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증인들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묵상]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이 쓰신 “목적이 이끄는 삶”란 책을 보면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5가지 유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워렌):
- 첫째 유익은, 목적을 아는 것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삶에는 어떤 목적도 있을 수 없고, 목적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습 니다. 의미가 없다면 중요함이나 소망도 없습니다. 한 20대 청년이 이렇게 썼다고 합니 다: “나는 무엇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진정으로 무엇이 되려고 하는 줄 모르기 때문 에 실패자임이 틀림없다. 오직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대충 살아가는 것뿐이다. 언젠가 내 삶의 목적을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살기 시작한다고 느낄 것이다.” 과연 저와 여러분 은 삶의 의미를 느끼시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 둘째 유익은, 목적을 알면 삶은 단순해집니다.
우리 사람은 단순한 것도 좀 복잡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는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들면서 살아갈 때가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삶의 목적 인 혼동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목적인 분명하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즉, 목적은 우리의 삶에 기준 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하기 전에 과연 이 일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아니면 안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도움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으므로 삶을 단순하게 살 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삶에 목적인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는 왜 그런 결정 을 내렸으며, 어떻게 시간을 투자하고 자원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를 잃게 됩니다. 그저 상황, 압력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기분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워렌 목사님 의 말입니다: “자신의 목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하려하고, 또 이 때문 에 스트레스, 피로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갈등을 겪게 된다.”
- 셋째 유익은, 목적을 알면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을 알면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습니 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복잡한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목적에 대한 혼동 속에 서 우리의 노력과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분산 시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삶을 뒤돌아 볼 때 이것저것 다 해본 것 같은데 이루어 놓은 것은 없어 보 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가리켜 릭 워렌 목사님은 “목적 없는 산만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목적 없이 계속 방향을 전환하고, 직업, 관계, 교회 그리고 그 외의 외부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바꾸는 삶, 그것이 우리 마음의 혼란스러움을 안정시켜주며 공허감을 채워주길 바라지만 더 혼란스럽기만 하고 더 공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목적 에 이끌림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유익한 것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들을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 넷째 유익은,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우리가 삶의 목적이 분명하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으로 불태우게 됩니다. 그 이유는 목적은 열정을 낳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한 미국 잡지에서 영화배우 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두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젠 그 분의 나이가 팔십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직도 영화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왜 그 는 은퇴를 하지 않고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는가 하면 그는 아직도 영화 세 계에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좀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팔십 된 어르신도 그렇다면 아직 40대 밖에 되지 않는 제가 얼마나 더 배우려는 자 세로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야 하는가라는 도전을 받았 습니다. 성경을 보아도 모세나 갈렙 같은 사람을 보면 팔십 때에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 습을 보면 참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열정이 불타오름을 느끼지 않 을 수 없습니다.
- 마지막 다섯째 유익은, 목적을 앎으로써 영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이 죽은 후 사람들은 우리의 장례식에 와서 어떻게 평가하실 것 같습니까?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죽은 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 실 것 같습니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이 세상에서 기억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영생을 준비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과연 영생을 준 비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릭 워렌 목사님은 영생을 준비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 리에게 던지실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면서 이 땅에서 살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무엇을 하였느냐?”, (b) “내가 너에게 준 것들 로 너는 무엇을 했느냐?” 과연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저희 교회에는 삼대 목표가 있습니다. 그 삼대 목표란 (1) 진정한 예배자를 세우 는 것, (2) 신실한 제자를 세우는 것, (3) 영혼을 사랑하는 전도자와 겸손한 봉사자를 세우 는 것입니다. 이 삼대 목표의 근거하여 우리 교회는 삼대 목적 진술이 있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목적 진술은 이렇습니다: “주님을 모시는 교회: 예배-증인들.” 이 첫 번째 목적 진술에 대한 구절은 고린도전서 14장25절 말씀입니다: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 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이 말씀은 제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다닐 때 밑에서 배운 조직 신학 교수님이 쓴 “신령과 진 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책에서 도전을 받고 저희 교회가 우리에게 제일 원하고 계시는데 예배요 그 예배는 증거의 역할 또는 전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 하여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이렇 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 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시기에 우리 모두가 예배의 우선순위를 두고 거기에 심혈을 기울여 하나님께 바른 예배,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우리 교회 는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의 예배를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있는 예수 님을 믿지 않는 자들조차도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 시다"라고 선포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회 첫 번째 목적 진술을 “주님을 모시는 교회: 예배-증인들”이라고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이 주전 저는 이 고린도전서 14장 25절 말씀을 읽다가 다시 곰곰이 이 말씀을 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 말씀의 문맥을 통하여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이란 