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로마서 12장 14-21절 말씀 묵상]

 

 

성경을 읽다보면 참 어려운 말씀들이 많습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도 많지만 아예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괴로 운 것은 깨닫는 그 말씀들조차도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 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양심에 찔림 속에서 좀 괴로워하다가도 지나고 나 면 양심에 찔림도 없어지고 그저 그런가보다 라는 식으로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 이 익숙해져 갑니다.  아마 그러한 말씀 중에 하나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이웃”이 누군 인가 라는 질문도 던져가면서 그저 사랑스럽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려는 경향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도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마5:46)라는 예수님의 말 씀을 기억하게 되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 니다.  특히 예수님의 명령인 마태복음 5장 44-45절 상반절과 같은 말씀을 들으면 우리는 더 이상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 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0절 하반절을 보면 이해하기 좀 어려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과연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 니까?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는 잠언 25장21-22절 말씀을 봐야 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 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 이 말씀을 보면 숯불을 사람 머리에 놓는다는 말씀은 우리 원수와 연관(관련)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 다. 과연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죤 맥아더 목사님에 의하면 옛날 이집트 문화에 사람이 자기의 죄를 뉘우친 것을 공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길 원하면 숯불이 담긴 화로를 그의 머 리에 놓고 걸어간다고 합니다.   여기서 “숯불”은 그 사람의 수치심과 죄책감의 타오르는 고 통을 상징한다고 합니다(맥아더). 그래서 잠언 기자는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 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잠언 기자나 오늘 본문 로마서를 쓴 저자 바울이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원수들에게도 사랑을 베풀라는 것 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을 베풀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라 생각됩니다: 첫째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원수들에게 사랑을 베풀면 그들은 그들 안에 있는 미움과 원한, 증오, 적개심에 대한 수치를 느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맥아더).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우리를 대적하고 핍박하 는 원수들에게까지도 사랑을 베풀면 그들의 차갑고 강퍅한 마음이 불에 녹듯이 변하여 우리 의 새로운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한 마디로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0절 말씀을 요약하자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에게 원수를 사랑하 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그렇게 하므로 우리 원수들의 마음도 녹여서 주님 안 에서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과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원수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여서 주님 안에서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까?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좀 좁게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원수들이 물론 교회 밖에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원수 관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오늘 성경 말씀은 교회 안에 우리 성도들끼리의 관계에 적용 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4-21절 말씀의 문맥을 볼 때에 로마서 12장 9-13절 말씀 중심으로 “사랑의 공동체”란 제목 아래 말씀을 묵상했듯이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기에 주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 회를 사랑의 공동체로 세워 나아가시는 역사에 우리가 어떻게 동참해야 하는 것인지 교훈을 받는 것입니다. 그 교훈이란 교회 안에서도 원수처럼 여기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을 하나 님의 사랑으로 녹여서 주님 안에서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 합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사랑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여 주님 안에서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한 4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를 축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4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 고 저주하지 말라”. 참 순종하기 힘든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 니다.  어떻게 우리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저주를 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습니까?  저 는 그 비결이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 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 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 느니라.” 우리가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를 축복하기 위해선 예수님으로 인하여 욕을 먹고 핍박을 받는 것이 복이 있다는 사실, 즉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크다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 다. 그리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원수들을 축복할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믿음 으로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축복해야 합니까? 물론 오늘 성경이 그렇게 명령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볼 때 우리가 우리의 원수들까지 도 축복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원수였던 저와 여러분을 축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성경 로마서 5장 10절을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께서 그의 원수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내려주신 축복은 그의 아들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으심 으로 인한 구원입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항상 감사하는 은혜를 아는 성도들은 ‘나 같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까지도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어 주셔서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 셨는데 하물며 사람과의 원수 된 자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겠는가’라는 자세로 원수를 사 랑하여 저주하지 않고 축복해야 합니다. 마치 구약 성경 민수기 22-23장에 나오는 발람이 모압 왕 발락의 부탁인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 르시는 말씀만 말한다고 하여 저주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였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 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야 합니다. 한국 복음성가에 “축복의 통로”라 는 곡이 한 두, 세 개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곡들 중 김수지란 분이 작사, 작곡한 곡을 보 면 1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나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신 축복을 누리게 하소서. 내 안에 나를 깨뜨리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입게 하셔서/ 온 세상을 사랑으로 품게 하시고/ 나를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소서”(인터넷).