) 하나님과 영원하고 완전하게 분리되어 영원한 사망에 처하게 되는 '영원한 죽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의 상태로서 우리는 이미 사망 진단서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으로 이미 죽었던 사람들이요, 육체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요, 또한 하나님과 영원하고 완전하게 분리되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살리셨다고 성경 에베소서 2장 1절과 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죽었고 육체적인 죽음을 맞이할 것이며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인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몸과 영혼을 다 죽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죽었던 우리의 영을 다시 살리셨음. 즉, 성령님이 우리를 중생케/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안토니 후크마라는 신학자는 “중생의 본질”에 대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인터넷): (1) “중생은 매우 신비스럽다. 첫째로 그 정의가 보여주듯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이기 때문이다.” (2) “중생은 갑작스런 변화이다: 점진적인 성화처럼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다. 영적 죽음에서 영적 생명으로 변화라면 어찌 점진적일 수가 있겠는가?” (3) “중생은 전적으로 초자연적 역사이다. 동시에 이것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맞고, 놀랍고, 비밀스럽고 표현될 수 없는 일로서 그 능력에서는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창조사역이나 부활보다 결코 뒤떨어지거나 열등하지 않다.” (4) “중생은 새로운 영적 생명의 ‘이식’을 의미한다. … 인간은 본성상 영적으로 죽었다.(엡 2:1,5; 골 2:13; 롬 8:7,8). 죽은 죄인들이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께 대한 저항이 없어지며 하나님을 향한 미움이 사랑으로 변화되는 것은 바로 중생의 순간이다. 중생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은 피상적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이다.” (5) “중생은 한 인격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변화이다. … 중생은 새로운 마음을 부여받는 것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한 인격의 중심부이며, 모든 내적 기능의 중앙으로 정신적, 영적 경험들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즉 생각, 느낌, 의지, 믿는 일, 기도하는 일, 찬양하는 일 등이 결국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온다. 중생 시에 새롭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원천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죄 된 성향성들이 제거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중생한 사람은 새로운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것은 아니다.”
제가 제 조카 선교사님이 갑작스럽게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러한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생사에 갈림길에 놓여 있는 사랑하는 식구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기적을 구합니다. 그 기적이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하는 식구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기적 중에 기적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보다(요11장),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전적인 은혜로 중생(reborn, regeneration)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첫째 부활). 이것이야 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이미(Already)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직(Not-yet) 경험하지 못한 기적 중의 기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재림) 주님 안에서 잠든 자들(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서(둘째 부활)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이러한 기적 중의 기적을 우리가 앞으로 경험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아기 예수님께서 성령님으로 잉태되셨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둘째로 도저히 불가능한 성령님의 놀라운 일(역사)은 지금(현재) 성령님께서는 허물과 죄가 많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사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성화).
이미 허물과 죄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신 성령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성화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여기서 성화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 35문입니다: “성도의 성화가 무엇입니까? 답: “성도의 성화는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의 역사로 이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인격이 새로워지게 되고 점점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성화(聖化)는 하나님의 칭의(稱義)와 양자(養子) 삼으심 뒤에 오는 하나님의 은혜다. 성화는 사람의 어떤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성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화는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이 응답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간다.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하신다”(빌2:12) (인터넷). 여기서 “구원”이란 영생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당신들의 영원한 생명을 이루십시오’(당신들은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들 답게 사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 있는 자(천국백성)들 답게 사는 것은 바로 천국의 계명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하나님 사랑 & 이웃 사랑하라는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마22:37-39). 이것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십니다(빌2:13).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욕도 주시고, 또 그것을 행할 힘도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시사(갈5:22-23)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시며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드십니다. “성도의 성화는 점진적이다. 성화는 칭의나 양자처럼 순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이라기보다는 성도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야 되는 영적 작업이다. 현세에서는 누구도 성화가 완성 될 수 없다. 그러나 성화는 성도의 마음속에서 계속되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도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죄와 끈임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인터넷). 요한일서 3장 3절 말씀입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장차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우리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으며 그 분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에(2-3절) 주님을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우리는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으로서 그 의미는 첫째로 다 지나가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대로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을 행하면서 사는 것입니다(2:15-17). 그 다음에 의를 행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중계명 중 두 번째 계명대로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요한일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2장 3-11절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인데 그 말씀을 요약한다면 형제를 사랑하고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계명의 순종하여 그 형제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습니다(5절). 그리고 그는 빛 가운데 거하여[“빛 가운데 살기 때문에” (현대인의 성경)] 자기 속에 거리낄 만한 것이 없습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마지막 셋째로 도저히 불가능한 성령님의 놀라운 일(역사)은 장차(미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성령님께서는 죽은 성도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요(둘째 부활) 그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영화).
사랑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된 저와 여러분은 이미 첫째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즉,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었던(엡2:1, 현대인의 성경) 우리를 성령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 중의 기적을 경험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재림) 주님 안에서 잠든 자들(죽은 자들)이 먼저 다시 살아날 것임. 이것이 바로 둘째 부활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5-1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는 자들도 이미 죽은 사람들보다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죽은 자의 부활은 고린도전서 15장 42-44절을 보면 첫째로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둘째로, 욕된 몸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셋째로, 약한 몸이 강한 몸으로 그리고 넷째로,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은 죽은 자의 부활할 몸을 가리켜 “장래 형체”(the body that will b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7절). 그리고 이 장래 형제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자의 형상”을 입을 것을 말씀합니다(49절). 빌립보서 3장 21절 말씀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의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살전4:17, 현대인의 성경).
성령의 놀라운 중생과 성화과 영화의 역사에 믿음으로 감사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12월 25일,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주일에 승리 목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