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7절 말씀 묵상]
제가 제 아내하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대화를 피하는 주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될 수 있는 데로 저는 제 아내하고는 이 주제로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피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는 다름 아닌 “교회와 국가의 분리”(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입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란 말은 무슨 말입니까? 1947년 미국의 대법원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국가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가 국가적인 측면에서나 종 교적인 측면에서 최선이라는 믿음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존재의 경계를 표시했다”(인터넷).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로 통합된 미국인들은 1987년 앨러바머 학교의 재판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미국은 서로 다른 많은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이 섞여 있는 국가 를 이루고 있다. 종교에 대한 정부의 중립성은 종교생활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 해 필수적이다. 수정헌법의 조항은 이러한 중립성을 보장하고 정부가 특정한 종교를 편애하 지 않는다는 점을 보장해 준다”(인터넷). 이러한 재판에 관한 말이나 대법원 선포 내용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개혁 주의 전통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문제에 강하게 주장하지 않으며, 교회는 법인자격 으로 정치적인 분야에 참여하는 것에 삼가야 한다고 제안한 그레샴 메이첸으로부터 그 견해 를 지지 받는다”(인터넷). 동부 웨스트민스터에 교수님이셨던 고 메이첸 교수님은 “개개인 기독교인들은 국가 법률을 준수하지만 정치에 개개인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행위에서와 정치 에 참여하는 것과 공동체 교회 기구가 정치에 참여 하는 것 사이에 강한 구별이 있어야 한 다고 주장”하였습니다(인터넷).
우리 장로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신앙 고백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웨스 트민스터 신앙고백”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란 무엇입니까?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이란 1647년 영국 웨스트민스터에서 모인 신학 자와 목사들의 총회에서 승인된 신앙고백서로서, 스코틀랜드와 영국과 아일랜드에 있는 성 공회의 개혁을 위하여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장로주의에 입각하여 제 정, 채택한 신앙고백입니다(인터넷).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 23장을 보면 “국가의 위 정자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23-1을 보면 국가적 “권세의 원천과 목적”에 대해 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온 세계의 가장 높으신 주이시며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그 자 신의 영광과 공공의 유익을 위하여 자기 아래 백성들 위에 국가의 위정자들을 세우셨고, 이 목적으로, 선한 자들의 변호와 격려를 위해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의 형벌을 위해 칼의 권세로 그들을 무장시키셨다”(인터넷).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위에 있 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말씀은 만일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면 정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모든 정권은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1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 신바라.” 무슨 말씀입니까? 21세기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하나 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미국 정부에 순종해야 한다 는 말씀입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한국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 미국 정부에 순종해야 합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지금 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있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도 로마 정부에 복종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씀하고 있 는 것을 보면 우리도 비록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로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부에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되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 들에게 그들을 핍박하는 로마 정권에도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근거로 저는 로마서 12장 14절을 듭니다. 바울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 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로마에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자 기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이 내부적으로도 있을 수 있었겠지만 특히 외부적으로 로마 정부가 그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들을 핍박하 는 로마 정부에게도 복종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권 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1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권에 복종 하지 않고 거스른다면 하나님의 명을 거스른 것이요 하나님을 거스른 것은 “심판을 자취”하 는 것입니다(2절). 물론 이 말씀은 무조건 정권에 복종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 면, 정부가 부패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들을 제도화 하여 모든 시민들로 따르라 고 명할 때 우리는 그러한 명령에는 굴복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굴복하지도 말아야 합니 다. 그 한 예로 동성의 결혼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를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동성의 결혼을 나라의 법으로 만들게 된다면 그 법에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 까? 분명히 하나님의 법(말씀)에 어긋나는 나라 법인데 그 나라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에 복종하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 안에서 나라 법을 우리는 거스르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까? 바울은 그 대답을 오늘 본문 3절 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고 있습니다: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 게 칭찬을 받으리라”. 즉, 우리가 복종해야 할 정권은 그 원칙에 있어서 악을 방지하고 선 을 장려하기 위하여, 보복을 정당하게 실시하는 정권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저와 여 러분이 복종해야 할 정권은 공의를 행하는 정권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여 선행은 장려하 고 악행은 보응(심판)하는 정권을 우리는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 정부가 부패하여 공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정권에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일 정부가 부패하여 원칙이 없이 악을 장려하고 선을 방지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러한 정권을 믿고 복종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만일 정부가 원칙에 있어서 악을 방지하고 선을 장려하기 위 하여 보복을 정당하게 실시하는 정권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정권에는 복종해야 합니다. 복 종하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를 행하는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한 3 가지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을 두려워하며 존경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3절과 7절을 보십시오: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 려느냐 …”, “…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만일 우리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범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4 권세를 세우셨습니다: (1) 첫째로, 모든 시민을 위하여 정부를 세우셨고, (2) 둘째로, 모든 신자들을 우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3) 셋째로, 모든 자녀들을 위하여 부모님을 세웠으며, (4) 마지막 넷째로, 모든 종업원들을 위하여 주인들을 세우셨습니다(맥아더). 그런데 예를 들어 만일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아버님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분명히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할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하는 종업원이 사장님의 권위를 무시하면 사장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 지요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시민들이 나라에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공권력 을 무시하며 자기 마음대로 범죄 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 나라는 무질서하게 될 것입니 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너희가 악을 행하면 정권에 보응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 다(4절). 만일 우리가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죄 하면 “하나님의 사자” 즉 하나님께서 나라의 문화와 질서를 보전하시고자 세우신 정부의 관원들이 악을 행하는 우리에게 보응할 것입니다(4절)(맥아더).