예배 가운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책망과 판단을 받으므로(24절) 죄를 깨달아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 예배 가운데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에 근거는 고린도전서 14장 24절 말씀 입니다: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 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주님께서 저에게 이 말씀을 통하여 주 시는 음성은 교회 목사로서 선지자적 말씀 선포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 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므로 말미암아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죄가 들춰 지므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그 때서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우 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이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2절 말씀 중심으로 “예배-증인들”이란 제 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담대히 선포하길 원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전 파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십시오’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교리 (doctrine)를 말한 후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부터 그 교리에 대한 적용(application)을 말하 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로 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을 받았으니 이젠 구원을 받은 자들로서 참된 믿음의 삶을 사십시오. 그 참된 믿음의 삶이 란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살아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 신실한 삶이란 무 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예배란 존경과 경배입니다. 예배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광 돌리 려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최고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예배하는 것 이며, 그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 속에서 우리의 최고의 기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프레임). 그러면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영적 예배”란 무엇입니까? 영적 예배란 구약에서 유대인들이 드렸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가 아니라 영적 예배, 즉 성령님 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요4:24)(박윤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구약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는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보이려고(12절) 무수한 제물을 희생 제물로 받치는 것(사1:11)으로써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며(11절) 아무 유익이 없 습니다(11절). 더 나아가서, 이러한 외부적인 의식적 예배는 하나님께서는 견디실 수 없을 정도로(14절) 가증히 여기시며(13절) 싫어하십니다(14절). 우리가 하나님께 받치는 물질들 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에게 무거운 짐이여 곤비케 하는 것입니다(14절).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 예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신령”)과 진리(진정)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요4:24).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진정한 영적 예배자는 진 리의 성령님과 복음의 진리(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의 좋은 소식)에 이끌림을 받아 예배를 드립니다. 결국 영적 예배란 하나님 중심의 예배요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란 항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님에 의해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 예배란 삼위일체 적 예배입니다(프레임).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께서 행하신 독특한 사역을 인지하여 하나님께 감사, 찬양, 경배, 헌신하는 예배가 영적 예배입니 다.
이러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영적 예배자들이 추구하는 것 세 가지가 오늘 본문 로 마서 12장 1-2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 3 가지 요소를 추구하므로 참된 영적 예배자로서 더욱더 세움을 받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영적 예배자는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립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 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는 거룩한 산제사입니다. 다 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옛날 구약 시대 때처럼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동물을 잡아 제단이 올려놓고 드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 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돌아가셨기에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희생 제 물로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나 저와 여러분 에게 권면하고 있는 영적 예배자로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 리라는 말씀은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로마서 6장12-13절에서 이미 바울이 우리에게도 말해 주었듯이 몸의 사욕을 순종치 않으며 또한 우리의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가리킵니다.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 는 참된 영적 예배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바른 삶을 살아드립니다. 즉, 영적 예배자는 복음 에 합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참된 영적 예배자는 복음에 합당한 삶, 특히 거룩한 삶을 살 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예배 증인들의 삶입니다.
둘째로, 영적 예배자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추구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참된 영적 예배자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않습 니다. 이 세대가 어떠한 세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 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2:39).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는 악한 세대요 음란한 세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은 죄악과 음란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이 죄악과 음란의 물결이 풍랑처럼 우리 삶에 불어 닥치고 있는 이 때에 우리 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 은 그저 외부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내부적 변화를 말합니 다. 이것은 내세의 표준에 맞는 깊이 있는 생활을 말합니다(박윤선). 이것이 바로 영적 예 배의 삶에 핵심입니다. 영적 예배의 삶에 핵심은 바로 변화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변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는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 배를 수백번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수없이 말해도 변화되어가지 않는 우 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인 목사 님들조차 변화되어가지 않는 성도들의 모습에 한탄하며 포기한 듯 느껴지며 말씀을 듣는 성 도님들의 입장에서는 변화되어가지 않는 설교자의 모습에 비판과 불만이 끊여지지 않는 듯 합니다. 종교적 예식인 예배는 습관적으로라도 신실하게 잘 감당하는 듯하지만 아무리 예 배를 드려도 변화되어가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것 은 우리의 예배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한 바른 교리를 아무리 많이 알고 예배를 수 없이 드렸었을 지라도 왜 우리는 변화의 역사 를 경험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까?
