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

 

 

[로마서 14장 13-23절 말씀 묵상]

 

 

우리는 이미 로마서 14장 1-12절 말씀 중심으로 신앙의 성숙함을 추구하는 성도들 은 서로 받아야(용납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믿음이 연약한 성도 들을 받아야 하며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 또한 믿음이 강한 성도들을 받아야 한다고 우리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서로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3절). 우리가 서로 믿음의 성숙도도 다른데 어떻게 서로 받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서로의 다른 점들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 습니까? 한 세 가지로 우리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세 가지 교훈이란 (1) 첫째로, 우리 모두가 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2) 둘째로,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 여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3) 마지막 셋째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 각자 자신의 일(양심에 따라 행한 일들도 포함)을 다 하나님께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 자세로 서로의 다른 점들을 극복하여 서로 를 받아야(용납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받 아야(용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하나됨을 신실하게 잘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13-23절에 와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기 위해서 서로 섬길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오늘 본문 18절에 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저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서로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 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은 어떠한 것인지 세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은 형제 앞에 거치는 것을 두지 않도 록 주의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여기서 “주의하라”라는 단어는 ‘판단하라’라는 뜻입니다. 즉, 바울은 “우리는 다시는 서로 판단하 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서로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은 판단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 다 동일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늘 본문에 서 같은 단어를 하나는 부정적으로 또 다른 하나는 긍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정적 으로 사용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교회 안에서 믿음이 강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이 서로 의 양심의 확신을 존중하지 않고 잘못됐다는 식으로 판단하여 업신여기고 비난하며 무책임 하다는 식으로 판단하며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판단하지 말고 오히려 긍정 적으로 어떻게 하면 서로의 다른 점들을 극복하여 서로를 섬기고 세워주므로 교회의 하나됨 을 지켜 나아갈 수 있는지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결단을 내려 행동으로 옮길 것을 권면하고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바른 판단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른 판단력 속에서 우리가 알고 확신하는 것을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 예수 안 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 에게는 속되니라.” 그는 주 예수님 안에서 알고 확신했던 것은 아무 음식물도 속되지 않다 (더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음식물 자체는 깨끗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입니 다. 다만 자기 자신이 속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그 음식물이 속된 것입니다. 이 말 씀은 특히 로마 교회에 구약의 음식법을 좇아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적용 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있어서 일단 우상에게 재물로 바쳐졌다가 시장에 유 통된 고기는 속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가(9절) 배가 고파 있었을 때 비몽사몽간에(10절) 하늘이 열리고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 왔는데(11절) 거기에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 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 등이 있었고(12절) 소리가 있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 으라”고 했을 때(13절)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 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 하였삽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14절). 그 때 베드로에게 들려졌 던 두 번째 음성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 라”였습니다(15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 즉 베드로가 생각한 속되다 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이방인들이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집으로 인도해 주시사 결국 이렇게 고백케 만드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 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4-35절). 우리에게도 이러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 나님께서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모든 형제, 자매들을 깨끗케 하시사 주님의 몸된 교회 지체 로 받으셨는데 우리가 누구관대 깨끗하지 않다/속되다 라고 말하면서 그 형제, 자매들을 받 지 않고 업신여기며 판단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로서 서로 에게 징검다리(stepping stones)가 돼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서로에게 거치는 돌 (stumbling blocks)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에게 거치는 자 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결심하고 행동 으로 옮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형제, 자매를 다시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13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믿음이 강한 성도들은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을 업신여기며 비판해서는 않겠다고 결심해야 하며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성도 또한 고기를 먹는 믿음이 강한 자들을 무책하고 타락했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겠 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던 채소만 먹도 우리 각자가 주님을 위하여 하나 님께 감사하므로 고기나 채소를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만일 믿음이 강한 자가 주 님을 위하여 고기를 감사하므로 먹는다고 하여 채소만 먹는 믿음이 연약한 자 앞에서 고기 를 먹는다면 믿음이 연약한 자의 양심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이 강한 자의 입장에서 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고기를 먹어도 된다는 확신 속에서 자기 신앙의 자유를 누린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믿음이 연약한 자는 실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5절).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여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는 믿음이 연약한 자 앞에서 고기를 먹으면 그 믿음이 연약한 자의 양심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 까? 충분히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 한 자유는 서로의 유익을 고려하여 나의 자유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안된 자유, 서로를 배려하여 서로를 실족케 하지 않고자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제안하는 것이 참된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려야 하는 자유가 아닙니까? 이러한 자유를 가지고 우리가 서 로 힘써 사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거치는 자가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 니다. 이렇게 서로 형제, 자매에게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21절).