우리가 나라 법을 어기면 벌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법을 어길 때 벌을 받아야 공권력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법을 어기면서 살아도 우리가 당연 히 받아야 벌을 받지 않으면 우리는 법을 어기는 것이 담대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 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을 두려워하며 존경하여 나라의 법을 지켜 나아가야 합 니다.
둘째로, 우리는 선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 게 칭찬을 받으리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에 복종하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그 원리는 한 마디로, 선을 행하면 칭찬이요 악을 행하면 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선상악벌”이라고 하고 유교에서는 “권선징악”[勸 : 권할 권, 善 : 착할 선, 懲 : 징계할 징, 惡 : 악할 악]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인터넷).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정권에 복종하려면 우리는 선을 행하기를 힘써야 합 니다. 선을 행하되 우리는 정권을 두려워해서 하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선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3절 하반절 말씀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2장 10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이유는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 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선을 행하기에 힘을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근데 요즘 교회를 보면 한 2 가지 극단주의로 흘러가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쪽으로 교회가 복 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회에 선행을 행하지 않는 것이요 다른 한 쪽으로는 사회에 선을 행 하기에 힘쓰면서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 저는 요즘 추 세는 두 번째라 생각합니다. 교회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선행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말과 삶으로 전파되고 있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전에는 제가 알기론 개신교인 교회보다 구교인 가톨릭에서 사 회에 선행을 많이 하는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고아원 사역도 많이 하고 빈민 구제나 이런 저런 사회에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교회는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선행을 잘 하지 못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 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 한 것 같습니까? 우리 개신교도 사회에 참여하여 이런 저런 선행 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왠제 제 생각으로는 복음의 맛이라 할까요 잊어버 리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의 합당 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사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로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행하므로 교회도 사회와 나라에 기여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양심을 인하여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3장 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 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바울은 우리가 국가의 명령 을 순종하는 동기가 정권 잡은 자들의 노를 면하려는 데만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양심에 그 것이 옳은 줄 알고 진실히 실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 한 예로 우리는 옳은 줄 알고 진실히 실행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입니다. 6-7절을 보 십시오: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 정권에 복종하 되 양심에 세금을 내는 게 옳은 줄 알고 진실히 실행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오래 전에 김동길 연세대 명예 교수님이 여기 엘에이 오셔서 어느 집회인지 아니면 라디오 방송에서인지 한 말이 기억납니다. 그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나라에 세금을 좀 바치라는 면책의 말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나라에 세금도 내지 않는 게 뭡니 까 라는 식으로 말하였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는 게 시민의 책임이 아닙니까? 어떻게 해서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하면서 우리는 나라에 해택을 누리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 까? 어떻습니까? 양심에 찔림이 있으십니까?
성경 마태복음 22장17-21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으로 하여금 올무에 걸리게 할까 하여 자기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을 함께 예수님께 보내는 장면이 나옵 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 이까 불가하니이까”(17절).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 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였습니다(21절).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 떻게 합니까? 나라에 바칠 세금을 바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받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분명히 예수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고 말씀 하셨는데 우리는 마치 바리새인 들과 같은 위선자들처럼 하나님께만 헌금을 받치면 나라에 세금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 각하여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알기론 세금 보고를 4월초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세금보고 어떻게 하실 것입니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3장 4를 보면 “위정자에 대한 교인의 의무”에 대해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세금 과 기타 낼 것들을 내며, 그들의 합법적 명령들을 순종하며, 양심 때문에 그들의 권위에 복 종하는 것은 백성들의 의무이다. …”(인터넷).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부를 위하여 기도하며 또한 두려워하며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는 이 사회에 살면서 선행을 일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양심 것 세금을 나라에 내야 합니 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의 다스림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