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십시다.
[로마서 13장 8-10절 말씀 묵상]
ㅂ여러분은 인간관계를 잘 하고 계십니까?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준 인간경영의 영원한 고전이 있습니다. 그 고전 책 이름은 바로 “카네기 인간관계론”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인간관계의 대가라 여겨지는 데일 카네기 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30개 인간 관계에 대한 명언 중 몇 가지를 오늘 여러분과 나누 길 원합니다(인터넷): (1) 진심으로 타인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세요, (2) 좋은 경청자가 돼보세요.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스스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를 만들 어 주세요, (3)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화제로 삼아보세요, (4) 조그만 발전에도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세요, (5) 상대방의 의견에 비판, 멸시, 불평을 하지 마세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미 알고 있는 말들이지만 실제로 삶속의 인간관계에서 적용하기가 어려 운 교훈들이 아닙니까?
저는 지난주 새벽기도회 때 사사기 8장과 9장을 이틀 연속 묵상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말씀 묵상에서 주신 교훈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온유함 또는 겸손함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저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자세가 중요함 을 배웠습니다(빌2:4). 저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므로 나의 공로보다 상대방의 공로를 더 높이 평가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 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므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접해 야 함을 배웠습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데로 상대방을 대접해야 함을 배 웠습니다. 문제는 이 배운 교훈을 삶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므로 우리는 예수 님의 계명인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바울은 피차 사랑, 즉 서로 사랑할 것을 로마 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예수님이 주신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7-39)는 두 계명 중 두 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에 대해서 로마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은 성경 누가복음 10 장 25-37절에서도 나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하는 한 율법사에게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고 물었을 때 그 율법사는 예수 님의 두 계명을 말하였습니다(27절). 그 때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 님께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절). 그 때 예수님의 말 씀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선한 사마이라인 이야기입니다(30-35절). 요약을 하자면 강도를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습니다 (31-32절). 그런데 오직 사마리아인만이 그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 느냐”(36절)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이 율법사의 대답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였습니다(37절). 이렇게 바로 대답하는 이 율법사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 라”(37절)였습니다.
우리는 가서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 가족 식구들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식구들 그리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랑 을 베풀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에게고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이웃은 물론 로마 교회 안에 유대인 성도들이 나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즉, 서로 사랑하는 말씀은 교회 안에 형제, 자매들 끼리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좀 더 넓게 생각하면, 지금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핍박하는 로마 정부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라는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가 말하고 있는 이웃 사랑은 원수 사랑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또한 우리에게 어떻게 서로 사랑하라 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한 2 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 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 우리는 이미 로마서 13장 1-7절에서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 즉 그들을 핍박하는 로마 정권에도 굴 복(복종)할 것은 권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바울은 복종하되 양심으로 인하여 하라고 권면하면서 로마 성도들에게 공세, 즉 나라에 세금을 바칠 것을 바치라고 권면한 것을 우리 는 묵상했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8절 상반절에 와서는 “피차 사 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로마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전혀 빚을 지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럼 학교 다닐 때 은행에 융자해 서 빚을 지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사업할 때 은행에서 융자해서 빚도 지지 말아야 하 고, 사업을 할 때도 은행이나 주위 사람들에게도 돈을 빌리지 말아야 합니까? 그런 뜻입니 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전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구약이나 신약 성경은 빚을 지는 것을 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출22:25 ; 레 25:35–37 ; 시 37:26 ; 마 5:42 ; 눅 6:35)(코트렐).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 는 것은 빚을 질지라도 약속한 대로 양심 것 다 갚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에 빚 을 졌으면 나라에 갚아야 합니다. 즉, 세금을 내야 할 것을 내지 않았으면 내라는 말입니 다. 그와 더불어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끼리 서로 빚을 졌으면 빛을 갚아야 합니다. 우 리가 살아가면서 빚을 지지 않고 살기는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재정난을 겪을 때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야 할 상황에 충분히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을 보면 학자금을 은행에서 융자할 수밖에 없을 수 있고 또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은행이던 친구도 심지어 교회 식구들에게도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것을 성경이 금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 출애굽기 22장2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 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무슨 말씀입니까? 신약시대 교회에 적용해 본다면 교회 안에서 좀 재정적으로 힘든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었다면 채주같이 빚 독촉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돈 을 빌려 주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돈을 빌린 사람에게는 뭐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빚을 갚으라는 것입니 다. 다시 말하면, 빚을 졌으면 계약한대로 실천에 옮기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은행에 돈을 빌려 빚을 졌다면 은행과 계약한대로 빚을 갚으라는 말입니다. 매달 매달 꼬 박 꼬박 내야하는 일정한 금액이 있을 때에 우리는 그 때 그 때 계약한 대로 은행에 갚아야 할 돈을 갚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 에 게 돈을 빌렸으면 한꺼번에 다 갚을 수 없을 때 돈을 빌려준 자하고 매달이던 일정한 액수 를 갚기로 계약이나 약속을 했으면 바울은 양심 것 그것을 실행에 나아가라고 권면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돈을 빌려주고 하면서 돈을 빌린 사람이 약속을 지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을 볼 때 제 개인적 생각은 오늘 본문 8절 말씀처럼 아예 아무 빚을 지지 않는 게 제일 좋 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 간에 관계도 돈으로 인하여 깨지지 않고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7절에 서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빚을 졌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예배자로서 양심 것 빚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8절의 핵심 내용은 아닙니다. 다만 그 핵 심 내용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고 있는 말씀일 뿐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무엇입니까? 그 것은 바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빚을 지는 것이요 이 사랑의 빚은 서로 지라’는 말씀입니 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사랑은 빚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모두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 사랑을 베풀어 주신 부모님께 우리는 사랑의 빚을 진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 부모님의 사랑의 빚을 다 갚았나요? 