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야 합 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 또한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용서할 때 우리는 그 핍박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복(기도) 할 수 있 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체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5절을 보십시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 는 자들로 함께 울라”. 이것도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도 체휼을 잘 못하는데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까지 체휼할 수 있습니까? 왠지 주님 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이 참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거의 불가 능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5절 말씀을 항상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에서 적용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교회 안에서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며 상처를 주고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고 생각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들로 인하여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 기는커녕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체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 떻게 그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일지라도 그들과 체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그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즉, 우리를 힘들게 하고 괴롭히고 핍박 하는 형제, 자매들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그들이 울 때에 함께 울어야 합니다.   어떻 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우리를 괴롭게 하며 힘들게 하며 핍박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그가 울때 함께 울 수가 있습니까? 오히려 반대로 그가 울 때 우리는 기뻐하고, 그가 기뻐할 때 우리는 분노해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그 비결은 히브리 서 4장 15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 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대 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사랑하여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계시기에 우리 또한 우리의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그들의 연약함을 체휼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바울 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나 저와 여러분에 체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길 원하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마 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우리는 서로 마음을 같이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는 한 마음을 품어 야 합니다. 그 마음이란 무슨 마음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빌2:5).   그 예수님 의 마음이란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높은데 두지 않고 낮은데 처하는 마음입니다. 우리 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겸손히 낮아져 예수님의 마음으로 기뻐하는 형제와 함께 기뻐하며 우는 형제와 함께 우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7절을 보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 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여기서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말씀 은 복수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박윤선).   왜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이유를 박윤선 박사님은 한 여섯 가지를 들었는데 그 중 에 특히 마지막 여섯 번째를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복하는 행동을 하는 자는 하 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박윤선). 보복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듣다는 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있는 싸인 입니다. 우리는 보복할 생각을 하고 또한 보 복 행동을 하기보다 원수 갚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 장 19절을 보십시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 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무 슨 말씀입니까? 원수 갚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를 갚으실 것이기에 우리는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악으로 악을 갚기보다 오히려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악을 행 했는데 어떻게 악으로 갚기보다 선한 일을 도모할 수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선 으로 악을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21절). 만일 저와 여러분이 선으로 악을 이겨 나아가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선한 일을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에게 악으로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는 선으로 악을 이겨 나아가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악을 행한 자들에게 악으로 갚기보다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8절을 보십시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 로 더불어 평화 하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17절)고 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8 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과 화목 하라는 말씀은 그저 우리를 사랑해주 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화목 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 우리의 원수들과도 화목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에베소서 2장 14-16절이 생각납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 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 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  화평케 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시므 로 말미암아 원수 되었던 우리와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원수지간이었던 유대 인들과 이방인들을 화목케 하시사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 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 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성경 말씀 로마서 12장 14-21절은 우리에게 네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원수를 축복해야 합니다, (2) 둘째로,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까지도 쳬휼해야 합니다, (3) 셋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합니다, (4) 마지막 넷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해야 합 니다. 이 교훈들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누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예수님이 생각났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유대인들,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핍박자들 조차도 사랑하셨던 예수님, 원수조차도 사랑하사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체휼하시사 십자가에 우리 대신 못 박여 죽으 신 예수님, 우리에게 선한 일을 행하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또한 서로 화목케 하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제자들인 저와 여러분은 어떻 게 해야 합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원수를 축복하며, 원수와 체휼하여, 선을 행하며 화목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