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로마서 12장 1-3절 말씀 묵상]
우리가 이미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중심으로 영적 예배의 삶에 핵심은 바로 변 화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질문은 저와 여러분은 변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까? 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배를 수백 번 드리고 하나님의 말 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수없이 말해도 변화되어 가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입니까?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인 목사님들조차 변화되어가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에 한탄하며 포기하는 듯 해봉이며,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 의 입장에서는 변화되어가지 않는 설교자의 모습에 비판과 불만이 끊여지지 않는 듯합니다. 종교적 예식인 예배는 습관적으로라도 신실하게 잘 감당하는 듯 하지만 아무리 예배를 드려 도 변화되어가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것이 우리 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 예배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가지 고 있고 또한 바른 교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예배를 수 없이 드렸었을 지라도 우리는 변화 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악한 방향 으로 변화되든지 아니면 선한 방향으로 변화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 리면서도 악한 방향으로 변화되던지(변질) 아니면 선한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의 아하게 들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예 배 가운데 설교자인 목사님을 통해서 듣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방망이 와 같으며(렘23:29) 또한 성령의 검(엡6:17)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설교 시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으로 은혜를 받는 설교자 자신이나 성도들은 강팍한 마음 이 부서지며 차가운 마음이 녹아지며 마음과 양심에 찔림과 더불어 진정한 회개의 역사와 더불어 세워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을 들은 바로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데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오히려 말씀을 들으므로 마음이 강퍅하게 될 수 있습니다. 순 종은 축복이지만 불순종은 저주입니다. 그러면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변 화를 받고 있습니까? 주일 예배를 통하여 악한 방향으로 변화를 받는 성도들은 세상에 나 가서도 "이 세대를 본"받을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교인이요 그리스도인이요 예배자라고까 지 자칭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도인입니 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늘려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욕심과 야망은 사람보기에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일이요 싫어하시는 일일 뿐입니다(사 1:13,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는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는 것입니 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의 삶은 예배와 삶이 일치되어 변화를 받는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 킵니다.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3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3가지 변화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를 우리 모두가 이 세 가지 변화를 추구하는 가 운데 나중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뒤돌아 볼 때 전보다 더 변화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마음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 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 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이미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서 이 세대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2:39)라고 말씀 하신 것을 배웠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세대를 가리켜 “이 악한 세대”라고 말하였습니다(갈1:4).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기 전에는 “이 세상 풍속”(엡2:2) 또는 “육체의 욕심”(갈5:16)을 좇아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기 전에 좇았던 이 세상 풍속 또는 육체의 욕심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육체 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 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비슷한 목록이 로마서 1장 29-31절에도 나옵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 의가 가득함,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함, 부모를 거역함, 우매함, 배약 함, 무정함, 무자비함. 문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새 사람답게 살아가기보다 아직도 옛 사람의 습관대로 이러한 육체의 욕 심을 따라 살아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새 사람답게 살아가야 할 텐데 아직도 옛 사람의 일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문제가 무엇입니까? 문제는 바로 우리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 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아서 우리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씀 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주께 죄를 범치 아니하려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 다”(시119:11). 우리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새롭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두워진 우리의 미련한 마음대로(1:21), 또는 우리 마음의 정욕대로(1:24) 이 죄악되고 음란한 세대를 본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우리 마음에 변화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달란스 윌라드(Dallas Willard) 목사님은 그의 책 “마음의 혁신”(Renovation of the Heart)에서 “외면의 악을 확실히 정복할 수 있는 것은 내면의 깊은 변화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윌라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외면의 악을 확실히 정 복할 수 있는 것이 내면의 깊은 변화뿐이라고 믿으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제 자신뿐만 아니라 제 육신의 가정 식구들이던 영의 가정 식구들인 우리 교회 식구들을 생각할 때 내면 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변화보다 하나님 이 보고 계시는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제 개인 신앙생활 및 가정 사역과 목양 사 역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내면의 변화가 없이는 참된 외면의 변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내면의 변화는 등한히 하고 외면의 변화에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이 표면적인 변화를 추구하다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선한 영향력을 행하기보다 오히려 거꾸로 세상에 영향을 받아 세상을 본받아 살면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범죄하며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 사람이 보기에는 참 신앙이 좋아 보이고, 기도도 썩 잘하는 것 같고, 성경 지 식도 있는 것 같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없기에 교 회를 수년을 다녀도 성품의 변화도 없고 행함의 변화도 잘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지 않습니 다. 그래서 저는 금년도를 시작하면서 저는 교회 표어를 “말씀 묵상의 해”라고 정했습니 다. 이 표어를 걸고 우리 온 승리교회 식구들이 저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묵상하 고자 합니다. 우리가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 은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변화되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 합니까?