갚을 길이 없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사랑의 빚을 지되 우리는 영영히 그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빚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지금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로 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 1장에서 11장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로마서 12장 1절에서 권면하기 시작하여 오늘 본문에 와서는 모두다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진 자들로서 내부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유대인 성도나 이방인 성도나 할 것 없이 주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서 서로 사랑 의 빚을 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 에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아 가면 알아갈 수록 그 사랑을 갚을 길이 없어 수평적으 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지 않겠습니까? 사랑을 서로 베품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찬송가 414장 “주의 사랑 비칠 때에”의 가사처럼 우리가 주님 의 사랑 비췰 때 기쁨을 누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말세지말에 대한 징조 예언 의 말씀처럼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면서의 기쁨보다 우리는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말세지말의 예언의 말씀이지만서두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난 주 저희 교회가 소속돼 있는 노회 모임 폐회 예배 때 어느 한 교회의 담임 목 사님이 요한계시록 2장1-7절 말씀 중심으로 참석하신 모든 노회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 요점은 이것이였습니다: 우리의 “처음 사랑”(our first love)을 기억하고(Remember), 회개하며(Repentance) 그리고 회복(Rekindled)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느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에 감사, 감격하여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했던 그 순간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 때 그 순간 들처럼 다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첫 사랑을 회복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다기 주님을 향 한 사랑과 헌신과 열정 등등을 불타오르길 원하시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어디서 우리가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 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야 합니다(계2:5).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충만하여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빚을 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9절을 보십시오: “간 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우 리 교회가 금년을 맞이하여 “말씀 순종의 해”란 표어를 걸고 이렇게 약 3개월 왔습니다. 왜 “말씀을 순종의 해”란 표어를 걸었는가 하면 그 이유는 금년 표어 구절인 요한복음 14 장 21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금년 새해 우리 모두가 마음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했으면 하는 마음으 로 “말씀 순종의 해”라고 표어를 정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9절에서 성경은 마 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듯이 우리가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은 4개 입니다. 그 네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네 계명 모두 사람이 사람 에게 대한 계명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참으로 지킬 수 있는 계명입니다(박윤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우리가 이 하나님의 네 계명을 힘써 지켜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서로 사랑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들로서 서로 사랑함을 나타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는 간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죄를 범하겠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어떻게 간음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28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교회 안에서도 간음의 죄를 범할 수 있는 것이 남자가 여자를 보고 (또한 여자가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마음으로 간음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 우리는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로서 서로 사랑함에 있어서 살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계명도 우리에게 적용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어떻게 교회 안에서 상대방을 살 인하는 죄를 누가 범하겠습니까. 그러나 요한일서 3장15절을 보게 되면 우리는 충분히 서 로 살인죄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살인죄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살인하 지 말라”는 오늘 본문의 계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적용이 안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십니까?
- 우리는 도적질해서는 아니 됩니다.
성경 말라기 3장8절 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 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 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성경은 하나님의 것인 십의 일 을 하나님께 받치지 않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생각은 마치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 것이 도적질이라면 교인들끼리 서로 돈을 빌 린 다음에 갚지 않는 것도 도적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받치지 않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라고 말라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도적질을 해 놓고도 우리가 언제 도적질했냐는 식 으로 넘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은 삼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피지 못할 상황에서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에게 돈을 빌렸 으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만일 갚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도적질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우리는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계명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 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출20:17).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끼리 서로의 것을 탐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남이 소유한 것을 부러워해서 질시하므로 탐을 내서는 아니 됩니다. 상대방이 돈이 많다고 상대방의 돈을 탐내서도 안 되고 또한 상대방의 아내나 남 편이 예쁘고 잘생겼다고 하여 탐을 내서는 아니 됩니다. 결국 탐심이란 것이 간음죄도 범 하게 하고 살인죄도 범하게 하며 또한 도적질도 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탐심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들지 않도록 깨어 근신하며 기도하면서 하나님 의 거룩한 말씀으로 항상 우리 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또한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가 서로 사랑함에 있어 서 이 네 계명을 지켜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네 계명 외 에 우리가 서로 사랑함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이 더 있을지라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두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9절). 그 이유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예수님의 계명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이 모든 계명이 다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기 는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 동기로 형제, 자매들들 서로 사랑하는데 더욱더 헌신하여 힘쓸 수 있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므로 서로를 향한 사랑 을 나타내는데 힘쓰십시다. 그러므로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에 사 랑의 공동체로서 본이 되어 증인의 공동체로서도 쓰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우리 승리공동체 식구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는데 헌신할 수 있길 기원 합니다. 사랑의 빛 외에 아무 빚을 지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세우시는 승리공동체를 통하여 사랑의 향기를 이 사랑이 식어져 가는 세상에 들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승리장로교회,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데 헌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