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없느니라” (2)
[로마서 11장 11-24절 말씀 묵상]
우리는 이미 로마서 11장 1-10절을 말씀을 묵상하면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택한 백성을 버리시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1절)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완곡히 부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로마서11장11절에 와서 그는 또 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 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 라.” 여기서 바울이 완곡히 부정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넘어지기 까지 실족하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거절하므로 말미암아 넘어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복하지 못할 정 도로 넘어지게 놓아(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복음에 불순종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앙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게 하시고자 그들의 실족함 [회개하여 바로 될 수도 있는 실수(박윤선)]을 사용하십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족함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신다고 바울은 오늘 본문 로마서 11장 11-24절에서 말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족함으로 복음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시기 나게 하시므로 하나님께 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선택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절). 이것이 바로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로마에 있는 성 도들 중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렇게 자기의 의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내 골육을 아 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14절).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서 자기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면서(13절)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 면서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이방인들의 구원이 우선 이유겠지 만 또한 이방인들의 구원으로 인하여 자신의 골육인 유대인들로 하여금 시기케 하여 그 중 에 얼마라도 구원케 하는 것이었습니다(14절). 그는 자기 골육인 유대인들이 죽은 자 가운 데서 사는 것(15절), 즉 미래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회복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 므로 그는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자기 골육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자기의 간 절한 마음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여 실족하므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구원이 이르렀다는 사실에 그들의 자부심과 교만을 준엄하게 경고하 고 있는 것입니다(맥아더). 오늘 본문 로마서 11장 18-20절을 보십시오: “그 가지들을 향 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 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 리어 두려워하라”. 여기서 “뿌리”란 “참감람나무”의 뿌리로서 “참감람나무”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키고 참감람나무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 킵니다. 그리고 ‘꺽이운 가지들’은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인간의 노력인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아마도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은 꺽이운 가지들인 불신앙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자기들이 참감람나무인 하나님의 교회에 접붙 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네 말이 가지들이 꺽이운 것(유대인들)은 나(이방인들)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이방인 성도들이 만일 말한다 면 그 말에 바울의 대답은 “옳도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꺽이워졌고 너희 이방인 성도들은 믿 음으로 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즉, 꺽이운 가지들인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의 백 성이였지만 예수 그리스를 믿지 아니하므로 택한 백성에서 제외되었고, 도리어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바울 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지 말로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20절).
지금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 여 자긍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혈통으로 아브 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 이 되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이방인 성도들 이 참감람나무의 뿌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었기에 높음 마음을 품고 자긍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 워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한 교회 안에서 유대인 성도들은 육적으 로 혹은 혈통으로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이방인 성도들을 정죄 하고, 이방인 성도들은 영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향하여 자긍하는 이러한 죄를 범하고 있다면 그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유대인 성도들은 아직도 옛 사람의 습관대로 ‘우리가 그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할례를 받았고 또한 모세 의 율법을 받았으니 우리가 참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자부심 속에 자랑하면서 이방인 성 도들을 정죄하고 업신여기고 있는 반면에 이방인 성도들은 ‘그래도 유대인 당신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복음이 우리에게 임하였고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 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참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다’라고 높은 마음을 갖고 유대인 성도 들을 향하여 자긍하고 있었다면 그 로마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특별히 이방인 성도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 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왜 두려워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21-22절).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원 가지들”인 이스라엘 백성 들도 비록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지만 그들을 복음에 불순종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 신앙을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 아끼지 아니하시고 그 원 가지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찍어 버리셨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언약에 타인인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복음의 진 리에 불순종하므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아끼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MacArthur). 만일 이방인 성도들도 계속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22절). 다시 말하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지 않고 불신앙 유대인들처럼 그들도 불신앙한다면 그들 역시 별수 없이 제거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가지가 참감람나무에 계속 거해 있어야지 그 나무의 뿌리를 통하여 보존되는 것이지 만일 가지가 참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더 이상 보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 면, 그들이 더 이상 불신앙에 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접붙임을 얻”을 것입니다 (23절).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2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바울은 그의 골육의 친척인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보고 시기해서라도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접붙임을 당하길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 라엘 백성들을 다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 중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을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교회에 접붙이게 하실 줄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확신 속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원 돌감람 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 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24절). 무슨 말씀입니까? 혈통 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아닌 너희 이방인들도(“원 돌감람나무”)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접붙이심을 받았다면 하물며 혈통으로 아브라함 과 이삭과 야곱이 자손이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님을 믿으면 “얼마나 더” 하나님 의 교회에 접붙이심을 받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이방인들을 구원 해 주시사 하나님의 교회에 접붙이셨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유대인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 젙붙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얼마 전 저희 교회 반주자 자매를 통하여 “KIBI 소식”이라는 잡지를 받았습니다. “KIBI”란 약자는 “Korea-Israel Bible Institute”로서 이 단체의 사역은 주로 이스라엘의 회 복을 위하여 중보기도 사역, 문서 사역, 긍휼 사역 등등 여러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는 단체 입니다. 특히 이 단체는 이스라엘의 믿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모습을 조 금이나 잡지들에 나와 있는 사진들과 글들을 통하여 엿 봅니다. 그러한 가운데 제가 읽은 글 중 우리 기독교인들이 너무나 영적 이스라엘을 강조한 나머지 육적인 이스라엘을 방관하 고 있지 않는가 라는 내용의 글을 본 기억이 납니다. 참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영적 이스라엘,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 서 혈통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을 우리가 복음 전파함에 있어서 방관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올바른 복음 전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1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버리지 아니하신 유대인들을 우리도 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중 선택 한 그의 백성들, 남은 자들을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그 렇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유대인들을 향하신 구속 사역에 적어도 기도로 동참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도 유대인들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길 바랍니 다 그러한 가운데서 유대인이 아니 우리는 이방인들로서 자긍하면서 높은 마음을 품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18, 20절). 하나님의 교회(나라)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접붙임을 받 은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높은 마음을 품고 자긍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빌2:12). 어떻게 하는 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아야 합니다(롬11:22).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 분 같은 이방인들을 사랑하셔서 선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므로 구원해 주셨습 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을 사랑해 주셔서 찍어 버리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나라)에 접붙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사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향한 복음 전 파에 힘을 써 바울처럼 “저희 중에 얼마를 구원하려 하”는(14절)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 합니다.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넘어져 있게 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오뚜기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