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는 돌”

 

 

[로마서 9장 30-33절 말씀 묵상]

 

 

우리가 이미 로마서 9장14-29절 말씀 중심으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 요”(14절)란 제목 아래 2가지 가상 질문들과 한 가지 도전 질문을 묵상했었습니다. 묵상하 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무조건적 선택과 불가항력적인 그의 은혜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스스로 마음을 강퍅케 하심에 대하여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14절), 즉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적인 무조건적 선택으로 그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히 여 기시사(15절) 그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하시사 의롭다 하시고 구원해 주시 는 반면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인 뜻 가운데 선택하지 않은 바로 왕 같은 자들은 강퍅케 하시므로 그의 심판을 받게 하시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배 웠습니다. 감히 피조물이 조물주에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선택하지 않으심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할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 속에서 누구는 선택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시사 구원해 주시고 또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시므로 말미암아 죄 가운데 멸망케 하 신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 할말이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토기장이와 그릇에 대한 비유 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21절).   한 마디로, 바울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0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부르신 “긍휼의 그릇”과 선택하지 않으신 “진노의 그릇”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합 니다(22-23절).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9장30-33절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흥미롭게도 오늘 본문 을 30절을 보면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계속 써내려 가면서 또 “그런즉 우 리가 무슨 말하리요”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왜 그는 재차 두 번이나 “그런즉 우리가 무 슨 말 하리요”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이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대해서 아무 할 말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기 때 문입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여러분은 로마서 9장14-29절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서 누구는 그의 주권적인 뜻 가운데서 선택하시고 또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심에 대하여 주 권자 하나님께 할 말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아직도 왜 하나님께서는 누구는 선택하 시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셨냐고 질문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 왜 누구는 선택하셔서 예수님을 믿도록 하시사 그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고 또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셔서 불신앙 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하시는지 하나님을 향하여 의문 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만일 여러분이 아직도 의문을 품고 계신다면 오늘 본문 로 마서 9장 30-33절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음성인 “그런즉 우리가 무 슨 말 하리요”를 들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로마서 9장 30-33절을 묵상하면서 2 가지 돌을 생각하게 되었습 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오늘 본문 32절과 3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딪히는 돌”(A stone of stumbling)과 “디딤돌” 또는 “징검다리 돌”(A steppingstone)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딪히는 돌”도 되실 수 있고 또한 “디딤돌”도 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31절)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 스도가 “부딪히는 돌”이 되셨고(32-33절) “믿음에서 난 의”를 얻은 이방인들에게는(30절)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부딪히는 돌”이 되셨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부딪히는 돌이 되었던 이유는 그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미 로마서 9장 4-5절에서 묵상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을 알고 믿을 수 있는 한 6가지의 특권이 주워졌음에도 불구하고(하나님에 대하여 양자적 관계,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 주어진 “언약들”, 받은 “율법”, “예배와 약속들”, 예수 그리 스도가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나신 것) 그 특권들을 누리지 못한 원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 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이란 오늘 본문 로마서 9장31절에 근거해서 말한다면, 예수님을 좇기(믿기)보다(pursuing Jesus) “의의 법” 을 좇은 것(pursuing a law of righteousness)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 들의 불신앙이란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로 또한 그들의 구세주로 믿지 아니하고 오히려 모세의 율법을 지키므로 의를 얻고자 하였기에 예수님이 그들에겐 부딪히는 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32절). 모세의 율법을 지키므로, 즉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딪히는 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였습니다(33절).  다시 말하면, 행위 로 구원을 얻고자 함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실패”하였습니다(박윤선).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만일 우리가 믿음에 의 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하여 인간의 공로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 스도는 우리에게 “부딪히는 돌”이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분명히 실패할 것입니다(부끄러움을 당할 것임).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 율법의 행위로 그(하나님)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롬3:20, 갈2:16).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갈3:11).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키므로, 즉 인간의 공로 인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절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 야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딪히는 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디딤돌”이 되셨습니까?   한 마디 로, 믿음으로 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딪히는 돌이 아니 라 디딤돌이 되신 것은 바로 믿음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9장 3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여기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방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기에 그들은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켜 의인이 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박윤선).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습니다. 어떻게 이방인들은 의를 얻은 것입니까? 그것은 바 로 “믿음에서 난 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30절)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는 부딪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었던 이방인들은 “부끄러움”(실패)을 당치 아니 하였습니다(33절).     한 마디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예수 님은 디딤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로마서 2장 1-16절 말씀을 통하여 배웠던 것처럼 “복음을 듣 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만(1:16)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모든 불의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억눌러서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며(1:18ff) 또한 최후에 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5절). 다시 말하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 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지만(1:16) 복음을 듣고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 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양면을 봅니 다.   복음이란 그 복음의 내용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롬1:18-32)와 하나님의 심판(롬 2:1-16)이 임합니다.   즉,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는 축복(영생),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 에게는 저주(심판, 멸망)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아 구원을 받습 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은 “오직 믿음의 법으로”(3:27)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결고 이방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직 믿음으 로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디딤돌이 되십니다. 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 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만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로 갈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자들에게 징검다리 돌이 되십니 다. 과연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디딤돌(징검다리 돌)이 되십니까 아니면 부딪히는 돌이 되 십니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부딪히는 돌이 아니라 디딤돌(징검다리 돌)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징검다리 인생을 살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부딪히는 돌이 되시는 예수님의 징검다리 돌의 사 역을 묵상하면서)