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섬기는 자들

 

 

[로마서 16장 21-23절 말씀 묵상]

 

 

수천만 달러를 버는 것과 그 돈을 모두 나누는 것이 인생 목표였던 폴 J. 마이어 박사, 그는 ‘베푸는 자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한 백만장자로서 "성공을 유산으로 남기 는 법: 백만장자의 인생 열쇠 25"란 책을 썼습니다(인터넷). 그 책을 보면 저자 폴 마이어 박사는 기독교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유산’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50여 년 동안의 믿음과 실천의 노하우가 집약된 이 책에서 유산은 우리가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계획하는 모든 것을 포함시킵니다. 그리고 그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고 가꿀 수 있는 유산 을 어떤 형태로 후대에게 남겨줄 것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결국 좋은 유산을 남기기 위한 유용한 방법론들을 삶을 살아가는 데 최대한의 가능성의 동기부여를 해 줄뿐만 아니라 영적 으로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지침서의 역활을 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섬기는 것은 좋은 비즈니스이다’라고 말하면서 섬김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7가지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제공하라, 둘째는, 보호하라, 셋째는, 존중하라, 넷째는, 신뢰하 라, 다섯째는, 방향을 제시하라, 여섯째는, 훈련시키라, 마지막 일곱째는, 제품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라. 저는 이 7가지 지침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한번 저희 교회 저와 함께 주님 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에게 적용해 보면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 첫째로, 나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군으로 세우도록 도와야 한다,
  • 둘째로, 나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을 영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 셋째로, 나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을 존중하므로 그들이 더 많은 자신감과 창의성을 가지고 헌신하도록 해야 한다,
  • 넷째로,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을 신뢰하기로 헌신해야 한다,
  • 다섯째로, 나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마음에 우리 교회의 목표와 비전을 심어 줘야한다,
  • 여섯째로, 나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을 신실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 일곱째로, 나는 교회 프로그램(program)보다 교회 사람들(people)을 먼저 생각 해야 한다.

 

저는 이렇게 한 7가지로 우리 교회에 적용을 해보면서 우리 교회가 과연 어떠한 교회가 되 야 하는지 또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온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겸손히 그리고 신실하게 섬기는 자들이 되므 로 말미암아 온 교회가 섬김의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1-23절을 보면 우리는 바울이 자기와 함께 고린도에 있 는 사람들로부터 로마의 교회에 보내는 문안 인사를 봅니다. 저는 이 사람들의 명단을 보 면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어떠한 자들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과연 우리 교회 공동체를 저와 함께 섬기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인지, 또는 어떠한 자들이 돼야 하는지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5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보았습니다:

 

첫째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나의 동역자”였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 지 난주일 저희 교회 부목사님의 고별 설교 가운데 디모데를 가리켜 바울의 영적 아들이란 말 을 저는 들었습니다. 그 말의 근거는 디모데전서 1장 2절과 디모데후서 1장 2절입니다. 그 구절들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딤전1:2) 또는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딤후1: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영적 아들을 가리 켜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3절에서 “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가리켜 나와 함께 일하는 자(co-worker)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과 함께 주님의 일을 하였던 영적 아들 디모데는 어떠한 사람이였습니까? 한 마디로, 그는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성경 디모데후서1장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 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그의 어머니인 “유니 게”와 그의 할머니인 “로이스”처럼 마음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입니까?  그 믿음은 신실한 믿음이요 위선이 없는 믿음이 며 가짜가 아닌 믿음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디모데”란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보배”입니 다(박윤선). 참으로 바울의 동역자인 디모데는 그의 이름답게 보배로운 믿음의 소유자였습 니다. 이러한 보배로운 믿음의 소유자과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 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희 교회 부목사님이였던 함 목사님을 생각할 때 디모데처럼 거 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믿음은 위선이 없는 신실한 믿음이라 생각 합니다. 그러기에 함 목사님과 함께 주님의 몸 된 승리공동체를 약 5년간 섬겼던 것을 저 는 하나님의 축복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함 목사님이 떠난바 저는 이러한 거짓이 없는 믿음의 동역자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보내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할 뿐만 아 니라 저는 우리 교회 한국어사역이나 영어사역이나 히스패닉 사역 모든 지도자들이 디모데 처럼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들로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몸 된 승 리장로교회 동역자들이 교회를 섬길 때 섬김을 받는 성도님들도 거짓이 없는 믿음의 소유자 들로 주님께서 세워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 그 의 외할머니인 로이스로부터 그의 어머니인 유니게, 그리고 이렇게 디모데에게 전달된 것처럼 온 교회 식구들의 거짓이 없는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자녀와 자녀의 자녀들에게 계속 전 달되는 축복이 있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나의 친척”였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 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사람들 중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의 동역자 디모데 외에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를 가리켜 “나의 친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나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 리킵니까? “나의 친척”하면 저와 여러분은 가족 친척 식구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친척”이란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주 석가들이 바울의 동포인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바울의 동포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 누기오는 확실히 누구를 가르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 행전을 쓴 저자 누가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도행전 13장1-3절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선 지자요 교사였던 “루기오”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야손”과 “소 시바더”란 사람은 누구인지 좀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야손”이란 사람은 데살로니가의 첫 회심 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사도행전 17장 5-10절을 보면 바울을 자기의 집에 초대하여 그를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소시바더”란 사람은 사도행전 20장4-6절 을 보면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소시바더”의 짧은 형식)로서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 경을 상고하는 자였습니다(행17:11). 이 두 사람은 서로 친구처럼 친했을 뿐만 아니라 바 울과도 친구처럼 매우 친했던 사람들이였습니다(맥아더).