변화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변화하는가 중요합니다. 악한 방향 으로 변화되든지 아니면 선한 방향으로 변화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 리면서도 악한 방향으로 변화되던지(변질) 아니면 선한 방향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의 아하게 들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예 배 가운데 설교자인 목사님을 통해서 듣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불과 같고 방망이 와 같으며(렘23:29) 또한 성령의 검(엡6:17)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설교 시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진정으로 은혜를 받는 설교자 자신이나 성도들은 강퍅한 마음 이 부서지며 차가운 마음이 녹아지며 마음과 양심에 찔림과 더불어 진정한 회개의 역사와 더불어 세워지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 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강퍅케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 을 들은 바로는 마음을 강퍅하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설교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데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오히려 말씀을 들으므로 마음이 강퍅하게 될 수 있습니다. 순 종은 축복이지만 불순종은 저주입니다. 그러면 과연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느 방향으로 변 화를 받고 있습니까? 주일 예배를 통하여 악한 방향으로 변화를 받는 성도들은 세상에 나 가서도 "이 세대를 본"받을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교인이요 그리스도인이요 예배자라고까 지 자칭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그리스도인입니 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숫자를 늘려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욕심과 야망은 사람보기에는 어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증한 일이요 싫어하시는 일일 뿐입니다(사 1:13, 1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는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하나님 앞에 세움을 받는 것입니 다. 그리고 참된 예배자의 삶은 예배와 삶이 일치되어 변화를 받는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 킵니다. 비록 숫자가 많치 않을지라도 기드온의 300명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과 죄악과 세상과 싸워 승리하는 영적 예배자들로 세움을 받아가는 공동체, 예배의 변화를 통하여 전 사역의 영역에 참된 변화를 가져 오는 공동체, 저는 그런 교회 공동체를 꿈꾸며 하나님께 기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변화를 받으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 리의 가정을, 우리의 직장, 사업을, 우리의 이웃과 사회와 나라를, 세계를 변화시켜야 합니 다. 이러한 삶이 바로 예배 증인들의 삶입니다.
셋째로, 영적 예배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12장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 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한 산제사로 우리의 몸을 바치고 또한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을 때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마음을 새 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을 때에 영적 분별력이 생기게 됩니다. 그 결과 참된 영적 예배자는 영적 분별력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게 됩 니다. 그런 후 영적 예배자는 어떻게 합니까? 그는 분별한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진 심으로 순종할 마음이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뜻이 알려지지도 않습니다(요 7:17)(박윤선).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목적 또는 그 분의 뜻을 이루시므로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 름답게 하십니다(전3:1-14).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징계 할 때나 회복할 때나, 울을 때나 웃을 때, 잠잠할 때나 말할 때, 또는 사랑할 때나 미워할 때, 온전히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시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란 찬송의 해설이 생각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 을 한 후, 몇몇 루터파 개혁교회가 있었으나 날로 쇠퇴해졌고 그나마도 로마 카톨릭의 세력 에 의해 멸절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1648년 웨스트 페일리아의 로마 카톨릭교와의 평화 조약(The peace of Westpholia) 덕분에 슈바이드닛츠에 단 하나의 루터교회가 잔존케 되 었고 그 루터파 교회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36개의 부락이나 되는 광활한 지역에서 단 한군데 루터교회의 담임 교역자로서 슈몰크 목 사 내외는 대단히 어려운 목회 생활을 했다. 한번 심방을 나가면 할 온종일이 걸려 밤중에 오기가 일쑤였고, 어떤 때는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 때 집에는 어린 아이들 밖에 없었다. 1704년 어떤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은 불이 나서 온데 간데없고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소사(燒死)한 어린 아들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 부부는 한순간 정신을 잃었으나 이 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 때의 기도 내용이 바로 우리의 찬송가 431장의 가사이다: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 니 이 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 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 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인터넷). 이렇게 슈몰크 목사님 부부 처럼 진정한 영적 예배자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영적 예배자들로 세움을 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며,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으며 그리고 온 맘과 정성 다해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참된 예배 증인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나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오 주님, 우리 모두를 예배-증인들을 세워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