 

둘째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은 하나님의 나라 관점으로 교회를 섬깁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언젠가 저는 이사야 53장 6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는 그릇 행하였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 적이 있습니 다. 그 말씀 묵상에서 저는 그릇 행하는 원인을 한 세 가지로 생각했었는데 그 중에 첫 번 째가 바로 “그릇된 관점”이였습니다(그 다음 그릇된 가치관, 그릇된 생각). 그 그릇된 관점 이란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2절). 즉, 우리의 그릇된 관점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못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하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 불순종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불순종의 관점으로 순종을 바라볼 때 우리는 순종의 아름다 움을 보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로마서 14장에서 바울이 주시는 하 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고자 형제를 업신여기지 않고 비난하지 않으며 판단하지도 않고 오히려 서로 받으면(용납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움은 서로 사랑하므로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 나아가 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서로 실족케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21절을 보십시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믿음이 강한 성도 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고기도 먹고 포도주도 마시고 할 수 있겠지만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위하여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고기를 먹지 말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게 더 낫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형제들로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므로 믿음이 연약한 형제가 시험에 들고 실족케 된다면 과 연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는 일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아름답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것이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섬김은 하나님의 나라 관점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 를 섬기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섬김은 각자의 개인 양심의 자유대로 먹고 마시는 개인의 일을 추구하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업”을 추구하는 것입 니다(20절). 하나님의 사업을 우선순위에 두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되 우리는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고자 두 가지 일에 특별히 힘을 써야 합니다. 그 두 가지 일이란 화 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19절을 보십시오: “이러므 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내가 고기를 먹던 채소만 먹던 내 양심에 거리낌이 없을지라도 내가 고기를 믿음이 연약한 형제 앞에서 먹으므로 말미암아 또는 내가 믿음이 강한 형제 앞에서 채소만 먹으로 말미암아 서로의 신앙생활에 거치는 자 가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나의 행동으 로 말미암아 주님이 사랑하시는 형제를 세우지 못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화평을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각자 개인의 양심의 자유가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모 든 것을 감사하므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양심 자유가 중요합니다(16절)(박윤선). 그러 나 이 양심 자유조차 바울은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16절). 다시 말하면, 바울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기독교 양심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남용하므로 말 미암아 서로를 판단하므로 교회의 통일성과 질서를 깬다면 세상 사람들(비신자들)에게 비방 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비방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 자유를 서로의 유익과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는 선 안에 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각자의 양심 자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요 주님의 몸된 교회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먹고 마시는 문제로 교회의 질서가 어지럽혀져서 교회의 화평을 깨게 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 니까?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17절).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 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7절). 즉,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의 영역으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자들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곳입 니다(맥아더). 그 곳에는 먹고 마심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1) 첫째는 성령 안에서 “의”(righteousness)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거룩하며 순종하는 삶이 있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평강”(peace)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성령님께 서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평화가 있으면 또한 서로 형제, 자매들끼리의 관계에 서의 평화가 있습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희락”(joy)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는 성령님의 열매인 희락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습니 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 관점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를 섬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 양심의 자유 가운데 먹고 마시고 하는 모든 것들이 과연 우리 각자 개 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 전체 공동체에 거룩함을 들어내며 평강을 가지고 오 며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 관점을 가지고 교회의 거룩함과 평강과 기쁨(희락)을 생각하며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 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8절).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은 믿음으로 좇아 행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4장 23절을 보십시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 말씀은 어떤 식물에 대하여(예를 들어 고기) 신앙 양심으로 거리끼던 믿음이 연약한 자가 믿음이 강한 자가 먹는 것을 보고 두 판단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 다: ‘고기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먹어도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먹으면 안 되는 것 같기 도 하고.’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23절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의심하고” 먹는 것을 가 리킵니다.   이렇게 의심하고 고기를 먹는 믿음이 연약한 자는 믿음이 강한 자에게 끌리어 얼마쯤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믿으면서 먹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먹어도 되는지 의심하면서 먹으면 그것은 죄를 범함이 된다는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고 기를 먹어도 된다고 믿으면 믿던지, 반은 그렇게 믿고 반은 의심하면서 자기의 신앙 양심으 로 거리끼던 믿음이 강한 자를 좇아 고기를 먹으면 그것은 정죄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 것이 정죄가 되는 이유는 순수하고 참된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믿음이 강한 자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 하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또는 확신대로 행하면 됩니다. 즉, 예수 님 안에서 고기도 감사히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면 그 믿음을 좇아 고기를 먹으면 됩 니다(22절). 그것이 자기 양심에 거리낌을 주지 않을 정도로 옳다고 믿으면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디아포라의 문제에 관한 건에만 적용이 됩니다(박윤선). 만 일 믿음이 강한 자가 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아닌지 옳고 그름이 분명하지 않고 혼동 상태에 서 먹고 나서 자기를 책망한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만일 믿음이 강한 자가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믿다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믿는 믿음이 약한 자의 눈을 의식하여 자기 양심의 확신에 따라 행하지 않고 고기를 믿음으로 먹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23절).

 

우리는 믿음으로 좇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던지, 아니면 안 먹던지 안 마시던지 믿음으로 좇아 해야 합니다. 결코 의심하면서 먹여야 되나 안 먹어야 하나, 마셔야 하나 아니면 마시면 안 되는가 혼동 상태에서 우왕좌왕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던 채소를 먹던 주님을 위하여 감사하면서 믿음으로 먹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섬김은 믿음으로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 자유에 관한 일 들은 결코 의심을 좇아 행하지 말고 믿음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입니다. 섬기되 우리는 형제, 자매 앞에 거치는 것 을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우리가 알고 확신하는 것 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거치는 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관점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개인 양심의 자유대로 먹고 마시면서 개인의 일을 추구하기보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일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의 일인 화 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23절)는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섬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겸손히 그리고 신실하게 섬기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섬김을 추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