 

저는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동역자의 관계는 주님 안에서 서로 신뢰하는 친구 관계 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서로에게 신뢰하기로 헌신하면서 주님 안에서 친구로서 우정을 쌓아가는 그러한 동역자와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싶습니다. 서로의 마 음 문을 열고 집으로만 서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상대방을 초대하여 주님 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싶습 니다. 그리할 때 진정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다’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동 역자의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같은 동포, 즉 같은 한국사람, 미국 사람이 아닐지 라도 문화와 언어를 초월하여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아는 그러한 동역자와의 관계를 추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히스패닉 사역에 고메즈 목사님 과 저와의 관계를 이렇게 세워주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믿고 주님 안에서 친구로서 함께 승리공동체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 렇게 만들어 주신 계기 중 하나가 아마 몇 년 전에 고메즈 목사님 부부가 집에서 쫓겨나셨 을 때 저희 집에서 한 3개월 계시면서 그러한 마음을 들게 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승리공동체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한국어 사역에 있는 분들이나 영 어사역에 있는 우리 자녀들이나 히스패닉 사역에 있는 사람들, 우리 모두다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때에 한 가족 식구들처럼 섬 겨야 합니다. 혹여나 아직도 여러분 중에 승리교회는 가족 교회라고 말하면서 담임목사인 저와 저의 친척들의 교회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여러분은 그것을 뛰어 넘어 야 합니다.   여러분은 베뢰아 사람 소시바더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이 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말미암아 말씀 중심적인 관점을 가지고 우리 승리공동체를 바라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함께 저와 섬기는 육신의 가정, 친척의 존재 목적도 주님의 몸 된 교회이다 라는 사실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온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한 식구로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나의 비서”였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2절을 보십시오: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 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 구절을 보면 우리는 여태껏 로마서는 바울이 쓴 것으로 알 고 있었는데 더디오라는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더디오란 사람은 바울이 입으로 말한 것을 받아 쓴 사람일 뿐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더디오라는 사람은 사도 바울의 비서(sectary) 또는 대필자(amanuensis) 였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 22절에 와서는 자기 스스로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 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마치 로마서 16장 1절에 나오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었던 자매 뵈뵈가 바울의 이 로마서 편지를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특권을 가졌던 것 처럼 더디오는 로마서 편지를 바울 대신 대필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2절에 나오는 바울의 비서 또는 대필자 더디오는 특 권을 누린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 하여 쓰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로마서를 대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디오는 하나님의 말씀인 로마서를 대필하는데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기에 이것 은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만일 저와 여러분이 바 울 시대 때 태어나 바울의 비서(대필자)가 되어서 바울의 편지 중 하나를 대필했다면 여러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마 저 같으면 바울의 말을 받아쓰면서 은혜를 받지 않았을 까 생각합니다. 특히 로마서에서 바울은 복음이란 주제 아래 말을 하였는데 그 말을 받아 쓰면서 내 자신이 은혜를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체엄하지 않았을까 생각합 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바울의 비서(대필자)로 사용해 주시사 로마서 편지를 다 쓰게 하시고 그리고 그 로마서 편지를 통하여 많은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 도의 복음이 전달된다고 생각할 때 감사와 감격이 충만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래서 인지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글로 써서 교회 홈페이지나 제 개인 홈 페이지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말씀 묵상들은 이 메일로 여러 사람들하고 나누 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쓰는 말씀 묵상의 글들은 참 많이 부족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깨 닫게 해주시는 말씀을 묵상하며 적어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 나눌 때에 오는 기쁨과 감사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개인적으로 저와 함께 사역하는 동역자들이나 교회 지도자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받은 은혜를 글로나마 적어 나누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꼭 해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글이라는 것이 에스더서를 볼 때에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저 는 웬만하면 말씀 묵상한 것을 글로나마 써서 다른 이들과 나누는 것을 권면해 드리고 싶습 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성령 하나님의 비서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넷째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나의 식주인”였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   여기서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식주인 가이오”란 인물은 바울 뿐 만 아니라 온 교회를 접대한 사람으로써 아마도 그의 집에서 교회가 모인 것 같습니다 (MacArthur). 그리고 가이오란 사람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사역을 할 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 중 한 사람으로 학 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고전1:14) (MacArthur). 또한 가이오는 회당 옆 집에 살고 있었 던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고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행18:7). 그렇게 되 면 그의 전체 이름은 가이오 디도 유스도가 될 것입니다(MacArthur).