-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의 관점으로 다시 말한다면, 우리가 하나님 의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 그리할 때 둘째로, 우리는 분별하게 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우 리 마음에 참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순종함으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 하게 해야 합니다(벧전1:22).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되어 거룩한 삶 을 살아가야 합니다(엡5:26).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 하여 듣고, 읽고, 묵상하며 공부하며 또한 순종하는 가운데 우리 안에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 리의 마음이 온전해 지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더욱더 예수님을 본 받아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 다.
둘째로, 우리는 생각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3절을 보십시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 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프랑스의 근대 합리론의 철학자 데카르 (R. Descartes)의 이 말은 인간의 본질과 핵심을 드러내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우리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우리 사람에게는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본능적 충동으로 살아갑니다. “먹 고 자고 생식하고 죽는다’라는 이 4 개의 단어로 동물의 삶을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은 사고하는 존재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통하여 우리는 생 각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즉, 우리 인간은 살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며서 살아가고 있습 니다(인터넷). 그런데 왠지 우리 사람들이 점점 더 생각하면서 살기보다 동물처럼 충동적 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과 논리가 결핍된 감정과 충동 속에서 말하고 행동 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 말한 다면 우리가 “허망한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허망하여졌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범죄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 두워졌나니”.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 할찌라도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 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치도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은 허망하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의 생각이 무가치 하고 헛되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허망한 생각 속에서는 무가치한 일, 헛된 일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하나님 보시기에 무가치한 일과 헛된 일 이 교회 안에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 교회 안에 “… 음행과 …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같은 범죄가 행해 지고 있습니다(갈5:19-21).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3절에서 “마땅히 생각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 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한 2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 다.
- 첫째로, 교만한 생각을 품지 말라는 말입니다.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왜 분쟁과 분리함 등 이런 저런 범죄가 행해지고 있는 것입 니까? 교만함 때문입니다. 왜 영적 우월감 같은 것이 있습니까? 왜 선입감 같은 것이 있 습니까? 자기 자신을 분수에 넘치게 평가해서 그런 게 아닙니까? 그래서 바울은 ‘분수에 넘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절).
- 둘째로, ‘겸손히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한 마디로, 분수 있 게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 을 알고 겸손히 생각하라는 말씀이요 “지혜롭게 생각하라”는 말씀은 “정신 차려 생각하라” 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은혜를 아는 자는 겸손합니다. 결코 은혜를 아는 자는 분수에 넘 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겸손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주신 은 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한다고 말하면서(3절)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운데 겸 손히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편지로나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 받지 아니하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갈 때 우리의 생각 또한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마 음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를 가지고 옵니다. 새롭게 되는 마음과 주님의 뜻에 복종하는 마 음은 결코 주님 앞에서 교만한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새롭게 되는 마음과 복종 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앞에서 겸손하게 만듭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 생각의 변화가 계속 있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다 겸손히 생각하는 가운데 같은 마음뿐만 아니라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는 삶의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 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변화가 있을 때 우리의 삶 또한 자 연스럽게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까? 더 이상 이 세상의 풍속이나 육체의 욕심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교만한 삶이 아니라 겸손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한 마 디로, 우리 마음과 생각의 변화 가운데 맺는 삶의 열매는 바로 “거룩”입니다. 과연 “거룩” 이란 무슨 뜻입니까? “거룩”이란 히브리어 코데쉬는 부정한 것을 잘라 내어 구분하고 분 리한다는 뜻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성도의 삶은 세상과 죄악과 분리된 삶을 가리킵니다. 달리 말한다면, 성도의 삶은 비세속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성도”라는 헬라어 “하기오스”, 거룩함은 “하”라는 부정어와 “개스”라는 땅, 세상이란 단어의 합성어로 비세속적이다 는 뜻 입니다(인터넷).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세속화 되었습니다. 왜 교회가 세속 화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세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별 다 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또한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면서 우리의 생활 패턴이 전반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고 있습니 다. 이러한 세상 사람들과 구분되지 않고 있는 삶은 결코 성도의 삶, 거룩한 삶이 아닙니 다. 어떻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성도의 삶인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Gospel-Powered Parenting”(복음에 힘을 얻는 양 육)이란 책이 있습니다. 어떻게 복음이 우리 부모들을 변화시켜 우리 자녀들을 양육하는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이 책에 4장을 보면 저자 William P. Farley 목사님은 “A Holy Father’(거룩한 아버지)란 제목 아래 가정의 우리 아버지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거룩하신 것 처럼 우리 아버지들이 거룩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거 룩하심에 대한 놀라운 진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Such is holiness of the Father that when his Son bore our sin and transgressions, God separated himself from him”(Farley)[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이란 그의 아들(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부르짖 으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의 아들과 분리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 지의 거룩하심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걸머지신 독생자 예 수님과도 스스로 분리하신 이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에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죄와 분리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죄악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세속화되어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언행을 일 삼아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 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거룩한 삶을 이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이 죄악된 세상 에 들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변화, 우리 생각의 변화, 그리고 우리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더욱더 변화하는 저와 여러 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변질이 아닌 변화를 추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왕궁보다 광야를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