 

저는 이 식주인 가이오를 생각할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자들 중 남을 대 접을 잘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과 집을 열어 사람들 을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는 봉사와 섬김의 은사를 받은 일군들이 교회 안에 필요하다는 것입 니다. 결코 교회란 공동체 안에는 요한삼서 9절에 나오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이 있 으면 아니 됩니다. 디오드레베는 교회 안에서 으뜸 되기를 좋아한 사람이었고 또한 형제들 을 접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 쫓아냈습니다 (9, 10절). 이러한 자가 교회 안에 있으면 우리는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손님 대접하기를 즐거워하는 귀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 면(롬12:13) 우리는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의 영광을 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로,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던 자들은 ‘내가 있는 시의 재무”였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여기서 “에라스도”란 인물은 고린도 성의 재무, 즉 고린도 시의 회계를 담당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고린도 시의 중요하고 높 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였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시에서 중요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이 바울과 함께 주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는 사도행전 13장 1절에 나와 있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 중 에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누군가하면 분봉왕 헤롯의 젓동 생 마나엔이란 여인이었습니다. 이러한 귀족이 이방인 안디옥 교회를 바울과 함께 섬긴 사 실을 생각할 때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6장 22절에서도 고린도 시의 중요하고 높은 지 위에 있었던 에라스도와 함께 주님을 섬긴 것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일군들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함께 섬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왠지 저는 이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주님을 섬긴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세상 적으로 지위가 높던 말던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자들로서 한 마음, 한 뜻으로 교회를 겸손하게 섬겨 나아간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섬김입니까?

 

여러분, 주님 안에서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위가 높고, 교육을 많이 받고, 유명하고 등등 이런 저런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여 말을 하지만 주님의 몸 된 교 회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 모두는 죄인 된 자들이 하나 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총을 받아 누리는 사람은 결 코 자기 자신을 내세우며 교만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 리는 예수님처럼 겸손히 교회를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할 때 다양한 일군들이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 나아갈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섬김일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함께 주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비록 우리 각자가 다른 은사뿐만 아니라 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또한 세상 적으로 볼 때 지위가 다를지라도 우리는 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 다. 또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동역자요 한 영적 가족 식구들로서 거짓이 없는 신실한 믿음으로 서로 대접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 암아 우리의 함께 섬김을 통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온전히 세워지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들과 함께 팀 사역하는 은혜를 누리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승리장로교회 목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